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루를 온전히 채워갈 힘

_ 내려놓고 미뤄두기

by 형준

해가 채 뜨지도 않은 오전 6시. 감긴 눈으로 이불을 개고, 추운 밤을 따뜻하게 지켜준 침대 위 매트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창문을 열고,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인 뒤 샤워를 하러 향한다. 양치를 시작으로 머리를 감고, 트리트먼트를 마구 비벼놓은 채로 남은 과정을 마무리한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급하게 몸을 헹구고 방으로 향해 인센스 스틱이 무사한지 확인한다. 스틱을 받치고 있는 홀더 위로 무탈히 떨어진 잿가루를 보며 내심 안도하며 하루를 준비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양말색을 정한다.


서랍 속 가지런히 정리된 와인색, 카키색, 갈색, 보라색,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양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왠지 모를 기대감에 와인색을 꺼내든다. 머리를 말리고, 흉터치료제와 선크림을 얼굴에 덧바른다. 거울 속 여드름 흉터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나를 잠시나마 짓궂게 타이른다. 주방으로 향해 커피 한 잔과 사과 한쪽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옷을 두툼히 챙겨 입는다. 가방에는 읽을 책, 아이패드, 텀블러, 안경 등을 포함해 오늘 하루를 위한 물건들을 채운다.


새롭게 시작한 직무교육을 듣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

창밖으로 보이는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챙기기 위해 애쓸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어떻게 하루를 채워나갈지 생각에 잠기다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충동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옷을 취소하고,

캘린더에 가득 찬 계획 하나를 지워내고,

오늘 가기로 결심했던 운동을 내일로 미뤄둔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필요한 식당 티켓 한 장을,

금요일까지 완성해야 할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시간을,

다급함과 부담 대신 마음 한편에 새길 여유를 얻는다.


그렇게,


내려놓고 미뤄둔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채워나가기 위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범함으로 가득한 올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