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부모 해외 연수 보고서 3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독일과 슬로바키아를 살짝

by 고내

여행 시작 첫날 아침부터 엄마와 아빠가 새벽, 그러니까 해가 뜨기 전부터 잠이 안 온다며 방을 뒤집어놓았다. 방을 따로 잡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이르게 했다. 어쨌든 딸이 자고 있으니 아침에는 좀 조용히 하다가 해가 좀 뜨면 움직이자 뭐 이런 생각 따위는 안 하는 분들이었다.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화장실을 들락날락 휴대폰으로 소리 크게 해서 영상 보기 등등 다채로운 행동을 하다가 엄마는 산책을 하겠다며 방을 나갔고 아빠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휴대폰을 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잠귀가 밝은 내 팔자라 여기며 결국 욕실로 들어가 양치를 했다.

조식이 있는 곳이라 약간의 기대를 안고 내려갔다. 역시나 별 건 없었는데 그래도 남이 해주는 밥은 언제나 감사였다. 밥이 있다는 후기에 선택한 호텔이었는데 정말 '밥'만 있어서 좀 웃겼다. 엄마와 아빠는 과일이 많다며 좋아하셨고 샐러드와 요구르트를 야무지게 챙겨드셨다. 부모님이 조식을 드시는 동안 난 게스트 카드 발급과 관련하여 약간 초조했는데 모바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인터라켄 게스트 카드가 계속 페이지 오류가 나는 바람에 발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로비에 가서 안 되는 손짓발짓 번역기를 써가며 겨우 게스트 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호텔 밖으로 외출. 5월의 스위스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특히나 밤에 비가 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생각지 못하게 챙겨 온 재킷이 감사했다.

실질적으로 여행 첫날이라 나는 융프라우 투어를 내일로 미루고 인터라켄 주변 산책을 계획했다. 구글맵을 보니 브리엔츠 호수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산책을 시작했다. 어젯밤과 새벽 비가 좀 내렸는지 공기가 깨끗했고 길도 정돈되어 걷기에 알맞았다. 엄마와 아빠는 모든 순간순간을 즐기며 감탄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잠을 못 잔 이슈가 있었지만 게스트 카드가 잘 해결이 되서인지 마음이 편했다. 약 40여분 정도 걷자 브리엔츠 호수와 마을이 나왔다.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마을은 고요했다. 평화로웠다. 사진도 찍고 유유히 움직이는 오리도 구경했다. 아기자기한 호텔들과 집들을 구경하며 계속 걷다가 길이 끊겨있어서 고민하다가 103번 버스를 타면 이젤발트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꽤 잘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구경하다가 103번 버스를 타고 이젤발트까지 갔다.

이젤발트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 장소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마을이다. 물론 나도 엄마와 아빠도 안 본 드라마이기에 썩 관심은 없었지만 마을 자체가 작고 이뻐서 어디서 사진을 찍든 예쁘게 나왔다. 자욱했던 안개와 구름도 서서히 개면서 아름다움은 배가 되었다. 유료 화장실, 뭐 어디나 유료 화장실이지만 어찌 됐건 꽤 비싼 가격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작디작은 마을을 돌아보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나왔다. 드라마에 나왔다는 장소였는데 사진을 찍으려면 5프랑을 내고 들어가야 했다. 흠, 그렇군. 가볍게 패스하고 호수를 배경으로 엄마와 아빠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리고 다시 103번 버스를 타고는 인터라켄 ost 역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 west 역까지 갔는데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인터라켄 ost 역은 주변 도시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특히 융프라우로 이동하는 데 용이한 기차역이다. 인터라켄 동쪽에 있어서 ost 역이며 대형 마트인 Coop마트가 바로 앞에 있다. 우리 숙소는 ost 역에 가까웠다. 반면 west 역은 좀 더 번화가이다. 맛집도 많고 숙소도 많고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적절하다. ost역과 west역은 걸어서 20분 정도라 크게 멀지 않지만 나의 경우는 융프라우 투어 때문에 ost 역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부모님께서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지만 투어 시간에 쫓기듯 달리기보다는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렇게 판단했다.

west 역 주변은 말 그대로 기념품 가게며 식당이며 훨씬 더 북적거리는 분위기였다. 거리를 걷다가 스위스 전통 식당에서 폭립, 스테이크, 리소토 등을 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초콜릿 카페에 가서 커피와 초코딸기 등을 먹었다. 인터라켄을 빙 둘러 흐르는 아레강 주변을 산책하는 데 물 맑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서 걷기에 너무 좋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ost 역 앞에 있는 Coop 마트에서 요구르트와 치즈를 사 왔다. 시차 적응 문제로 2시간을 꼬박 기절하듯 잤다가 9시쯤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햇반, 볶음김치, 무말랭이 등 한식으로 야무지게 먹었다. 하, 한식 더 챙겨 올걸 조금 후회했다. 동유럽은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이때는 깨닫지 못했다. 챙겨 온 비상 한식은 비상이 아니라 초반에 다 소진해 버린다는 사실을 이때는 몰랐다. 여하튼 피곤한 만큼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융프라우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역시나 이 날 아침도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면서 사람 잠을 못 자게 해서 결국 나 역시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일어나 씻고 7시에 조식을 먹었다. 어차피 8시 30분 동역에서 미팅이라 여유롭게 준비하는 거라고 합리화를 했다. 8시쯤 출발했더니 너무 일찍 도착해서 기차역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제시간에 도착한 가이드를 만나고 보니 그날 투어 인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리 신청한 동신항운 할인권을 꺼내자 가이드는 VIP패스 2일권을 구매해 주었다. 이 VIP패스는 이후 여행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이 된다.

우선 인터라켄 동역(ost)에서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이라는 도시로 이동한다. 그리고 클라이네 샤이텍까지 산악열차를 탄다. 모든 여정은 VIP패스권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가이드는 이동 내내 스위스의 역사와 현재 상황, 각종 기념품과 꼭 먹어야 할 음식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고산병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다양한 초콜릿을 포장해 하나씩 나누어주었고 덕분에 나를 비롯하여 엄마와 아빠 역시 큰 문제없이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중간에 내려서 본 융프라우와 아이거산은 고산병이고 뭐고 너무 아름다워서 하염없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융프라우 꼭대기. 눈보라가 몰아쳤고 진심 정말 매우 추웠다. 나름 이것저것 챙겨 입었지만 택도 없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융프라우의 풍경과 얼음계곡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며 스위스 국기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 무슨 정신으로 사진을 찍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귓방맹이를 후려치는 눈바람에 혼비백산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는 매우 즐거워하셨다. 5월에 눈보라라니.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며 좋아하셔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는 어떻게든 날씨가 좋아지길 바라며 투어객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주고 기다려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후 얼음궁전을 한 바퀴 돌았고 스핑크스 전망대를 들렀다가 내려와서 그렇게 기대하던 신라면을 먹었다. 돈 내고 사 먹으면 약 15,000원이었을 신라면은 눈보라를 한참 동안이나 맞고 먹어서 그런지 너무너무 맛있었다. 국물이며 건더기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 우리는 넋이 나가 멍하니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반대방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곤돌라를 탔다. 비가 내렸다. 산안개는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곤돌라 창문에 방울방울 맺히는 빗방울과 아래로 펼쳐진 초록빛 마을이 멋졌다. 그린델발트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고 인러라켄 동역을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해산했다.

조금 일찍 끝난 투어라 오후엔 뭘 할까 고민하다가 가이드의 추천대로 브리엔츠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Coop마트에서 닭다리와 과일을 사서 동역 뒤에 있는 선착장에 갔다. 거기서 브리엔츠 기차역까지 유람선을 타고 가며 호수를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제대로 된 풍경을 보지 못했다. 실내에 자리를 잡고 사 온 음식을 먹으며 안개가 가득한 호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브리엔츠 역에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동역으로 돌아와 저녁 거리로 Coop마트에서 소고기와 닭날개를 샀다.

사실 나는 멀티쿠커를 한국에서 사 왔다. 유럽은 소고기가 싸니까 고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스테이크를 구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티쿠커는 여행 내내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으며 다음 여행을 위해 현재 내 방에 보관 중이다. 여하튼 숙소로 돌아와 소고기와 닭날개를 구워서 햇반과 각종 밑반찬을 먹었더니 역시나 너무 맛있었다. 아침부터 강행군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곯아떨어졌다.

작가의 이전글야구 좋아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