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21
콜롬비아를 한 달 여행하고 난 지금, 이전과 마찬가지로 콜롬비아의 식문화에 대해 내 멋대로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보려 한다.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전편에는 주식인 단백질과 탄수화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 이번 편에서는 콜롬비아의 기호식품인 커피, 주류, 과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콜롬비아는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교류도 거의 없는 나라이지만, 한국인이 콜롬비아에 대해 알게 되는 루트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커피다. 콜롬비아는 세계에서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이어 4번째로 커피 원두를 많이 생산한다. 콜롬비아에는 적도에서 조금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안데스 산맥이 세 갈래로 지나고 있어 고산지대가 많은데, 이러한 열대 고산지대 지형은 커피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한다. 콜롬비아 중앙 고산지대에 위치한 마니살레스, 아르메니아, 메데진과 이 근처 마을에는 수많은 커피 농장이 위치한다. 콜롬비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소규모의 농장이 위치한 살렌토나 핀란디아, 하르딘과 같은 작은 마을을 방문해 커피 투어를 하곤 한다. 나도 살렌토에서 커피투어를 진행했다. 그때 가이드에게 들은 정보와 다른 경험들을 토대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커피 투어를 가면 커피 수확부터 한 잔의 커피가 되는 과정까지를 전부 다 체험할 수 있다. 원두를 수확하고, 껍질을 제거하고, 햇볕에 말리는 등 모든 과정을 말이다. 마지막에는 농장에서 재배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갈아서 커피를 내려서 마신다. 그 커피의 맛은 지금까지의 커피와 완전히 달랐다. 진한 검은색이 아니라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고 쓴 맛이 전혀 없고 마치 차를 마시는 것처럼 산미나 과일향을 느낄 수 있었다. 산지에서 바로 먹는 신선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차이의 가장 큰 이유는 로스팅이다.
한국인들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슬픈 일 일수도 있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것도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다크 로스팅 커피를 말이다. ‘다크’ 로스팅이라는 것은 커피를 높은 온도로 혹은 오랫동안 원두를 볶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커피 원두가 가진 본래의 맛인 산미, 과일향, 단맛 등은 줄어들고 쓴맛이 돋보이게 된다. 스타벅스는 이런 다크 로스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라이트 로스팅이나 미디엄 로스팅에서는 원두가 가진 맛이 잘 드러나는데, 그 맛은 농장, 고도, 강수량, 기온, 보관 등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 변화한다. 반면에 쓴 맛이 도드라지는 다크 로스팅은 어떤 원두를 사용해도 유사한 맛이 난다. 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기업은 세계 어디서든 언제든 균일한 맛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다크 로스팅 원두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커피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는 ‘진짜’ 콜롬비아 커피는 반드시 미디엄 로스팅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야만 콜롬비아 원두가 가진 맛을 잘 끌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증. 모든 콜롬비아 인들은 미디엄 로스팅해서 제대로 내린 ‘진짜’ 콜롬비아 커피를 마실까? 전혀 그렇지 않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띤또 Tinto라고 부르는 저렴한 커피를 즐겨 마신다. 살렌토나 하르딘 등 작은 마을의 광장, 도시의 빵집이나 식당을 가면 삼삼오오 모여서 이 띤또를 마시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띤또는 고품질의 커피가 아니다. 재배 및 수확에서 로스팅까지 가는 여러 과정 중에서 깨지거나 손상을 입은 원두들을 모아서, 그 흠결을 덮기 위해 다크 로스팅을 한 원두로 내린 커피가 띤또다. 저렴한 카페나 한 잔에 한화 300원 ~ 1000원으로 저렴하다. 그렇지만 내 입맛에는 이 띤또가 한국에서 먹는 일반 커피보다 더 맛있었으니, 이게 바로 산지 직송의 힘이 아닌가 싶다. 고품질 커피를 마시려면 드리퍼로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를 찾아가면 된다. 커피 서너 잔 정도의 분량을 직접 내려주는 데에 한화 5천 원 정도다. 콜롬비아를 여행한다면 살렌토나 하르딘 같은 커피 산지에서 제대로 된 커피 한 잔 마셔보는 것은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콜롬비아 사람들이 다 커피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마을 광장에 가면 띤또를 마시는 사람이 절반이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절반이다. 역시나 콜롬비아에서도 맥주를 가장 즐겨 마신다. 콜롬비아에서 즐겨마시는 맥주는 모두 라거 맥주로 아귈라 Aguila, 포커 Poker, 클럽 콜롬비아 Club Colombia가 있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마시는 모습이나 마트에서 진열된 모습을 보면 아귈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듯하다. 아귈라와 포커 맥주는 둘 다 한국 카스나 동남아 맥주처럼 청량감이 강하고 목 넘김이 좋은 맥주다. 더운 날씨에 꿀꺽꿀꺽 마시기 좋은 느낌의 맥주다. 내 입맛에는 클럼 콜롬비아가 가장 맛있는데, 한국의 맥스 혹은 켈리와 비슷하게 맛이 진한 맥주다.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서너 명이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은 마트에서 맥주를 사면 한 병에 천 원 이하이고, 식당이나 바에서 사도 2천 원 정도로 저렴하다.
노래가 크게 틀어진 술집을 지나가다 보면 맥주 말고 다른 술을 작은 잔에 따라서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술이 바로 아구아르디엔테 Aguardiente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즐겨 먹는 술이다. 24도와 29도 버전이 있고, 설탕을 넣은 버전과 넣지 않은 버전(아마도 대체당)이 있다. 또 사과맛을 첨가한 아구아르디엔테 아마리죠 Aguardiente amarillo라는 노란색 제품이 있는데 이 쪽이 가장 메이저 한 제품인 듯하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들어 얼핏 생각하면 럼과 비슷할 수 있지만 아니스라는 향신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향이 난다. 때문에 소주 정도로 무난하게 즐기는 술은 아니고 호불호가 있다. 콜라를 타 먹어도 주스를 타 먹어도 아니스의 독특한 향이 뚫고 나와서 이상야릇한 맛이 난다. 25도 남짓의 도수 1000 mL 한 병이 만 원 정도이므로 알성비가 뛰어나다. 식당이나 바에서 한 잔 마셔보고, 취향이라면 병으로 사서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 하나는 럼 Ron. 해적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럼주다. 콜럼버스가 2차 항해 때 사탕수수 뿌리를 가져와 중남미 카리브해 지역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재배가 시작되었고,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럼도 이 지역에서 흔하게 먹는 술이 되었다. 도수가 높으며 일반적으로 35도로 판매된다. 그렇지만 멕시코에서 테킬라를 식당에서 찾기 어려운 것처럼, 럼도 식당에서는 거의 판매하지 않는다. 마트나 리큐르 샵에 가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럼도 위스키처럼 참나무 통에 넣고 숙성을 하는데, 오래 숙성할수록 나무 색이 배어 나와 갈색이 되며 맛도 부드러워진다. 한국에서는 주로 칵테일 베이스용으로 숙성을 거의 하지 않은 화이트럼 - 주로 바카디 - 정도만 볼 수 있지만 콜롬비아에는 종류가 다양하다. 여러 화이트럼이나 레몬 등 맛을 첨가한 화이트럼도 있고, 3/5/8년 숙성한 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Ron Medellin이나 Ron Viejo de Caldas 가 대표적이다. 5년 숙성한 럼을 처음 맛보았는데 화이트럼처럼 콜라나 주스를 타지 않고 그냥 얼음에 넣어 먹어도 괜찮을 만큼 달달하고 풍미가 느껴졌다.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5년 숙성 럼 1병에 1.5만 원 남짓이다.
마지막 기호식품은 바로 과일이다. 남미에서는 과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과일의 종류도 아주 많고, 저렴하고, 달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과일 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렌지, 만다린, 파파야, 애플망고, 수박, 멜론 같이 비교적 익숙한 과일 이외에도 산딸기 Mora, 마라꾸야(패션후르츠) Maracuya, 구아바 Guayaba, 타마린도 Tamarindo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길거리 노점에서 이런 과일들을 먹기 좋게 썰어서 플라스틱 컵에 한가득 넣어서 이쑤시개를 꽂아서 판매하는데 비싸도 3천 원 정도다. 어떤 과일을 선택해도 실패할 일이 없을 만큼 대부분 맛있다. 즙 많고 달달한 애플망고가 한가득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다가가서 구매할 수밖에 없을 정도. (딱 한 가지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촌타두로 Chontaduro다. 밤 같은 식감에 아무 단맛이 없고 퍽퍽해서 다 먹지 못했다.) 길거리 노점에서만 과일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식당과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를 판매한다. 가격도 비싸야 3-4천 원 정도다.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섞어서 먹기도 하고, 얼려서 아이스크림처럼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과일이 너무 비싸니, 콜롬비아에서 과일을 먹을수록 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