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야?

by 구구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사는 사건과 상황이 생긴다. 한여름의 무더위, 인파 터지는 대중교통, 피서지의 바가지같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든 생각은 ‘왜 나야?’보다는 ‘아아..’였다.


나도 암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전부터 암 소재의 웹툰을 여럿 보며 미리 선행학습이 됐다고 해야 할까. 소아암 환자들 생각까지 하면 할 말이 더 없다.


뉴스에 탈 만한 히스토리가 없는 삶이었다. 뼈 한 번 부러진 적 없고, 위험한 동네에 가서도 소매치기가 노린 것은 옆 친구의 가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묻지마 폭행+성폭행’에서도 천운으로 살아남았다. 일단 이 지랄을 안 당한 것만 해도 운이 좋은 한국 여자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평탄한 인생에 많은 감사를 하며 살았고, 항상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까지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 굴러들어 온, 생애 역대급 재앙이었다.


그래, 나라고 피할 수 없다. 태어난 게 땡큐인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따시키고, 폭염에 죽으라고 내몰고, 마약 먹이고, 등 뒤에서 칼 꽂는 레벨 정도의 곳에서 이만치 잘 살았으면 한 번쯤은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이 감사의 날들이 잠시 정지된 것일 뿐이다.


시작은 폐렴이었다. 기침이 너무 심해서 고가의 의료장비가 다 있을 법한 병원에 일부러 갔더니 바로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폐렴을 확인하고 정밀검사를 하니 기관지에 있는 종양까지 얻어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왜 혹 같은게 생겼냐고 투덜거렸다. 몇 주 후 기관지 내시경 조직검사로 암 진단을 받았다. 열두 계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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