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독일과 슬로바키아를 살짝
할슈타트에서의 여정이 끝나고 비엔나로 넘어가는 날이다. 한식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9시 15분 페리를 타기로 했다. 10시 30분 기차여서 너무 서두르나 싶었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돌발 상황은 언제든 생길 수 있기에 서둘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편도 1인 4유로를 내고 페리를 탔다. 할슈타트가 멀어져 갔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아주 작은 건물 하나와 야외 벤치 몇 개가 보였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 뜨거웠으므로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 벤치에서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새를 못 참고 근처를 걷겠다며 나갔다. 나는 핑계고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시간이 되어 부모님께서 돌아오셨고 기차를 타려고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10분 연착되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중간에 아트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망했구나 싶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상황이었을 많은 사람들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럽에서는 흔히 있는 연착이지만 날은 덥고 다소 짜증이 났다.
기차가 도착하여 일단 타고 아트낭으로 갔다. 그리고 곧장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상황 설명을 하자 두말하지 않고 곧장 티켓을 바꾸어 주었다. 1시간 뒤 기차였고 또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우선 별 수수료 없이 티켓 교환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여기며 군말 없이 기다렸다가 비엔나로 향하는 1시 1분 기차를 탔다. 그런데 내 자리에 웬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내 자리라고 설명했으나 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결국 난 그 옆자리에 앉아서 불편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역시 비엔나는 나랑 안 맞아.'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중간에 내리고 이제야 좀 편하게 가려나 싶었는데 갑자기 웬 어린아이가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그 칸이 떠나가라 울고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젊은 엄마는 전혀 케어하지 않았고 결국 난 한숨도 못 자고 기차에서 스트레스만 잔뜩 안은 채 비엔나까지 가야 했다. '역시 비엔나는 나랑 안 맞아.'
기차역과 가까운 숙소로 잡았기에 숙소까지 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안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 엄마와 아빠 때문에 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실에 펴진 엑스트라 베드 때문에 밥 먹을 공간이 너무 좁았다. 꽤 큰돈을 지불했고 방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는 평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부분은 실망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 밀린 빨래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난 너무 피곤했다. 한 시간이라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내 카드를 들고 혼자 장을 보겠다고 나간 엄마를 일단 믿고 난 한숨 자려고 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결국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 다행히 중간에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는 빌라에서 혼자 장을 봤다며 별 일도 아니구먼 호들갑을 떤다고 나에게 뭐라고 했다. 내가 엄마를 너무 애 취급 했나 싶었다. 우리 셋은 숙소로 돌아오던 중 다른 마트에 한 번 더 들러 추가로 필요한 것을 구매해 돌아왔다. 닭날개, 샐러드, 과일 그리고 맥주를 먹으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밀린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비엔나의 첫날을 정리했다.
제대로 된 비엔나 여행이 시작되는 둘째 날. 시내 투어를 예약했다. 비엔나는 문화, 예술, 역사가 깊은 도시라 어지간해선 만족이 안될 것 같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내가 하나하나 검색하며 설명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길에 동상이며 건축물이며 도시 자체가 살아있는 유적지이다 보니 투어밖에는 답이 없다 여겼다. 비엔나에는 수많은 투어가 있었는데 후기가 몇천 개인 것부터 이제 막 새로 생긴 투어까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다 보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결국 난 후기는 많지 않지만 전문가의 느낌이 물씬 나는 투어를 선택했다. 9시에 한 역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호텔 조식을 먹고 어제 미리 사둔 교통권과 미팅 장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트램을 타고 내린 후 약속 장소까지 조금 걸어야 했다. 도착하자 가이드님께서 먼저 와 기다리고 계셨다. 활기찬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우리 가족 말고 두 분이 더 오신다고 했는데 트램을 잘못 타시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다. 그래서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이동했고 젊은 여성 두 분을 겨우 만나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었다.
가이드님은 정말 비엔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역사, 건축, 예술, 문화 등 갖고 계신 지식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길을 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건축물과 동상에 대한 모든 설명을 해주셨고 하나라도 더 보여주시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반복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무료로 박물관도 관람할 수 있었고 평소에 보기 어렵다는 클림트의 천장화도 볼 수 있었다. 성당은 물론 대학 건물과 훈데르트 바서 건물까지 야무지게 관광하였고 점심은 비엔나 대학에서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으며 젊은이들의 자유를 온몸으로 느꼈다. 가이드님은 비엔나에서 제일 맛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사주셨고 비엔나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팁도 알려주셨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에서 멋진 기념품도 사고 마지막으로 스테판 성당까지 보며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2만 보가 넘는 어마어마한 하루였고 너무 많은 지식을 머리에 담느라 두통이 올 정도였지만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저녁은 한식당 수라에서 돼지갈비를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 마트에 들러 맥주 한 병을 사고 빡셌지만 많은 걸 얻었던 하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일은 쉬엄쉬엄 다닐 거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날은 어제의 여파로 늦게 일어났다. 깨고 보니 7시 30분이었다. 평소 6시면 일어났던 것에 비하여 늦게 일어난 셈이다. 비엔나에는 여행 패스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그래서 여행 오기 전부터 무엇을 사야 할지 너무 많이 고민을 했다. 대문자 P인 엄빠의 성향을 고려하여 그냥 교통권만 끊었고 가고 싶은 관광지는 그때그때 사전 예매를 하기로 했다. 조식을 먹고 오늘은 레오폴트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레오폴트는 클림트, 에곤쉴레, 코코슈카 등의 모더니즘 작품들이 많은 미술관이다.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이미 입장권을 예매해 두고 트램을 타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방을 맡기고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여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의외로 엄마가 매우 좋아했다. 각 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실제 작품들을 감상하며 오랜 시간 미술관에 머물렀다. 오후 1시까지 관람을 하고 스테판 성당 근처로 이동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피자, 파스타, 맥주를 시켜서 먹었는데 되게 맛있진 않았다. 야외에서 식사를 했는데 번화가여서 정신이 좀 없었다. 이어서 베드로 성당에 가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을 보았다. 근처에 유명하다는 고급 식료품점에서 비싼 발사믹 식초를 구매했다. 그리고 엄마가 벨트를 사고 싶다고 하여 H&M에서 벨트를 구매했다. 오늘따라 날이 매우 더웠고 미술관에서 오래 걸어서인지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쇤부른 궁에 가기로 한 날이라 미리 샌드위치 등 피크닉 음식들을 사두었다. 잠이 쏟아졌다. 저녁을 대충 먹고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