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게 - 11월, 산책, 버스

미션캠프에서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by 고내

11월


11월의 영어 이름은 November. 원래는 숫자 9를 뜻하는 Novem에서 시작된 말인데 이후 1월과 2월이 추가되면서 어쩌다 11월이 9월의 이름을 물려받아버렸다. 11월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다. 남의 이름을 억지로 쓰게 생겼으니. 그래서 그런지 11월은 뭔가 억울하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10월의 풍성한 느낌도 아니고 12월의 화려한 느낌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 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인사 이동과 업무 조정으로 정신없는 달이다. 핼러윈 파티는 끝났어. 성탄절? 아직 멀었어. 그러니까 열심히 일이나 하라고. 그렇지 않아도 성적 처리와 생기부 작성, 밀린 진도를 바쁘게 나가야 하는, 한마디로 아무도 모르나 되게 바쁜 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6학년 부장을 맡았던 작년에는 졸업식 준비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혼이 나가있었다. 무슨 일이든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한 나는 매년 그렇지만 늘 연말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다. ‘11월에 바빠야 12월에 좀 수월하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이상하게 12월에도 똑같이 정신이 없다. 계획한 대로 안 되는 건 어떻게 매번 같은지. 흰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초 중반, 난 또 11월을 원망하며 일 그리고 또 일. 그러니 11월은 억울할 수밖에. 애초에 미리미리 해 놨으면 좀 더 따뜻하게 연말을 맞이했겠지. 안 그래? 그래 맞다. 이건 다 내 탓이다. 그럼에도 아무거나 원망하고 싶기에 난 11월의 나를 탓하며 그렇게 1년을 보내는 것이다. 휴직자인 올해는 11월이 아주 조금 반갑다. 원래라면 달력이 가득 차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계획도 일정도 없기에 깨끗한 달력 속 11월이 어색하지만 앞으로 이걸 어떻게 채워나가지 생각하니 조금 설레기도 한다. 복직이 코앞이라 2025년이 끝나간다는 사실은 다소 부담이지만 후회는 없다. 잘 쉬었고 미련은 없다. 우선 혼자 강원도 여행을 떠날 예정이고 책을 아주 많이 읽을 생각이다. 캠핑도 시간 되면 다녀와야겠다. 어휴 바쁘네 바빠.


산책


목적 없이 걷는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산책이란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내가 걷기로 했을 땐 조금 멀리 있는 카페까지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마트까지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여행 갔을 때. 여행, 여행만이 오직 날 걷게 한다. 최소만 보에서 최대 삼만 보까지도 걷는데 특히 해외여행에 경우 무한정 걸을 수 있다. 손안에 구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마음껏. 여행 속 산책 또한 목적 없는 걷기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꼭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그곳까지 뚜벅뚜벅 걷는다. 걸어서 40분 이내라면 걷고, 그 이상 넘어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

그럼에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누구와 함께 인 경우이다. 고내야 좀 걷자. 우리 걸을래? 그럼 뭐, 어쩔 수 없다. 걸어야지. 밥을 먹기엔 좀 그래, 커피는 아까 마셨잖아. 그럼 함께 걷는다.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나에게 산책이란 대화. 동행.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산책을 누군가와 함께라면 한다. 상대의 말을 듣기도 하고 나 혼자 신나서 떠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요즘엔 같이 산책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진짜 혼자 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목적 없는 걷기에 굳이 취미를 붙이고 싶진 않기에 조만간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려 한다. 그곳이 어딘지는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버스


초, 중, 고 모두 집 앞 학교를 다닌 나에게 버스는 재수생이었던 스무 살의 나를 떠오르게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6시 반 버스를 타고 재수학원 앞에 내리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참고로 나는 광주 사람으로 지금부터 쓰는 모든 지명은 광주를 기반으로 함을 미리 밝힌다. 내가 살던 (지금은 부모님이 계시는) 첨단 지구는 당시 재개발된 신설 지구로 광주 북쪽 장성과 붙어있다. 고로 시내 즉, 충장로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가야 한다. 나의 재수 학원은 충장로, 그러니까 광주에서 가장 넓은 대로인 금남로 4가 정류장을 지나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동구청 앞에 있었다. 새벽이니 버스가 한가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내가 주로 탔던 ‘첨단 9’ 번 버스는 첨단에서 출발하여 무등산 아래 증심사까지 가던 빨간 버스였다. 중간에 버스 터미널과 금남로, 무등산까지 도는 메인 버스라 꽤 많은 사람이 탔다. 한 번은 학원까지 가는 길에 너무 졸려서 그대로 잠들었는데 깨고 보니 수많은 등산객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려야 할 곳을 한참 지나 무등산 아래까지 간 것이다. 아침 산행을 가려는 수많은 등산객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반대편 버스를 타고 학원을 가야 했다. 그 뒤로도 종종 그런 적이 있었는데 반 FM 인생이었던 나는 워낙 집에서 일찍 나왔기에 무등산을 찍고 돌아와도 학원에 늦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쯤은 학원은 땡땡이치고 무등산을 올랐어도 꽤 괜찮은 하루였을지도 모르는데. 바보같이.

난 이제 운전을 하고 버스는 어쩌다 주말에 서울 갈 때나 타지만 여전히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한다. 창밖 풍경들이 변해가는 걸 느끼고, 가끔 졸아도 귀신같이 내릴 때가 되면 깨는 나도 신기한. 버스에서 안내 방송 나온다. 요금 오른다고.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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