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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여행하고 조사하고 상상하기

주간 여행 에세이 13

멕시코 여행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멕시코 북부 여행 - 멕시코시티, 산미겔데아옌데, 과나후아토, 과달라하라 - 을 마치고  남부 도시인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로 향하기 위해 비행기를 예약했다. 혹여나 모를 상황(체크인이나 수하물 관련 문제)을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공항 라운지를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 비행기 출발 보다 세 시간 먼저 도착했다. 국내선이라 아무런 문제 없이 그리고 줄 설 필요도 없이 빠르게 비행기 탑승 구간까지 도착한 후 우리는 라운지를 향했다. 라운지 위치를 몰라 20분쯤 헤매다가 겨우겨우 라운지에 도착했다. 과달라하라 공항 라운지는 빵 몇 가지와 음료 정도가 가져갈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었고, 식사 메뉴나 주류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을 해야 하는 구조였다. 라운지에 입장하고 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스페인어와 바디랭귀지로 더듬더듬) 직원에게 물어보니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사 메뉴판이 있나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직원은 그런 것은 당연히 없는데 왜 물어보냐 하는 표정과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면 메뉴를 알려달라고 하니 재빠르게 몇 마디를 읊었다. 못 알아들은 우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해달라, 아니면 적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다시 한번 빠르게 읊더니 그 자리에 서서 우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중 몇 가지를 어떻게든 알아듣고 그게 맞는지 확인차 말했는데 주문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바로 자리를 떴다. 우리를 응대한 직원을 포함해, 직원들이 많았는데 다들 자기들끼리 잡답을 하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세 명이서 더 빨리 할 일을 열 명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럴 거면 그냥 뷔페식으로 진열해 두고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실망스러운 응대 경험은 멕시코에서 몇 번 더 있었다. 라운지 이용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경험들을 기반으로 멕시코 접객업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한국이라면 가능하다. 한국에서 종업원들에게 요구되는 사항들, 그들의 계약관계, 사회에서 용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등에 대해 자연스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멕시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종업원들, 멕시코 근로자들은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을까. 어떤 계약 관계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을 할까. 멕시코는 어떤 나라일까. 궁금증이 생겨서 멕시코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사실들을 찾아보았다.

 멕시코의 경제적 상황을 보자. 멕시코의 빈곤율 기준은 도시 근로자의 경우 월 소득 19 만원, 시골 근로자의 경우 월 소득 12.7 만원이다. 전체 국민 중 수입이 이 금액 미만인 사람들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빈곤율은 40%가 넘는다. (2021년 기준) 관광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도 있다. (참고로 한국은 중위소득의 50% 미만일 때 빈곤하다고 말하는데,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2023년 기준 540만 원이다. 50%인 270만 원을 4로 나누면 67.5 만원이다. 멕시코 도시 근로자 빈곤율 기준 금액의 3.5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물가도 그 정도로 낮을까? 그렇지 않다. 외식 체감 물가는 한국보다 살짝 낮거나 비슷한 정도다. 식자재 물가는 그것보다는 저렴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그마저도 높아지는 추세다. 빈곤 계층 혹은 그에 준한 계층들 - 멕시코 인구의 절반 - 은 주식인 또르띠야나 빵으로만 배를 채우고, 정부가 금액을 고정해 저렴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생활하는 수밖에 없다. 반면에 변호사나 의사 등은 우리나라에 준할 정도로 임금이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멕시코에서 좋은 일자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를 나오는 것이 필수적인데, 성적보다 태어난 집안이나 소개가 더 중요하다. 피부색으로도 계층이 구분된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빈곤 계층은 아주 많고 전체 소득 중 대부분을 상위가 독점하며, 계층 간의 사다리는 전무하다. 물론 삶이 팍팍하다는 사실이 불쾌한 접객 태도를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생활 수준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사를 하고, 이런 상황에서 자라나고 일하는 것을 상상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처럼 여러 사건에 마주친다. 처음에는 평소 하던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경험을 기반으로 그 사건들을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내 생각이 바뀐다. 그 사건들을 더 정확하고 사실에 가깝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나의 환경이 아닌 그들의 환경, 즉 여행지의 환경을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른 개인의 생애를 완전히 또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큰 조건의 차이를 기반으로 속내를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그 상상이 사실과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문제는 없다. 나는 상상을 통해 위안을 받고, 납득하고, 재미를 얻는다. 그리고 여행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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