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독일과 슬로바키아를 살짝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가늠이 안된다. 5월이 끝이 나고 6월의 첫날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잘츠에서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이면 할슈타트로 넘어가기 때문에 오늘은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간만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으로 누룽지를 먹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1번 버스를 타고 마카르트 광장에 내렸다. 자물쇠들이 잔뜩 달려있는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다리의 역사에 대한 패널이 곳곳에 있었지만 굳이 주의를 기울여 읽진 않았다. 양쪽으로 강이 흐르고 강가에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림을 그려 판매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우리는 모차르트 생가로 향했다. 잘츠부르크 카드로는 못 가는 곳이 없었다.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했다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피아노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보며 천재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 생각했다. 여행 오기 전에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봤던 모차르트의 생애가 떠올랐다.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등 수많은 말을 듣고 지금도 듣는 삶. 그럼에도 그가 만든 수많은 곡들을 듣기만 해도 아!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지금, 현재.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생가를 나와 모차르트 초콜릿을 먹어보기 위해 카페 Furst를 갔다. 수많은 모차르트 초콜릿이 있지만 여기서 파는 게 오리지널이더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을 먹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 이곳에서 초콜릿 3개를 구매했다. 파란색 포장지에 모차르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벗겨내자 동그란 구 모양의 초콜릿이 드러났다. 안에 들어있는 필링까지 맛있었다.
다시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 모차르트가 이후 살았다는 집을 구경하고 근처 카페 자허에서 자허 토르테, 커피, 간단한 브런치까지 주문하여 점심을 먹었다. 비엔나에 있는 카페 자허는 웨이팅이 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츠에 있는 곳은 그 정도는 아니어서 수월하게 입장했다. 카페에서 휴식을 조금 취하고 엄마, 아빠에게 양조장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지역의 맥주인 스티글 양조장에 방문하는 것 또한 잘츠부르크 카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부모님은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양조장이 있는 한 마을에 내렸다. 걷고 또 걸어 양조장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내부가 크고 잘 되어 있었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고 공짜로 맥주 시음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맥주를 3병이나 무료로 받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눈을 붙였다. 그리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잘츠부르크의 야경을 보고 싶었다. 재정비를 해서 저녁 7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했다. 묀히스베르크 앞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으로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용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호엔성과는 또 다른 잘츠의 풍경을 만끽했다. 문제는 해가 너무 늦게 진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해는 지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야경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9시까지 마감이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8시 50분에 전망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아와 내일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미리 짐을 쌌다.
할슈타트로 넘어가는 날. 사실 전날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할슈타트의 선착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비를 쫄딱 맞으며 캐리어를 질질 끌고 20여분 가까이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워낙 물가가 높은 곳이라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밤새 선착장에서 숙소까지 갈 수 있는 택시며 버스며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난 그대로 불안함만 안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누룽지를 먹고 8시 30분쯤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챙겨 아시안마트부터 들렀다. 물가가 어마어마한 할슈타트에 들어가기 전에 한식을 잔뜩 사기로 한 것이다. 9시에 땡 하고 마트가 열리자 햇반, 김치, 단무지, 통조림, 라면 등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10시 11분 기차여서 커피와 빵을 사서 좀 기다렸다가 제시간에 탑승했다. 할슈타트까지는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서 아트낭 푸하임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갈아탄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을 더 달려 할슈타트 역에 도착했다. 역은 작았고 곧장 페리를 타기 위해 그 옆 작은 샛길로 내려갔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할슈타트로 들어가기 위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내리막을 내려갔다. 1인당 편도 4유로를 주고 티켓을 끊어 페리를 탔다. 저 멀리 안개가 낀 아름다운 할슈타트가 보였다.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윈도우 배경화면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선착장에서 숙소까지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대부분 평지였고 부모님께서도 이 정도는 걸을 수 있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숙소는 컸다. 1층에 다소 무섭게 생긴 주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김새와 다르게 그녀는 매우 친절했고 곧장 우리에게 열쇠를 쥐어주며 숙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방은 예상보다 더 넓었다. 안방과 거실, 작은 방과 부엌, 발코니까지 있었다. 저 멀리 할슈타트 호수가 보이는 멋진 전망까지. 넓은 식탁에 장본 것들을 늘어놓으며 우리는 연신 감탄했다. 곧장 할슈타트를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호수를 따라 걷다가 홀린 듯 식당에 들어가 송어와 스테이크를 맥주와 함께 먹었다.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송어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긴 했지만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마르크트 광장과 뷰포인트를 관광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사진도 찍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할슈타트를 온다는데 우리는 숙박 예정이라 마음이 여유로웠다.
사실 나 역시 할슈타트를 당일치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작년 옆반 선생님께서 할슈타트에서는 숙박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권유했다. 특히 부모님께서 매우 좋아하실 거라며 말이다. 과연 그 말은 맞았다. 촉박하게 이리저리 뛰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비가 오려고 하는지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자그마한 마트에서 소시지, 요구르트, 계란을 사서 돌아왔다. 밖에 비가 내렸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8시쯤 라면을 끓여 먹었다. 비가 내리는 할슈타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일은 부디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기도가 무색하게 다음 날 아침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안개가 깔린 할슈타트 호수가 아름다워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풍경을 즐겼다. 10시에 가까워지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외출 준비를 하고 숙소 앞 공원에서 풍경을 감상하다가 근처에서 플리마켓이 거의 끝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정리를 하는 주인들에게 서둘러 가서 요구르트와 큰 호밀빵을 샀다. 묵직해진 가방을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대형 관광버스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큰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계단을 타고 오르니 작은 산길이 나왔다. 등산을 좋아하는 엄마가 크게 반기며 산을 오르자고 하셨다.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 아까 구매한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먹기도 했다. 소금으로 유명한 마을답게 소금 광산과 오래된 철길도 볼 수 있었다. 폭포까지 보고 나자 길이 끊겨있었고 우리는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먹을 물을 담아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어서 일단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라면과 소시지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현금 100유로를 인출하여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백조를 보며 연어와 칠면조, 맥주를 먹었다. 먹는 중간에 비가 잠깐 내렸지만 금방 그쳤다. 선착장에 들러 내일 타고 가야 할 배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숙소 앞에 있는 공원에서 할슈타트의 야경을 보았다. 늦은 시간까지 할슈타트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좋은 곳에 있으니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할슈타트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