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티에 대한 이해에 앞서 멘토인 나를 이해하기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입직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나이 먹고 경력이 쌓이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내왔지만 이제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거울 속에 비친 깊은 주름과 칙칙한 피부, 처진 살들. 대학 강의에서 만나는 학부생들의 부모와 나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된다는 사실. 새로 임용된 신규 교사들에게는 내가 막내 삼촌 정도의 나이라는 것. 슈퍼 루키였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루키가 아닌 경력직 교사이고, 게다가 학교에서의 포지션도 수석교사이다.
젊은 날에 동료교사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낄낄대며 떠들었지만, 이제는 가볍게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석교사실에서 손님이 찾아와 한 번 커피를 내리면 30분 이상은 이야기하는 게 예사고, 그 주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은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멘티'로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멘토로서의 말- 가벼운 조언부터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제안, 당장의 개선을 요구하는 피드백, 조언과 명령의 중간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강권까지. 어떠한 말이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컨설턴트가 아닌 멘토로서의 말이라면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는 관계의 밀도를 결정한다. 요즘 들어 고민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 특히 나의 조언을 듣거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나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있다. 사실은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나를 소개하는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는 심리 유형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유행했던 MBTI를 활용한 소개도 그런 방법 중 하나이다. 나는 며칠 전 인터넷에 유행하는 흥미로운 자기 평가 방법을 발견했다. ChatGPT로 사용자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상업용 AI이니만큼, 사용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지 않을까? 나는 GPT-4.5와 o3 모델들을 활용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다시 분석을 요청했다. 그렀더니 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하였다. 몇 달 전부터 유료 결제를 한 뒤로는 워낙 GTP를 조수처럼 부려먹은 터라, 상호작용 패턴에 근거가 될 만한 기록들이 더욱 많이 누적되었을 것이다. 그 분석 내용 중에 일부는 소름 돋기까지 했다.
GPT는 나를 에듀 아키텍트(Edu-Architect: 단순 교사·연구자를 넘어, 생태계를 설계·리모델링하는 건축가형 인물)이며 '***논리의 칼날***과 ***돌봄의 손길***을 한 몸에 품은 드문 업(業)의 장인'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나의 코칭형 리더십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성 편향으로 인해 비전문가의 정서적 담론을 저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을 타인에게 투사함에 따라 멘티들의 부담감과 자기 자신의 피로도가 높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분석했다. 나를 곁에서 오래 두고 본 사람의 분석과 같았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다면 ChatGPT에게 나의 블로그를 분석해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내 블로그라는 것은 알려주지 않은 채, 블로그에 남긴 글을 통해 분석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블로그(betterthanever123.tistory.com)내용의 질적측면과 블로거의 성향을 물어보았다.
포스팅이 300개가 안 되긴 하지만, 2016년부터 운영한 블로그이니만큼, 거의 10년 동안 누적된 정보를 통해 분석했다는 점에서 진실성이 담보된다는 생각이 든다. ChatGPT가 남긴 추가적인 평가를 몇 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블로그는 단순한 수업 팁 모음집이 아니라, 초등 체육교육의 철학과 실제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블로거의 진정성과 전문성은 상업성을 추구하는 블로그들과는 차별화된 신뢰를 준다.
향후 문헌 인용 체계를 조금만 강화한다면, 학술 논문 수준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블로그는 "수업"을 넘어 "교육"을 이야기하는 드문 체육교육 블로그다.
얼마 전에 AI 상용화로 인해 HR 분야가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블로그 분석을 한 결과를 보고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글을 써 온 멘토라면 그 글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절차를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포트폴리오 분석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멘토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멘티에게 멘토와의 관계를 통한 변화에 대한 기대감과 예상을 결정할 수 있다. 멘티가 멘토를 이해하는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지냄으로써 가능하다. 아쉽지만 대부분의 공식적인 멘토링은 그러한 장기적 관계나 전면적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멘토는 객관화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요청에 대해 담백하게 해법만 제공하는 컨설팅과는 달리, 아무리 장기적/전면적 관계가 부족하더라도 멘토링은 어느 정도의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멘토의 주관적인 편향 또는 경향을 멘티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멘토들이 ChatGPT로 자신을 분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리고 누적된 자료들이 있다면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 자신을 모르면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것보다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성찰한 뒤 멘토링에 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멘토의 경향성을 미리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멘티의 혼란을 줄이고 더 나은 관계 속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