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안 좋아하는데요

기아 타이거즈 팬 아니에요

by 고내

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경기 봤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2009년 기아가 10번째 우승을 하던 해 마지막 경기를 자취방 아프리카 티브이로 봤다.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을 보며 와 나도 야구나 파볼까?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 그러진 않았는데 당시 2009년에 KBS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한 명도 없었고 구성도 조악하기 그지없는, 당시 야구 인기에 편승해 만들어 다시 보라고 하면 절대 안 볼 것 같은 그럼 프로그램이었는데도 난 꼬박꼬박 챙겨봤다. 숨어서 보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누가 물어보면 그게 뭐야? 하면서 열심히도 봤다. 덕분인지 뭔지 난 야구 룰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할 수 있었다. 아, 완벽하게는 아니고 그냥 좀 아는 정도. 여전히 보크는 왜 보크인지 모르니까. 그저 타석에 서 있는 김선빈이 쟤 보크예요! 하면 아 그렇구먼 하는 정도라서.

여하튼 얼렁뚱땅 야구룰을 알게 되었으나 난 야구를 파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당시 파고 있는 것이 많았다. 동시에 여러 개를 파기도 했고, 오버랩되어 여기저기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아이돌, 인디밴드, 배우 등등 야구까지 팔 여력이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야구룰만 머릿속에 남겨두고는 잊고 살았다. 중간에 야구를 봤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없는 관심이었는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돈도 벌고 덕질도 하느라 돈과 시간이 남아나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 야구 어느 팀 응원하냐고 물어보면 기아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안 보고 있어도 난 기아를 응원했다. 난 광주 사람이고 중학교 때 여름 방학 숙제로 무등 경기장에서 야구 경기를 봤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누가 경기를 뛰고 있는지도 알았고 새로 경기장을 지었다는 것도 알았다. 말만, 무늬만 기아팬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알고 있었다.

2017년 기아가 잘했다. 연일 기사가 쏟아졌다. 양현종? 알지 알지. 20승? 잘하는 건가? 오 대단한 건가 보네. 올해 우승할 것 같다고? 오 기아가 그러고 보니 언제 우승했더라. 대학 시절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하는 기아의 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기아가 계속 잘했나? 오래간만에 잘했나? 관심이 생길 듯 말 듯 했다. 관심이 생기기 전인지 후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내 수중에는 양현종 유니폼이 생겼다. 생긴 게 아니라 내가 샀겠지만 아무래도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돈을 쓴다는 것은 나의 덕질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2017년 한국 시리즈 경기를 생중계로 보며 2차전 양현종의 영봉승과 5차전 양현종의 마무리는 나에게 양현종 유니폼을 입고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서 기아 응원가라도 부르라고 부추기는 수준의 감동이었다.

늘 그렇듯 기아는 우승 다음 해에 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양현종은 잘했다. 대투수는 언제나 대투수였고 기아를 구하고 이끌고 살렸다. 스포츠라는 것이 그렇지만 항상 잘할 수는 없다. 양현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잘해줬다. 2019년에는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손에 쥐며 기아의 자존심을 지켰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때도 야구를 깊게 파지 않았다. 경기장을 찾아간 적도 없고, 경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제대로 앉아서 본 적도 거의 없는. 누가 물어보면 나 양현종 좋아해. 양현종 유니폼 가지고 있어.라고 답하는 정도. 그러나 2019년 말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커리어 하이를 보며 이번에야 말로 야구장을 직접 가보리라. 때마침 난 수원에 있었고 KT위즈 구장이 있으니 이 얼마나 직관 가기 좋은 조건인가.라고 생각이 들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2020년은 잔인했다.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살 수 있는 직업들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공연계는 정말 참담했다. 여행 업계도 마찬가지. 야구 개막이 늦어졌다. 학교 개학이 늦어졌으니 대부분 모든 것들이 늦어지고 지체되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선수들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에 등장했고 관중석은 텅 비어있었다. 매일매일 확진자가 나왔고 야구판도 마찬가지였다. 라인업에 있던 선수가 급하게 바뀌고 2군에 있던 선수를 급하게 올리는 등 별의별 상황들이 나왔다. 같이 밥을 먹은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넌 타석에, 난 포수석에 있었다는 이유로 격리 대상이 되어 경기 시작 몇 분 전에 쫓겨나는 선수도 있었다. 난리도 아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를. 여러 가지로 모두가 힘들고 잔인했던 시기.

2021년 여전히 건재한 코로나를 피해 사람들은 어떻게든 야구를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관중석이 듬성듬성 찼다. 마스크는 필수 대신 물 한 방울 마시는 것도 힘들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마스크가 등장했다. 입과 코를 막은 선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리고 기아에는 한 선수가 들어왔다. 야구로 유명하다는 광주일고 왼손 투수. 입단 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방송에도 나왔다는 선수. 아직 프로에서 공 하나도 던지지 않았는데 신인왕을 받을 거라 예상되는 어린 선수. 난 영문도 모르고 이 선수를 나의 최애로 점찍었다. 아, 이 말은 맞지 않다. 이 선수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전 이제부터 당신의 최애 선수입니다. 그래서 난 알겠다고 했다.

이의리는 여러 가지로 독특한 선수였다. 말 그대로이다. 정신세계가 독특했다. 그리고 야구를 잘했다. 야구를 사랑했고 즐겼고 잘했다. 마운드 아래에서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이상한 말을 해대는 만 19세 선수가 마운드 위에만 올라가면 눈이 돌아서 강속구를 쾅쾅 던져댔다.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선수였다. 시키는 거 안 빼고 하라는 거 다 하면서 겸손했다. 팬들을 좋아했고 팬들에게 잘했다. 입단 첫해 코로나로 1년 미뤄진 도쿄 올림픽에서 이의리는 빛이 났다. 아기가 울지도 않고 삼진을 잘 잡네요. 말 그대로였다. 물론 이의리는 뭐 지금도 그렇지만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그러다가 다쳐서 첫 해에는 4승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신인왕을 받았다. 이의리 말고는 받을 사람이 없었다. 36년 만에 나온 타이거즈의 신인왕이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2021년에 양현종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쉽다는 건 그냥 내 마음이고, 사실 양현종은 메이저리그에 갔다. 양현종에게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양현종과 이의리가 함께 더그아웃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 양현종은 미국에서 고군분투했다. 처음에는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기어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 멋진 데뷔전을 가졌다. 선수 본인보다는 아니었겠지만 난 누구보다 기뻤다. 도전이란 정말 아름다운 것이고 이 모든 과정이 양현종에게 행복이길 간절하게 바랐다.

이의리로 돌아가서 난 이의리의 유니폼을 사고 수원 경기를 보러 다녔다. 일정을 확인하고 꼬박꼬박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한, 진짜 야구팬이 된 것이다. 2001년 중학생 때 야구라는 스포츠를 인식하고 20년 만에 일어난 결과였다.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자 기록에 예민해졌다. 볼넷 비율이나 득점 지원, 수비 실책 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리는 잘난 선수였지만 그렇기에 온갖 공격을 받았다. 조금만 제구가 흔들려도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2022년 야구가 마냥 즐거웠던 선수는 1년 만에 야구를 즐기지 못하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2년 차 투수가 10승을 거두고 온갖 억까에도 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잘난 선수를 가만히 두지 않는 언론과 악플러들은 툭하면 난리를 쳤다. 국가대표에 뽑혔다가 이유 없이 탈락하질 않나, KBO에서 이의리만 볼넷을 주는 투수인 것처럼 자칭 전문가들은 툭하면 제구와 볼넷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의리는 2년 연속 10승을 달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잘해줬다.

2024년이 시작하면서 기아가 크게 휘청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독이 바뀌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즌이 시작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두면서 야구팬들이 늘 하는 말 '올해는 다르다.'를 외치면서 팬들도 선수들도 올해는 정말 우승하리라 의지를 다졌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그 말이 곧 실현되기를 바라며. 4월 내 최애 선수의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마운드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더니 6월에 수술 일정이 잡혔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입단할 때부터 팔꿈치 상태가 안 좋았다고, 투수라면 흔히 하는 수술이지만 재활에는 적어도 1년이 걸릴 거라고. 별의별 뉴스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나는 장장 1년이 넘도록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피칭을 못 보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가 이후에는 선수 상태도 모르고 갈아 쓴 전 감독들을 원망하다가 이내 더 열심히 보러 다니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가 마지막에는 그저 수술이 잘 되어서 이의리의 팔이 무쇠팔이 되었으면 했다. 너무 일찍 2024년 시즌을 마감해 버린 나의 최애 선수 이의리를 마음에 품고 부디 팀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의리도 마음이 편할 테니까. 그리고 기아에는 슈퍼스타가 등장하게 된다.

중간중간 함정이 있긴 하지만 2020년 정해영을 시작으로 기아의 1차 지명은 꽤 성공했다. 2021년 이의리, 2022년 김도영. 그래 김도영. 그런 날 김도영. 야구 천재. 3월에는 야구가 지독히도 풀리지 않아 버스에서 엉엉 울던 3년 차 어린 선수. 그리고 4월에는 도루 10개, 홈런 10개를 성공해서 월간 10-10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기특하고 장하고 세상에 기아에 이런 선수가 다 있다니 싶은 생각이 들게 한 보물. 2024년은 김도영의, 김도영의 의한, 김도영을 위한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야구를 정말 잘했다. 그 말 말고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야구를 지독히도 잘했다. 오죽하면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를 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해설이 물었다.

"김도영 선수, 야구 재밌죠?"

김도영 덕분에 팬들도 재미있었다. 어리고 스타성 있는 선수가 야구도 잘하자 말 그대로 볼 맛이 났다. 03년생 어린 타자가 날아다니자 04년생, 아니 83년생 타자도 날아다녔다. 항상 잘했던 최형우가 여전히 한결같이 잘해줬다. 타자들이 잘해주자 투수들도 잘해줬다. 섹시투수라는 별명이 생긴 전상현과 좌승사자라는 별명이 생긴 곽도규, 어엿한 기아의 마무리 정해영까지.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기분. 2024년이 꼭 그랬다.

물론 부상 타이거즈라는 별명을 달고 살 정도로 아픈 사람들이 계속 나왔다. 에이스 네일의 턱 부상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충격이었다. 그 빈자리를 메꾼 황동하와 김도현은 기아의 또 다른 발견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기아는 어떻게든 잘 해냈다. 모든 선수들이 제 역할 그 이상을 해줬고 베테랑의 신인 선수들의 조합이 좋다는 이야기가 연일 쏟아졌다. 이러다 진짜 우승하는 거 아니야? 확률의 스포츠답게 온갖 예측과 데이터들이 오갔다. 우승할 거야. 하겠지. 할 것 같아. 아무렴.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는 진짜 우승을 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으며 팬들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진짜 최종 진짜 진짜 최종 우승. 한국 시리즈 우승. 11번 진출하여 11번 우승한 기록이 있는 타이거즈가 12번째 우승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한 팬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기아는 그렇게 해왔고 그럴 거니까. 물론 감독과 선수들을 공포감에 벌벌 떨었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냈죠? 뭐를? 우승을!

기아 타이거즈는 12번째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하며 한국 프로 야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김선빈의 한국 시리즈 MVP까지. 완벽한 결말이었다. 기아가 너무 좋았다.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다 기아 타이거즈가 따로 없었다. 곽도규 품에서 이의리 이름이 나왔을 때 두 눈 비비고 다시 봤던 건 깨알 같은 우승 에피소드. 티켓을 못 구해서 집관을 하며 동생과 오두방정을 떨었던 기억들과 다음 유니폼은 누구를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팬페스타 정말 재밌겠다 기대를 했던 작년의 가을. 그리고 마음 한편에 자리한 우리 의리.

이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영원한 건 절대 없는 법인데. 우승은 달콤했고 공중파부터 유튜브까지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이 쉬지 않고 나왔다. 특히 감독은 프로 유튜버 수준으로 많이 나왔다. 그래 오랜만에 우승이니 그럴 수 있지. 시즌 시작 전부터 힘든 일의 연속이었으니 그만큼 우승의 기쁨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팬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선수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많이 비추니 좋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비하인드 이야기를 듣는 건 또 얼마나 재밌는지. 그랬구나. 몰랐네. 하며 즐겼다.

해가 바뀌었다. 지금은 2025년. 선수들은 왕조를 꿈꾼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우승 횟수가 해태 시절 합치면 가장 많지만 기아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는 연속 우승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왕조라는 타이틀을 붙여보지 못한 것이 선수들에게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기아는 우승하고 나서 그다음 해에 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상했다. 선수가 크게 바뀐 것도 아니고 갑자기 야구 실력이 뚝 떨어진 것도 아닌데 그랬다. 2009년 우승, 다음 해 2010년 5위, 2017년 우승, 다음 해 2018년 5위로 마감하면서 왕조가 문제가 아닌 가을야구 진출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늘 이야기하는 '올해는 다르다.' 2024년 우승했으니 2025년도 우승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 글쎄.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난 올해 역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아를 상상했다. 사실 이런 기대는 팬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사람들이 올해 우승은 기아라며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다 못해 나눠 마시고 있었다. 나름의 각종 근거를 들어 열심히 예측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쩐지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베 논란이 있는 코치가 이름을 바꾸고 1루 코치로 복귀했다. 지역 비하를 한 선수를 그대로 품고 가겠다 밝혔다. 음주운전 범죄를 저지른 코치도 돌아왔다. 아직 시즌은 시작도 안 했는데 등골이 서늘했다. 사실 감독이란 사람은 전두환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기아는 광주를 연고지로 한 팀이다. 이범호는 기아에서 오래 뛰었고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기아라는 팀에 애정이 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실상 위에서 언급한 논란은 팬들이 어느 정도 눈감아 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코치진이 개편되면서 광주라는 지역에 대한 무시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팬들은 느꼈다. 아니 어쩌면 노골적이었다. 팬들의 항의는 당연히 무시되었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아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했다.

개막전에서 김도영이 부상을 당했다. 햄스 문제였다. 놀란 건 구단 특히 감독의 대처였다. 어린 선수의 부상을 순전히 선수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4월 곽도규의 부상이 터졌다. 이의리와 같은 토미존의 문제였다. 곽도규는 작년부터 시즌이 끝나고 국대 경기까지 뛰면서 과도한 혹사 논란이 있었다. 마운드에서 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선수를 향해 턱짓으로 불만을 표시하던 감독. 그리고 나온 토미존 수술 기사. 팬인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비 실책이 이어졌고 타격은 터지지 않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부상을 당한 선수들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기아의 순위가 점점 떨어졌고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당황했다.

시즌 중반 또다시 부상이 터지면서 함평에 있던 2군 선수들이 올라왔다. 오선우와 김호령은 수렁에 빠진 기아를 건져냈다. 2위로 반등했다. 6월 승률이 올라가며 그래 이게 기아지!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성영탁과 이호민이라는 어린 투수들이 제 역할을 해주었고 그래 어쩌면, 어쩌면 올해 우승까지?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는 팬들이 생겼다. 특히 김호령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기아를 구해내고 건져내고 살려낸 선수. 몸이 부서져라 뛰고 도저히 잡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공을 잡아내는 말 그대로 중원을 호령하는 중견수. 도저히 풀리지 않는 타격 때문에 10년 동안 마음 고생하다가 올해는 생애 첫 만루홈런까지 때려 낸 인간 타이거즈. 기아는 김호령이 살아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것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6월이 지나고 7월이 오고 8월이 오면서 기아의 순위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사실 내가 화가 난 포인트는 순위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을 대하는 구단과 감독의 태도였다. 거기에 불을 붙이는 언론의 거지 같은 기사들. 김도영이 중간에 돌아와 홈런과 안타를 때려내며 성적을 내다가 다른 쪽 햄스 부상이 터졌다. 성급하게 당겨 썼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구단은 거짓말까지 하며 그런 적이 없다는 언플을 했다. 이의리가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기사가 났다. 1년이 넘도록 재활을 하던 선수가 돌아와 공을 던졌다. 실전 감각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선수에게 이번에도 제구가 어떻다 기사가 쏟아졌다. 감독은 김도현에겐 근성이 부족하다, 정해영에겐 열정이 부족하다 등의 발언을 했다. 그 어디에서도 선수들을 보호해 주는 방어막은 없었다. 구단이 앞장서 언플을 해대니 선수들의 SNS에는 욕설이 마를 날이 없었다.

기아는 현재 8위이다. 2위도 했다가 중위권 싸움도 했다가 이제는 하위권이다. 시즌 초반에는 10등도 했었으니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진짜 하늘과 땅을 오갔다. 이제 내가 바라는 건 더 이상의 부상이 나오지 않는 것과 구단과 감독이 선수 탓을 그만하는 것. 물론 남은 경기를 다 이겨서 가을야구에 진출한다면 그야말로 감사한 결과일 테지만.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니 나 역시 함부로 포기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 한다. 스포츠라는 건 해봐야 아는 것이고, 늘 기적은 존재하며, 하면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올해 1년 휴직을 하며 세웠던 수많은 계획 중에 10개 구장을 모두 다 가보는 것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가려면 3~4월에 갔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5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는 유럽에 있었으니 야구장 다니기 가장 좋은 시기는 여행으로 어렵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너무 더웠다. 그리고 중요한 건 기아가 너무 못했다. 기아가 좀 잘했다면 지방의 숙소를 잡아놓고 기꺼이 원정을 떠났을 것이다. 아니면 당일치기로 다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됐다. 그렇게 됐다.

여전히 난 기아를 사랑한다. 비록 9월이 되어서야 챔피언스 필드에 와서 선수들에게 사인도 받고 경기도 보고 인크커피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6월에 한 번, 8월에 한 번 수원 경기를 보러 갔었다. 결과는 썩 좋지 못했고 난 매우 피곤했다.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서 정규 시즌의 끝이 다가온다. 우천 취소가 된 몇몇 경기들이 10월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야구를 하게 되었다. 가을에 야구하면 그게 가을 야구지 무엇이겠는가. 웃긴데 안 웃긴 농담을 하며 어쩌면 진짜 가을 야구를 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의 직관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물론 또 모를 일이지만. 현재 계획은 그렇다. 오늘 이의리 선수에게 손마킹을 부탁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사인만 받았다. 이의리 선수가 나에게 '다음에 해드릴게요.'라고 했다. 근데 나는 그걸 '가을에 해드릴게요.'로 들었다. 나도 어지간히 가을에 야구가 하고 싶었나 보다. 팬들에게 최선을 다해 팬서비스를 해주고 떠나는 선수들의 등 뒤에다 '파이팅'을 외치고, 오늘도 부디 이겨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슬슬 배가 고파오니 입장하고 나서 뭘 먹을지를 고민한다.

야구 좋아한다.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사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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