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인별슷하 연대기

by 구구


성공을 하면 성공담을 팔면 되고 실패를 하면 실패담을 내놓으면 된다. 나는 특별한 성공이나 성취를 한 적도, 모든 걸 다 건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한 적도 없는 시시한 사람이다. 성공,실패팔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를 많이 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 봤다.


1.얼굴 자랑

얼굴이 예쁘고(벌써 안 됨), 길 가다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봐도 된다면(절대 안 됨) 좋으련만 이건 태생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필터에 필터를 붙이면 예뻐보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폰에 사진기 어플 하나 없는 사람이다. 비포 에프터를 보면 바뀐 에프터에 기분이 좋기보다는 비포에 몸서리가 쳐져서 그런 짓은 할 수 없었다.


2. 돈 자랑

돈자랑에는 명품, 집, 차, 악세서리, 패션센스, 생활용품, 핫플 소개 등 여러 유형이 있는데 이런 걸로 이 판에서 빛나기에는 돈이 한참 부족했다.


3. 짤, 꿀팁, 정보성

예전에 유튜브용 영상을 몇 개 만들어봤는데 나는 극히 노잼인 사람이라 노잼인 주제로 노잼을 덕지덕지 칠해서 만들면서 보는 내가 더 힘들었다.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남은 것이 몸이었다. ‘원래 전교 꼴찌였는데 고1 때 작심하고 서울대 갔어효!’, ‘공부머리는 없었지만 성공신화 이뤘답니다! 이거 내 가게!’ 이렇게 자신의 ‘노오력’과 ‘끈긔’로 자존감을 올린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날 내세우기도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16*cm, 5*kg, *컵, 긴 팔 다리. 스무 살 때부터 긍정적 몸평을 하도 당해서 귀에 딱지가 앉아 잘 들리지가 않을 정도. 자랑을 하면 제대로 할 것이지 이런 하찮은 신체사항도 별‘*’로 가리는 걸 보면 나는 정말이지 골수 은둔자?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별 선배님들이 얼굴을 가리고 찍는 히스토리를 남기셨기에 그냥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몸매 자랑으로 이 바닥에서 어필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 남들 다 하는 자랑, 나도 좀 하자.


닉네임을 정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불러줄, 부모가 아닌 내가 정한 새로운 인터넷 세상의 이름. 주위 사람들 중에 가장 극단적인 생각(소심한 탓에 행동은 아님.. ㅠ)을 가진 사람이 나다. 내가 주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한 파괴 혹은 심각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인스타에서 다크하게 흘러갈 일이 뭐가 있나. 사랑으로 가득찰 나의 인스타에서 쓸 이름으로 ‘빰빰공듀’, ‘앙밍키’, ‘나딸긔’, ‘새콤희’ 등 귀염뽀짝한 닉네임이 떠올랐다. 본인은 귀여운 걸 좋아하지만, 세상엔 멋있어 보이고 싶고. 너무 유아틱해서 차마 쓰진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쳐 ‘구구’라는 닉네임이 탄생됐다. 그리하여 위대하신 인스타스타 구구님은 자신의 성향에 맞게 최대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2022년 7월경 인스타를 개설한 것이었다.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지 않으십니까? 장엄한 역사서를 펼치기 전! 1년 전 2021년 여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 역병 코로나가 창궐해 어딜가든 백신, 마스크 얘기만 하던 무시무시하던 그 시절, 각성 전의 구구님은 역대 최대 몸무게를 찍고 있었다. 60kg가 넘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헬스장을 등록하게 되고 헬창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정말 웃긴게 운동을 헬창처럼 했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 헬창스러워졌다. 웨이트 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과연 구구는 본인이 그렇게 따져대던 헬스인의 실루엣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자전거를 많이 탄 덕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전적 영향으로 인바디가 운동 시작 초창기부터 좋았다. 살만 조금 걷어내자 ‘관리는 하는구먼’ 정도의 모냥은 갖추게 됐다.


운동 첫 시작은 동네 조그만 헬스장이었다. 주차가 헬이라 옮긴 두 번째 헬스장은 체인이 있는 꽤 규모가 있는 곳. 다양한 지점으로 원정을 다니며 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운동복이 옷장 가득 쌓여져 있는 헬스 유저가 됐다. 근데 큰 물로 옮기고 나니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젊은 층일수록 헬스장에서 본인이 본인 촬영을 그렇게들 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자기어필의 시대, 나의 인스타 선배님들이셨다.


다시 大인별슷하 연대기로 넘어오자. 인스타에서는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을 주로 피드를 올리는 계정을 '운동 계정'이라 부른다. 나도 운동 계정을 시작했다. 헬스장에서 하라는 운동은 덜 하고 셀카를 찰칵찰칵 찍어대면서.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몸이라 챡 붙는 운동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미안하다...사실 무시무시한 인스타에 오면 나는 평범한 몸이다. 망상이다)


사진을 올리다보니 다들 헬스장에서만 사진을 찍는 게 좀 갑갑해 보였다. 그래서 리모콘 있는 삼각대를 사고선, 외투 안에 레깅스를 입고선 공원으로 나갔다. 대박이 터졌다. 다들 지루했던 것이다. 자연광 없는, 쇠 냄새 가득한 뻔하디 뻔한 헬스장이. 푸릇푸릇한 풀밭과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운동복 피드들은 좋아요!가 500개 이상, 1000개씩도 터졌다. 참고로 내 계정에 박제된 유일한 고정 피드의 좋아요! 기록은 6836명이다. 넘쳐나는 DM과 팔로워... 이대로 가면 10만 명도 금방이겠다 싶었다. 사진용 스튜디오까지 대여도 해 보는 등 몇 달 간 열심히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원래 끈기가 좀 없는 편.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뽐뿌질을 주춤주춤하면서부터 섹시한 사진을 찍고자 하는 내 열정도 식었고 대중에게 피드 노출이 줄며 팔로워도 끊겼다.


인스타그램 성공가도는 주춤했지만 운동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헬스 피드를 올린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헬스는 뒷전으로 좀 재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한다고 레깅스에서 벗어나 러닝용 옷을 또 사댔다. 그중 가장 큰 돈이 들어간 것들이 러닝화, 러닝용 스포츠와치, 스포츠 선글라스였다. 3대장 중에서도 가장 고가인 와치와 선글라스를 분실하기도 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했지만 러닝에 얼마나 빠졌는지 와치랑 선글라스를 또 샀다. 내 첫 경기인 2022년 11월 20일 손기정 마라톤 10km 부문에서 페이스 7'23''/km, 1시간 12분대로 감격스런 완주를 했다. 내 마지막 경기가 되버린 2023년 3월 19일 동아일보 서울마라톤 10km에서는 6'20''/km, 1시간 3분 30초를 기록했다. 러닝의 세계에선 여자 기준 10km를 1시간 내로 끊어야 달리는 사람 취급을 해준다. 뭐 그렇게 잘 달렸던 것도 아니다.


대회 기록이 말해주다시피 러닝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헬스장처럼 섹시한 느낌의 피드를 올리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1만 1천 팔로워에서 내리막길을 타기시작했다. 1만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 이런 정체기 속에 난 암에 걸렸다. 운동은 2년, 휘황찬란한 인스타 연대기는 고작 1년을 찍고 난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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