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캠프에서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확신
인생에 ‘확신’이라는 단어를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진짜? 나만 그런 경험이 없는 걸까? 기껏 해봐야 내가 해 본 확신은 ‘1 더하기 1은 2이다’ 정도인데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확신을 가지고 직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난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교직에 13년 동안 몸 담고 있으면서도 난 내 직업에 대해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다. 세상에 진리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배움에는 끝이 없고 매일매일 변화하는 세상이다. 오늘의 확신이 내일의 배신이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감히 무엇을 믿고 신뢰한단 말인가. 그저 다수가 믿는 것이 오늘의 진실이라 여기고 일단은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지만 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자리한다. 난 늘 불안하고 걱정되고 예민한 삶을 살고 있다. 확신보다는 의심, 믿음보다는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에 안전하다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피곤할 때도 많다. 때로는 눈 딱 감고 뛰어내려도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본 적이 없으니 조심조심 부들부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난 덜컥 여행 계획을 세우고 숙소를 예약하곤 한다. 북쪽 끝에 있다는 자그마한 서점을 가기 위해. 확신이 생겨서라기보다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것저것 계산하여 맞아떨어지면 시도해 보는 것이다. 새파란 동해의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구체화했을 뿐이다. 확신? 난 그런 건 모른다. 그냥 산다. 확신이 없어도 일단 산다. ‘굳게 믿음’ 그런 거 없어도, 아직은 덜 굳은 조금은 불확실한 미래가 훤히 보인다고 해도 묵묵하게, 꿋꿋하게. 그렇게.
약속
4시에 만나기로 하면 3시부터 어쩌고 저쩌고.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난 약속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다. 오후 4시에 약속이 있으면 난 아침 8시부터 정신이 없다. 이상하게 일찍 떠진 눈에 억지로 다시 자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아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뭘 입을까 고민하다 아침인 듯 점심인 듯 뭔가를 챙겨 먹고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모든 것을 끝내 놓고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는 걸 알게 되면 커피를 한 잔 마실까 말까 또 고민을 하고. 괜히 책을 봤다가 휴대전화를 했다가 결국 두 시간 전에 집에서 나가서 약속 장소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다가 약속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소진하는. 정작 누군가와 만나면 반쯤 지친 상태로 허허거리다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중 약속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를 수행하기에도 에너지가 벅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쩌다 잡힌 약속은 일주일을 버티게 하고 한 달을 버티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약속이면 더욱 그렇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동료. 또는 혼자 떠나기로 한 여행 같은 것들. 그것이 나와의 약속이든 타인과의 약속이든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만약 약속에 늦거나 하기로 한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찝찝하고 불쾌하고 예민해진다. 성실한 타입은 아니지만 묘하게 고집이 있다. 이런 부분에서는. 매일매일 작은 약속들을 거듭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 하루가 가고 금세 1년이 간다. 다 그만두고 싶을 때 내년 봄엔 딸기를 잔뜩 사서 청을 담가야지 라는 약속을 하면 또 그렇게 버텨낼 수 있다. 아마 난 또 지켜낼 것이다.
감정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MBTI가 유행했을 때 E냐 I냐, 또는 P냐 J냐 보다 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T냐 F냐의 여부였다. 감정적으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기보다는 냉정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질문들을 비롯하여 T인 사람을 삭막한 인간 그 자체로 보는 ‘너 T야?’라는 의문이 유행한 것도 최근까지의 일이다. 심한 경우 ‘T발’이라는 말까지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네는 사람들을 보며 언제는 혈액형이더니 별자리를 넘어서 트렌드란 정말 빨리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도와 예민함이 높은 나는 심히 감정적인 사람이라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지만 흔히 ‘사회적 T’로서 직장 생활 중에는 건조한 사람 그 자체이다. 감정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 이성적인 판단과 단호한 태도만이 일을 진행시킬 수 있으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어찌 감정을 스위치 끄고 켜듯 할 수 있겠는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분노와 좌절, 짜증은 가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게 만든다. 왜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들이 내 삶에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인지, 타고난 성정은 어쩌지 못하는 것인지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손톱만큼 남아있는 기쁨이라는 감정, 행복이라는 감정을 찾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지금 나를 지배하는 가장 큰 감정은 우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슬픔은 아니다. 난 나의 우울과 꽤 친해졌다. 병원에서는 조울의 모습 또한 보인다고 했으니 저 바다 밑 시커먼 색의 우울은 아닌 셈이다. 짙은 남색 또는 딥그린 정도의 우울은 나의 가장 큰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더 많은 일을 하게 한다. 나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나를 살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 자양분이 된 것이다. 어렵다. 어렵지만 괜찮다. 삶은 늘 그렇듯 독약과 해독을 함께 주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