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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등 : 맨 처음을 나타내는 순우리말

_ 모두를 위해 앞에 나서는 꽃등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by 형준

매일 아침,

직무교육을 받기 위해 여의도에서 인천 남동구청역으로 등원하는 지은씨의 하루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지하철만을 이용하거나 가끔 버스로 환승하며 오고 갈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집으로 향하는 오후 6시 퇴근길은 매 순간 붐비는 사람들로 인해 본인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

인천 2호선 - 공항철도 - 9호선을 거쳐 집으로 향하는 동안 하루의 고단함과 지친 기색은 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꽉 찬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더해진다.


그런 지은씨에게 얼마 전 시각장애인 한 분을 도와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방면으로 향하는 검암역 공항철도 플랫폼은 양쪽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탑승방법은 오로지 각각 한 개씩 설치된 커다란 모니터 화면을 보는 것 뿐이다.

때로는 검암역을 직통으로 통과하는 지하철도 존재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루를 마무리한 채로 지은씨는 검암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다른 열차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는 그녀의 반대편.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반대편에 위치한 시각장애인 한 분이 서 있으셨다.

어째서인지 아무도 그분을 도와드리지 않았다.


각자의 눈앞에 들려있는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한 사람도,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에 줄을 서야 그나마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까 눈치 보는 사람도,

가방을 몸 앞으로 들고 큰 목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홀로 반대편에 서 있는 그분을 도와드리지 않았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지.


보다 못 한 지은씨가 그분께 다가섰다.


‘선생님, 이 쪽은 이번 지하철이 들어오지 않아요. 반대편으로 줄을 서셔야 해요.‘


그 순간만큼은 깜깜한 그분의 눈앞에 환한 빛 한 줌이 들어섰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의지한채로, 지팡이 끝에 닿는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에 의지한채로 서 있던 그분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셨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를 지나쳐갔던 모두는 각자의 시야를 가로막는 무언가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루를 보내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한 채로 서서 행동으로 쉽사리 옮기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이유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하철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지은씨의 마음을 전해받은 나는,

이제 다음 꽃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나서 다음 꽃등이 될 누군가에게 바통을 쥐어줄 수 있는 그런 꽃등이 되고 싶다.


모두를 위해 앞에 나서는 꽃등이 많아지면 좋겠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손을 건네고,

발걸음을 맞춰 함께 걸어주는,

그런 꽃등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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