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시작하고,
하루를 무사히 보낼 준비를 마친 뒤 바깥으로 내딛는 첫 발걸음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탈 때도,
대중교통에서 하차해 목적지로 향할 때도,
내가 밟는 모든 것은 딱딱하게 굳어 조금의 편안함도 느낄 수 없는 인공 구조물로 이루어진다.
빽빽하게 들어찬 콘크리트 구조물을 통과하고, 아스팔트 바닥을 밟아가며 도착한 건설기술교육원.
인천 남동구청 근처에 위치한 곳.
여러 개의 건물과 넓은 부지 한 곳에 자리 잡은 잔디로 된 축구장.
둥글게 둘러싼 콘크리트 트랙 한가운데에는 겨울이 되어 갈색 빛깔을 갖춘 잔디구장이 기다리고 있다.
1시부터 시작되는 점심시간 이후, 약 20분 정도 그곳을 밟는다.
첫 발을 내딛으면 느껴지는 푹신함과 한 걸음 한 걸음 쌓여가는 푸석푸석 잔디 소리.
평소에 쉽게 느낄 수 없는 촉감과 소리는 왠지 모를 어색함으로 시작해 편안함을 가져다주고, 자질구레한 것들로 어질러진 머릿속을 가지런히 정리해 준다.
어제는 문득 잔디를 거닐다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언제였더라.
예민함과 불확실함으로 가득했던 중, 고등학교보다도 훨씬 전이었던 거 같은데..
그래, 유치원을 다닐 때 즈음이었던 거 같다.
당시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일주일에 2번씩은 꼭 앞마당에 위치한 밭을 맨발로 밟아가며, 그곳에서 재배하는 오이와 가지를 따오는 시간을 가졌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쓴 채로 평소보다 미끌거리고 발이 깊게 박히는 그곳을 나는 잘도 걸어 다녔다.
때로는 흙바닥으로 된 근처 공원을 - 현재 내 손 크기보다 작은 맨발바닥으로 -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선생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각자 똑하고 딴 채소를 직접 씻어 입 안 가득 채워 넣을 때면 지금은 느끼지 못할 순수함과 깨끗함이 온몸 구석구석 채워졌다.
뚜렷하게 기억하지도 못하는 옛 생각에 잠겨 잔디를 걷다 보니,
흐려진 기억의 크기만큼의 이유 모를 먹먹함과 그리움이 가슴속 빈자리를 메꿔놓는다.
덕분에 잊고 살던 추억이 지워진 채로, 흐려진 채로 그 나름대로의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12월부터 시작한 국비교육 과정은 어느덧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 주 평일 5일이면 끝이 난다.
그전에 많이 밟아봐야겠다.
어쩌면,
직무교육이라는 정량적 경험보다 더 값어치 있는 무언가를 건져갈 것만 같은 확신이 들어서일까.
두 달간 매일같이 20분씩 밟아온 잔디가 가져다준 모든 것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한가득 챙겨가기위해
그전에 많이 밟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