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 팬 맞아요
근데 야구가 끝이 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0개 구단 중 5개의 구단만 끝이 났다. 그중에 한 팀이 우리 팀이다. 10월 4일 토요일. 원래는 10월 3일 금요일 개천절에 끝났어야 할 우리 팀의 마지막 경기는 비가 오면서 하루 늦춰졌고 어떻게든 끝을 미뤄보려는 노력, 까진 아니고 어찌 됐든 날씨 덕분인지 뭔지 우리는 계획보다 하루 늦게 마지막 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의 대투수 양현종 선발 경기였지만 시즌 내내 풀타임을 뛴 선발 투수는 1회부터 크게 실점을 했고 반면 우리 팀은 좀처럼 득점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경기만은 이겨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통한건지. 우여곡절 끝에 동점을 만든 우리 선수들은 9회 말 끝내기 외야 플라이로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2025년도 시즌 마지막 경기 기아 타이거즈 승리. 그리고 이제 좀 긴 비시즌이 시작된다.
지난 글에서 아주아주 짧고 간략하게 타이거즈에 대한 단상을 남긴 적이 있다. 타이거즈를 사랑하게 된 계기라던가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정도. 하지만 모든 경기가 끝이난 지금. 팀에 대한 뾰족뾰족했던 애정은 어느새 둥글둥글하게 깎여 좋았던 기억만 남아버렸다. 미우나 고우나 내 팀이지 누가 뭐라 해도 내 팀이지. 애초에 선수들이 미웠던 적은 없다. 낫아웃 삼진일 때 총알같이 1루까지 뛰던 어떤 선수 때문에,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는 어떤 선수 때문에, 만루를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글러브를 치며 짧게 포효하는 어떤 선수 때문에, 부상을 딛고 경기장에 돌아와 자신의 야구를 하는 어떤 선수 때문에, 2군에서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땀을 흘리던 그리고 드디어 1군에서 빛을 발한 어떤 선수 때문에,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팬들에게 다정하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던 어떤 선수 때문에. 그래서 난 선수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올해는 참 아픈 시즌이 맞다. 득점권 타율이 제일 낮은 우리 팀은 큰 점수차로 지거나 이기고 있어도 역전으로 지거나 끝내기로 지거나 연장 가서 지거나 영봉패로 지거나 등등 다양하고 다채롭게 졌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으로 드러나는 편이라 야구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은 실제 두통 및 어지러움, 불면 등으로 이어졌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야구를 멀리하라고 조언했다. 야구가 끝나면 내 이놈의 야구 다시는 안 봐야지! 하고 매번 다짐했다. 그럼에도 난 그다음 날 같은 시각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고 오늘의 라인업을 확인하며 뭔가 오늘은 이길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빠지곤 했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되기도 절망이 되기도 하며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10월, 시즌이 끝나버렸다.
이제 다른 팀들은 와일드카드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로 이어지는 가을야구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무리 훈련을 하고 2군 이하 선수들은 울산 fall 리그를 치른다. 그리고 언제 할지 모르는 호마당을 하고 마무리 캠프 그리고 스프링 캠프 준비를 할 것이다.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선수들 몇몇이 SNS에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호마당에 갈 수 있을까 꼭 가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며 명절 연휴동안 구단 유튜브를 복습했다. 그 와중에 내 최애 선수가 25분 꽉꽉 채운 영상을 준 건 깨알 같은 해피 포인트!
명절 내내 이의리와 윤도현의 고민 상담 영상을 무한정 돌려보며 생각했다. 난 야구를 좋아하는 걸까 야구 선수를 좋아하는 걸까 아님 야구를 보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이게 다 다른가? 처음엔 타이거즈 경기를 보고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선수가 생겼고 그렇게 늘 내가 하던 방식으로 덕질을 시작하게 된 과정이니 어쩌면 그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냥 좋아한다. 난 야구도 야구 선수도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는 나도. 우리 팀은 못 갔지만 다른 팀의 경기를 챙겨보며 호투하는 투수와 끈질기게 승부하는 타자들을 응원하고 호수비를 보며 감탄하고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는 난 사실 어느 팀이 우승하던 상관은 없지만 무조건 내년에는 우리 팀이 우승하리라 다시 한번 의지를 활활 불태워본다.(내가 왜?)
호마당 일정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티켓팅을 성공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내년에 복직하기 전에 이의리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뭐 역시나 안되면 어쩔 수 없고이다. 복직한다고 해서 야구를 끊는 것은 아니니 내년에도 난 기아팬일 것이고 갈 수 있는 경기는 어떻게든 티켓팅해서 보러 갈 것이기에, 다만 올해에 비해 보러 가는 게 좀 더 힘들긴 하겠지만. 어쨌든 내년에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부상 없이 건강한 기아 타이거즈를 보고 싶다. 늘 누군가 말하는 완전체 기아 타이거즈. 뭐 그런 건 없겠지만 어쨌든 올해 수술한 선수들은 차근차근 재활하여 완전히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올해 부진했던 선수들은 캠프 때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잘해줬던 선수들은 욕심이겠지만 더 잘해주기를. 그래서 한 번 더 우승하기를.
마지막으로 타이거즈는 정신 차리고 양현종, 최형우와 빨리 계약하길 바란다. 그 두 선수 없으면 진짜 기아 망해요. 농담 아님. 베테랑에 대한 대우를 잘하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