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부모 해외 연수 보고서 4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독일과 슬로바키아를 살짝

by 고내

인터라켄 마지막 날. 새벽 아직 해도 뜨기 전. 엄마와 아빠는 욕조에 물을 받느라 부산스러웠다. 잠이 오질 않는다며 방을 또 뒤집었다. 여행을 가기 전, 과연 내가 언제 폭발할까? 폭발 시점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여행 4일째만에 나는 침대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왜 새벽부터 이러는데!!! 왜!!!!!!"

뭐, 그냥 나 혼자 소리 지른 사람 됐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가볍게 무시하고, 새벽 반신욕을 즐겼다. 나는 그냥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눈물도 안 나왔다. 애초에 나는 가이드 겸 심부름꾼으로 온 처지였다. 깨라고 깨고 자라면 자야지 뭔 말이 많나. 어김없이 해가 뜨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7시에 조식을 먹었다. 거울을 보니 윗입술이 터져있었다. 그러려니. 8시에 준비를 하고 나섰다. 오늘은 알프스 산맥 트레킹을 계획한 날이었다. 엄마가 늘 텔레비전을 보며 꿈꿔왔던 일이라 나는 기차 시간부터 트레킹 코스까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쿱마트에서 간식을 사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문을 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오늘이 무슨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라 아마 장사를 하지 않을 거라며 나에게 그냥 가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패스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동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 역으로 갔다. 거기서 피르스트까지 올라가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탑승장까지 걸어갔다. 어제 눈보라가 치던 날씨와는 다르게 너무나 맑은 하늘이 반가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린델발트 마을을 즐기며 걷고 있었다. 피르스트에 도착하자 만년설은 물론 깨끗한 하늘까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잘 나와서 엄마와 아빠를 세워놓고 수백 장은 찍었던 것 같다. 아찔한 스카이워크도 걷고 스파게티와 빵과 커피를 시켜서 쌀쌀한 피르스트 바람에 몸을 녹이며 맛있게 먹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할 차례이다. 피르스트에는 각종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도 부모님도 썩 즐기는 편은 아니기에 우리는 곤돌라를 타고 보어트역에서 내려 그린델발트까지 걷기로 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화와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 눈앞에는 웅장한 아이거북벽, 맑은 하늘과 선선한 날씨까지. 내리막이라 종아리가 나중에 아프긴 했지만 그 풍경들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너무나 행복해하셨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까지.

그린덴발트 마을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고 다시 인터라켄 동역으로 왔다. 늦은 점심으로 호텔 식당에서 퐁듀를 먹어보았다. 나쁘진 않았지만 굳이 두 번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더쿨룸 전망대를 갈까 하여 탑승장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그나마 문을 연 쿱마트를 찾아 소고기를 비롯해 저녁거리를 가서 숙소로 돌아왔다. VIP패스를 야무지게 다 쓰기 위해 툰호수 유람선까지 타기로 했다. 서역까지 산책 삼아 걸어서 선착장에서 툰호수 유람선을 탔다. 여행은 정말 날씨가 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름다운 호수 풍경과 호수 주변 마을까지 선명하게 다 보였다. 툰까지 가려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중간에 스피츠라는 마을에서 내렸다. 포도 농장과 아기자기한 성이 있는 예쁜 곳이었다. 오르막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걸어서 스피츠 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다시 동역으로 돌아왔다. 하더클룸 전망대 상황을 힐끔 보았는데 여전히, 아직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VIP 패스 사용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리셉션에서 물과 티슈를 추가로 받아 방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과 햇반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다음 날은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날이기에 짐을 미리 싸두곤 일찍 잠들었다.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날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떠나는 날 날씨가 좋다니. 조금 서운했다. 융프라우를 제대로 못 본 것이 여전히 아쉬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너무 마음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취리히까지 간 다음 취리히에서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기차 여정이었는데 미리 1등석으로 예매를 해 두긴 했으나 너무 긴 시간이라 부모님께서 무료해하실까 걱정이 좀 되었다.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후 8시 59분 기차를 타고 2시간여 동안 취리히로 향했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일본식 식당에서 우동과 덮밥을 시켜 먹었다. 상가를 둘러보며 구경을 하다가 플랫폼으로 갔더니 기차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미리 지정해 둔 좌석에 앉아 긴 시간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미리 간식거리를 사두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후 6시 5분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커피와 주스를 마셨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은 생각보다 컸다. 숙소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아파트형 숙소였고 비대면 체크인을 해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님 방과 내 침대가 분리되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실에 있어서 부모님이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든 이야기를 하든 상관이 없었다. 취사를 할 수 있는 부엌도 잘 되어 있어서 아침 식사부터 이것저것 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유명하다는 식당을 버스를 타고 또 굽이굽이 걸어서 찾아갔는데 자리도 없고 주인도 싸가지 없어서 그냥 나왔다. 그리고 맞은편 큰 식당으로 갔다. 슈니첼, 굴라쉬, 샐러드와 맥주 두 잔을 시켰다. 맛을 되게 맛있진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친절했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타서 그런지 엄마와 아빠는 빨리 피곤해했다. 다시 잘츠부르크 역으로 돌아와 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과일과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 역시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일기를 서둘러 쓰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잘츠부르크 일정에 맞춰 잘츠부르크 카드 48시간권을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해 두었다. 교통은 물론 각종 관광지까지 이용할 수 있는 매우 요긴한 카드였는데 잘츠 일정 내내 정말 야무지게 아주 야무지게 사용했다. 이제는 새벽까지 일어나는 게 익숙해서 6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다. 조식을 미리 신청하진 않아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번은 먹어보기로 하고 7시 50분에 리셉션으로 갔다. 어제 퇴근하여 만나지 못한 숙소 직원과 간단하게 대화를 하고 조식을 신청했다. 계란, 시리얼, 요거트, 토스트 정도 있어서 흠, 한 번만 먹어도 되겠군. 판단했다.

날씨가 좋았다. 잘츠 카드에 포함된 관광지 중 운터스베르크 전망대에 먼저 가기 위해 숙소 앞 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타고 전망대 입구까지 갔다. 도착하자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케이블카가 워낙 커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탔다. 나름 산 꼭대기니까 춥겠거니 하고 올라갔는데 더워서 당황했다. 스위스에서 워낙 멋진 풍경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물론 아름다운 풍경이긴 했지만 가슴에 크게 와닿진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오는 길에 아시아마트를 가기 위해 내렸다. 이미 동나버린 한식거리를 사기 위해서이다. 기대를 많이 했으나 살 거리가 많진 않아서 햇반과 김치와 단무지 정도를 구매했다. 그리고 빌라 마트에서 고기, 빵, 소금, 올리브유 등을 샀다.

숙소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아까 마트에서 구매한 먹거리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아파트형 숙소라 따로 신청하지 않는 이상 방 청소를 해주진 않았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미라벨 정원으로 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었던 곳이라고 설명드렸다. 정말 영화 속 풍경과 똑같아서 놀랐다. 정원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맥주를 마시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호엔성을 가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탔다. 모차르트 생가를 비롯해 다양한 관광지가 몰려있는 구시가지에 내렸다. 좁은 골목을 구경하며 걷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눈에 보이는 거대한 박물관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한국인 직원도 있을 정도로 크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박물관이었다.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어 입장료를 따로 내지 않고 관람이 가능했으며 화장실도 이용했다.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설명까지 들으며 건물 이곳저곳을 관람하고 나왔다. 호엔성에 올라가기 위해 푸니쿨라를 탔다. 성에 오르니 잘츠부르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성 내부 곳곳을 구경하고 내려와 모차르트 광장을 둘러본 뒤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가는데 카페에 가방을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서둘러 헐레벌떡 뛰어갔다.

버스를 타고 빌라 마트 근처에서 내려 맥주 두병을 샀다. 유럽에서는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물보다 맥주가 싸니까. 아까 장보고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해 먹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5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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