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게 - 시간, 삶, 극복

미션캠프에게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by 고내

시간


작년 3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한국 나이 100세를 채우시고 아주 멀리멀리 떠나셨다. 일요일에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다가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제를 올리는데 막힌 둑이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슬픔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닌 알 수 없는 감정이 폭포처럼 나를 덮쳤다. 그때의 감정을 지금에 와 조금 구체화시키자면 후회였다. 나의 무지함에 대한 후회.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는 것에 대한 한탄. 이럴 줄 알았다면 사회 초년생, 차가 생기자마자,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요양원에 가시기 전에 단 둘이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와 스테이크, 피자를 먹었을 것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할머니는 달달한 바닐라 라테,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의정부에 있는 요양원에 가서 넌 언제 결혼하냐는 잔소리를 들으며 쭈글쭈글 할머니의 손을 마사지해 드렸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뭐든 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어디 있을까. 할머니가 천년만년 살아 계실 거라고 생각한 바보가. 내가 나이가 들어 30대 중반이 되면 할머니의 시간 또한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왜 몰랐는가 말이다.

할머니는 항상 여름밤 나에게 부채를 부쳐주고, 밥 안 먹겠다고 우는 내 입에 숟가락을 들이밀어주고, 동백꽃 기름에 곱게 쪽진 머리를 아침마다 정돈하실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 어리석음은 결국 눈물로 돌아올 뿐이라는 걸. 시간이 너무 무섭게 흐른다는 걸 난 작년 의정부의 한 장례식장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올해 초 할머니의 첫제사를 지내며 또 한 번 느꼈다. 작년 난 할머니 생각을 몇 번이나 했나.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나만 생각하며 또 그렇게 살았겠지. 그러다 문득 또 달력을 보며 헐레벌떡 뒤를 돌아보고. 이기적인 나는 또 바보같이 시간에게 속아 늘 그렇듯 숨을 헐떡이며 살아갈 것이다.



며칠 전 살면서 처음으로 파스타를 요리해 먹었다. 다들 라면보다 쉬운 게 파스타라던데, 내가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건지 만드는 동안 한참이나 팬 앞에 서서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SNS에서 본 레시피였는데 문득 해 먹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판 소스 놔두고 치킨 스톡, 버섯, 두유 등을 이용하여 만드는 과정이었고, 난 양파 대신 그냥 쪽파, 편마늘 대신 다진 마늘, 양송이 대신 느타리버섯, 두유도 서리태 두유를 넣어서 만들었다. 거기에 버터도 가늠 없이 그냥 남은 양 몽땅 다, 파마산 치즈 가루도 느낌대로 탈탈 털어서 말 그대로 제멋대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서리태 두유라 칙칙한 색깔의 파스타를 보며 과연 맛이 있을까 두려웠지만 입에 처음 넣자마자 나도 모르게 ‘괜찮은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조금 느끼한 것 같기도, 어쩐지 싱거운 것 같기도, 면이 덜 익은 것 같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었다. 접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한 것 마냥 배를 두드리고 있는 내가 웃기기도 하고, 남들은 쉽게 쉽게 한다는 파스타를 굳이 굳이 어렵게 해 놓고 결국 제 멋대로 만들어서 먹었다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가지 삶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천편일률적인 공교육 속에서 인간을 가르치고 유행 따라 비슷한 옷을 입고 남들 다 한다는 것을 따라 한다고 해도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삶이 존재할까.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보는 내가 있다. 결과가 어떻든 그날 나는 미세하게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 삶이란 그렇다. 어떨 땐 가뿐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떨 땐 너무 무거워서 짓눌리는 기분이다. 그럴 땐 그냥 내려놓고 처음 해보는 것을 시도한다. 만약에 실패하면 한 번 웃고 다른 걸 한다. 그럼 아주 조금 삶이 가벼워진다.


극복


키가 매우 작은 편이다. 그냥 작은 게 아니라 많이 작다. 150이 안되니까. 어렸을 때는 키가 작은 것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난 공부를 곧잘 했고, 선생님들이 예뻐했으며 친구들도 꽤 많았으므로 키가 작은 것이 나의 콤플렉스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20대와 30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지금, 키가 작은 것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야기하는지, 키가 작다는 것은 특히 여성에게 있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난 손과 발도 작다. 발은 220이 조금 안되고 손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보다 작다. 조금 이르게 성장이 멈추었고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구두를 신으려니 발에 맞는 게 없어 깔창을 열심히 깔아 신었더니 발목이 다 나가 지금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다. 바지는 수선 값까지 포함하면 남들보다 비싸게 사 입는 꼴이다. 장갑은 어린이용, 재킷이나 코트를 입으면 대체로 너무 길어서 폼이 나지 않는다. 젊어 보이려고 맨투맨에 청바지만 입는 게 아니라 맞는 옷이 없어서 그렇게 입는 것이다. 웃프다 정말. 버스나 지하철 의자도 높아서 발이 허공에 뜬다. 어느 의자든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 앉아있다 일어나면 종아리와 허리가 뻐근하다. 서 있을 땐 당연히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는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에게 맞춰져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난 이걸 극복할 수 없다. 내 키가 갑자기 자라지는 않기에 그렇다. 불편하다. 기분도 좋지 않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 몸에 맞는 옷과 키즈 운동화를 구매하고, 앉아있을 때 최대한 허리를 펴기 위해 노력하며, 손잡이 대신 안전용 바를 잡으면 된다. 내 뒷모습만 보고 어린이라 여기며 반말을 하는 사람에겐 웃으며 '내일모레 마흔입니다.' 하면 된다. 어렵지만 그렇게 산다. '극복'하진 못했고 그렇다고 마주할 '용기'가 있지는 않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무던한 것이 좋다. 어쩌겠는가. 그냥 내가 귀여운 탓이려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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