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캠프에게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아침
초, 중, 고 포함 모든 학창 시절, 재수할 때, 대학교 다닐 때, 이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기상 시간은 늘 6시이다. 정한 건 아니고 모든 것을 고려하여 따져봤을 때 나의 적정 기상 시간을 6시라고 판단했다. 남들이 보면 이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니 내가 봐도 이른 시간이 맞지만 6시가 넘어서 일어나면 늦는다. 뭐에 늦느냐, 하여간 모든 것에 있어 늦는다. 나는 아무도 학교에 심지어 경비 아저씨조차 학교 대문을 열기도 전에 학교에 가서 교실 문을 제일 먼저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대학생 시절에는 1교시 수업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6시에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아침 먹고, 이것저것(뭔지는 모름) 준비하여 여유롭게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해 늘 그렇게 살아왔다. 돌고 돌아 또다시 학교에서 근무하는 지금?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1등으로 학교 도착해서 환기하고, 교실 청소하고, 수업 준비하고, 공문 확인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면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하기 시작한다.
사실 난 아침 형 인간이 아니다. 아침잠이 진짜 많아서 6시에 알람이 울리면 절로 욕이 나온다. 벌떡 일어나서 10초 정도 기도한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아니므로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야 하니까 일어나는 것이지 저절로 눈이 떠져서 아, 상쾌한 아침! 이러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휴직자인 올해 나는 빠르면 7시 늦으면 8시쯤 일어난다. 가끔 피곤함이 도가 지나치면 9시 가까워져 일어나곤 하는데 사실 6시에 한 번 깼다가 아, 맞다 나 휴직이지. 하고 다시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침은 나에게 늘 바쁘고 정신없고 할 거 많은 그런 시간이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일어나서 집 안 창문을 모조리 열고 이불 정리를 한 후 이를 닦는다. 옷을 갈아입고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에 간다. 공복에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요즘 나의 아침은 이렇다. 조만간 사라질 여유이다. 내년부터는 다시 전투적인 아침일 테니 우선은 즐겨보도록 하자. 꿈처럼.
배움
예전, 예전이라고 하니까 진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설탕을 몇 천 번 휘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던 시절. 나 역시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프랑스 자수를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였는데 학창 시절 바느질을 꽤 괜찮게 해서 가정 시간에 칭찬 좀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얼른 신청하고 며칠 있다 자수 키트를 받았다. 바늘과 다양한 색의 실, 펠트지, 작은 지퍼백에 담긴 스팽글, 그리고 귀여운 크기의 무지 에코백이 왔다. 주말 오전 줌(ZOOM)으로 하는 수업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선생님은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바느질로 반바지까지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나지만(고등학교 시절 수행 평가였다.) 프랑스 자수는 생소한 영역이라 행여나 진도를 놓칠까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 두 시간에 가까운 수업이 끝나고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 기준 나쁘지 않은 느낌의 에코백이 탄생했다. 물론 가방 안쪽은 이곳저곳을 오가는 실들로 엉망이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에도 자수를 취미 삼아 했느냐?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전에는 방과 후에 교사 대상으로 기타 수업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가입 신청을 하고 빌린 기타 말고 내 몸에 맞는 기타를 사겠다며 낙원 상가까지 가서 기타를 구매했다. 그 기타 지금 드레스 룸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외출 안 한지 오래다. 그림 그리고 싶어서 물감 세트부터 냉큼 구매하고, 풋살 한답시고 풋살화 사고 유니폼까지 맞추고, 테니스 한다고 테니스 라켓 사려다가 그전에 그만두어서 그나마 그건 거기까지. 늘 이런 식이다. 뭐든 장비빨이라며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지르고 보는 이 성격. 그래도 수영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중이고, 노트북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으니 아주 쓸모없는 구매만 하는 건 아니다. 배움에 장비가 필요한 건 당연지사. 다만 이 열정이 쭉 이어지기를 바랄 뿐.
기술
우리 할머니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휴대전화라는 것을 아예 사용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효도용 폴더폰만 겨우 사용하셨고 할아버지는 그것마저도 손에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새로운 기술을 사용조차 못해보고 가실 날이 올 것이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난 그게 뭔지도 모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부모님께서 사주신 폴더폰이 나의 첫 휴대전화이다. 기능이라곤 문자와 전화, 지뢰 찾기 같은 게임 몇 개 정도. 재수할 때까지 약 3년 동안 썼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화면 터치가 되는 휴대전화로 바꾸었는데 당시 가장 최신폰이었다. 이후 3D 게임을 할 수 있는 휴대전화로 바꾸었다가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애플에서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이 나왔다. 당시 나만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카톡이 아닌 문자로 소통을 해야 하는데 한 무례한 친구가 '너 때문에 불편하다' 며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볼멘소리를 냈던 것이 기억난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노트북은 그램을 사용하는, 거기에 데스크톱도 따로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기술에 완전 문외한은 아니지만 AI나 챗GPT를 사용하는 것에는 조금 서툰,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제 학교에서도 챗GPT와 AI교육이 들어와 애써 모른 척,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선생님은 그것도 못해요? 선생님한테 못 배우겠어요."라는 말을 듣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르치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나에게 기술자가 되길 강요한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민 의식과 마음가짐을 문화 지체라고 해 얘들아.'라고 백날 말해봤자 아이들은 내 얼굴을 함부로 찍어 딥페이크를 하는 세상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사람. 자주 까먹는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