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23
이번 여행에서는 수하물 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크기의 배낭을 각자 하나씩만 메고 다니고 있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우리 전체 짐을 보고는 어떻게 이렇게 작은 가방으로 수십일째 여행을 하고 있냐며 놀라곤 했다. 이처럼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오래 여행한다는 것은 짐을 어떻게든 줄여서 꼭 필요한 것만을 간추리는 작업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또한 여행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러한 여행의 특징 덕분에 거주공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 생각과 현실적인 여건을 종합하여, 장차 여행이 끝난 후 수도권에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집에 대해 기대하는 기능이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역시 수면공간. 원룸에서 약 5 년간 살면서 가장 불만이었던 점은 생활공간과 수면공간이 합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한 명은 휴식하고 싶은데 한 명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 양질의 수면을 위해서도 생활공간과 수면공간의 분리는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투룸, 혹은 최소한 분리형 원룸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며 그중 한 방은 침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지혜와 나의 가장 잦은 휴식 패턴이 편하게 누워 스마트폰을 하며 TV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침대에서 볼 수 있는 TV는 필요하다. 물론 소파와 TV가 별도의 공간에 있다면 좋겠지만 (뒤에서 언급할)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수면공간인 침대와 휴식공간인 소파 및 TV를 한 공간에서 모두 해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부엌 및 식탁이다. 원룸에서의 분리되지 않은 침실 다음으로 큰 불만은 바로 작은 부엌이었다. 두 명이 요리를 하기에는 너무 좁고 싱크대도 작았고, 식기나 식재료를 보관할 장소도 부족했다. 그렇지만 이미 설치된 부엌은 마음대로 크게 만들 수는 없다. 대안은 아일랜드 식탁이다. 식기를 보관하고 재료 손질 등 다른 한 명이 요리보조를 해 줄 수도 있고, 때로는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가능하다면 큰 부엌이 있는 집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다면 아일랜드 식탁을 구입해 부엌을 확장하는 효과를 얻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식탁만 있다면 식사를 할 때 불편하다. 왜냐하면 서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아일랜드 식탁은 일반 식탁보다 높고, 때문에 바 의자 같은 높고 불편한 의자를 이용해야 한다. 잠시 앉아서 간단한 식사를 하는 정도는 괜찮다. 그렇지만 지혜와 나는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고 세팅하고 맞는 술을 매칭해 영상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그렇기에 아일랜드 식탁과 별개로 크고 편안한 탁자와 의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세 번째로 이어진다.
세 번째. 재택근무, 공부, 독서 및 글쓰기 등이 가능한 장소.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재택근무를 해야 할 때도 생기고, 일과 관련된 혹은 관련되지 않은 공부를 할 때도 있고,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할 때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테이블과 의자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넓은 원목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를 두고 그 장소에서 앉아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 느긋한 식사를 포함한 - 수행하는 그림이 현실적이다. 때문에 데스크톱은 두기 어렵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혹은 연결해서 사용할 모니터 정도만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이야기를 해 보자. 읽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생각한 것들은 아파트에 들어간다면 아무런 고민거리가 아니지 않나?’. 24평형 아파트는 보통 거실, 부엌, 방 2~3개다. 거실에는 소파와 TV를 두고, 방 2개는 침실과 서재로 사용하고, 부엌에 넓은 식탁을 두면 자연스레 위의 기대는 충족된다.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가능하다. 심지어 방이 3개라면 하나가 남는다. 만약 서울-경기-인천이 아닌 곳에서 회사 생활을 한다면, 혹은 돈이 많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아주 쉽다. 그렇지만 당장 앞을 볼 때는 수도권에서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고 출퇴근을 2시간씩 하는 것도 싫다. 그래서 문제가 어려운 것이다.
앞서 말한 이유, 특히 생활공간과 수면공간의 분리를 위해서는 방이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한다. 아파트는 논외로 하자. 유효한 선택지는 15평 내외의 빌라 혹은 10평 내외의 오피스텔이다. (시세는 위치에 따라 다르고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참고용으로만 보자.) 전세가는 빌라의 경우에 2억 정도이며, 분리형 원룸-투룸 오피스텔의 경우에 3억 정도다. 물론 이런 돈은 없다. 빌려야 한다. 가능한지 한 번 살펴보자. 지금 내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집을 구하려면 정부 정책대출을 이용해야 한다. 금리는 대략 3% 내외이며, 보증금의 최대 80%를 빌려준다. 보증금 3억짜리 집을 들어가려면 6천만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2.4억을 빌려야 한다. 2.4억에 대한 이자 3%는 1년에 720만 원, 한 달에 60만 원이다. 희망적으로 6천만 원이 있다는 가정하에 관리비 등등을 포함해 한 달에 80만 원은 거주비로 필요하다. 2억짜리 집이라면 약 60 정도일 것이다. (집이 넓고 싸다고 빌라가 무조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가구가 없어 그것들을 사는 비용과 배치하느라 줄어드는 평수도 생각해야 하고 몇 년 지나 다른 집으로 옮겼을 때 그 가구가 유효할지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피스텔이 보통 편의성이 좋은 곳에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큰 부담이다. 그렇지만 월세라면 이 돈으로 원룸도 어렵다. 정책대출이라 금리가 낮아 투룸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러므로 부엌이 같이 있는 거실, 그리고 방 1개. 이게 현실적인 집 구조다. 앞서 말한 세 가지 필수조건, 분리된 침실과 넓은 부엌, 넓은 테이블과 의자를 한 번 배치해 보자. 딱히 배치할 것도 없다. 부엌에는 아일랜드 식탁을 넣고, 그 옆의 거실에는 넓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를 둔다. 그리고 남은 거실 공간에 책장과 술장을 포함한 진열장 한 두 개 정도는 둘 수 있을 것이다. 침실에는 침대와 TV를 배치하고, 침대를 소파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대서 눕는 등쿠션을 두면 된다. 옷이나 다른 짐들은 오피스텔이라면 붙박이장에, 빌라라면 최소한의 가구를 사서 침실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만약 연봉이 오르고 돈을 모아서 더 큰 집의 이자를 감당할 정도가 된다면 집의 크기를 늘릴까? 그럴만한 여유가 생겨도 곧바로 할 것 같지는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세대출 2.4억에 대한 이자는 월 60이다. 여유가 더 생기면 차라리 전세금을 갚아 이자를 줄이거나, 연금저축 등에 투자해 세금혜택을 받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투룸이면 내가 집에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모두 얻을 수 있고, 큰 집에 대한 욕구보다는 나갈 돈을 줄이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지혜와 여행을 하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혜는 한국에서는 여행을 생각하고, 여행 와서는 한국 돌아갈 때를 생각한다는 모순을 지적했다. 참 맞는 말이다. 인간은 어제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설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