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캠프에게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약점
나는 오래전부터 누구의 팬으로 살아왔다. 그 '누군가'는 가수, 배우, 아이돌, 운동선수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난 쉽게 사랑에 빠지고 평균 3년, 길면 5년 팬을 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어 내 마음속 깊은 창고 어느 곳에 집어넣어 버린다. 누구의 팬을 하는 시점은 맞물리기도 하고 가끔은 동시에 여러 명을 좋아하기도 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던 기간은 없다. 그래서 난 늘 누구를 좋아하느라 매우 바쁘고 에너지가 모자라다. 최근 오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남미새잖아.'라는 말을 했는데 친구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고내야, 넌 단 한 번도 남미새였던 적이 없어. 현실에서 남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네가 남미새가 될 수 있어. 모태솔로 남미새라니 무슨 따뜻한 프라푸치노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라서 '아니 어떻게 모쏠이 남미새.' 라며 중얼거리는 친구에게 '알았으니까 닥쳐.'라고 말했다.
나는 늘 누구의 팬이었지만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이 이상한 모순은 내 눈이 저 위 성층권에 달려있다는 점을 넘어서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며 다가와도 난 그것을 절대 눈치채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정도의 상태라는 점에서 꽤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는 그것은 나의 큰 약점이었다. 내 주변 모두가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하지 않으면 큰 하자가 있는 사람 취급받던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 나의 20대가 팬질로만 물들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많은 사람들은 내가 행여나 뉴스에서 나오는 현실 감각을 잃은 채 가상 세계를 현실이라 믿는 정신 나간 오타쿠가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 역시 아무나 붙잡고 연애 비슷한 것을 해야 하나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나의 약점이 오히려 나의 감정이 된 셈이다. 난 이제 똑똑하게 사랑을 할 줄 안다. 사랑, 그것은 이제 나의 약점이 아니다.
시험
수능을 두 번 본 나는 임용 시험만큼은 재수하기 싫었다. 당시 지역 점수라는 게 있어서 나는 그걸 이겨내고자 한국사도 따고 토익도 땄다. 그럼에도 서울 지역 점수를 넘기란 쉽지 않아서 경기도로 시험을 봤다. 시험은 3차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교육학 및 교직 논술이 1차, 교육과정이 2차, 수업시연과 면접이 3차. 교육학 시험을 대비하려고 당시 유명하다는 강사의 대전 직강을 듣기 위해 새벽 버스를 타고 대전까지 다녔다. 1차를 보고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2차 스터디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모든 교육과정을 통째로 다 외워야 하는 시험이 2차이다. 검정 교과서인 과목은 모든 출판사의 내용을 다 외워야 한다. 당연히 혼자서 공부는 어렵고 팀을 짜서 그룹 스터디를 한다. 국정 교과서와 지도서를 다 같이 읽고 중요한 부분을 크로스 체크하는 것은 첫 번째, 각자 맡은 출판사의 검정 교과서와 지도서를 공부하고 중요한 부분을 서머리하여 서로 공유한 후 다시 책을 바꿔서 몇 번 더 체크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런 말이 있다. 임용 2차는 공부를 완벽하게 하고 볼 수 없다고. 그냥 내가 공부한 곳에서 시험이 나오길 바라야 한다고.
그러다 1차 결과가 나오고 붙은 사람은 계속 스터디, 아닌 사람은 조용히 단톡방을 나간다. 2차 시험이 끝나면 역시나 결과에 상관없이 3차 준비를 한다. 그때 당시 경기도는 즉흥 수업 시연, 교직 면접, 영어 수업, 영어 면접을 3일에 걸쳐서 봤다. 냅다 아무 과목, 아무 단원, 아무 차시를 펼쳐서 15분 동안 맨 종이에 수업 준비를 하고 15분 동안 수업을 한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손짓을 하며 발표를 시키고 칭찬을 하고 판서를 한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들을 예시로 면접 준비를 하고, 영어는 워낙 짧은 시간이라 툭 치면 나올 정도로 수업 시연 연습을 한다. 살면서 그때 제일 영어를 잘했던 것 같다. 시험 마지막 날, 난 가장 마지막 순서로 시험장을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빠와 동생이 시험장 교문에서 나를 향해 뛰어왔다.
선배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집 거리와 상관없이 성적에 따라 기숙사 입사가 가능했다. 난 기숙사 확장 공사가 끝난 후 입사를 해서 아주 살짝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는데 친구들 말에 의하면 1학기 공사 전 이용했던 방은 엉망이었다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어쨌든 난 조금이라도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기숙사든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낯선 친구들과 한 방에서 사는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일어났다. 당시 2학년이었던 선배들이 일명 '집합'을 시킨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모른다. 아마 집합을 시켰던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 집합의 배경에는 사감이었던 교사들이 있었고, 밑도 끝도 없이 선배들을 먼저 쥐 잡듯이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흘리듯 이야기했을 것이다. '후배들 교육 똑바로 안 시켜 이 새끼들아!' 우리는 17살, 선배들은 18살이었다. 18살 소녀들이 17살 소녀들 교육을 왜,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 당시 우리는 벌건 대낮에 일렬로 서서 선배들의 고함을 들어야 했다. "똑바로 해 이 씨발련들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공부 스트레스가 불러온 일종의 속풀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학생들을 더 편하게 조지기 위한 교사들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씨발련'이라는 워딩은 한창 우리에게 청소 똑바로 해라, 인사 똑바로 해라 조곤조곤 잔소리를 하던 선배들 뒤로 갑자기 들이닥친 사감 교사가 느닷없이 선배들을 엎드려뻗쳐 시키더니 뒤지게 팬 후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을 왜 팼는지는 모른다. 생각보다 선배들이 우리들을 잘 못 잡아서? 아님 내리 폭력이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려고? 어쨌든 그 집합이라는 건 우리 때부터 끊겼다. 폭력의 시대는 끝났고 공부하기에도 바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선배들은 잘 살고 있을까. 가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