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캠프에서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상상
속초에 도착하여 바닷가를 거닌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과 부딪친다.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유명한 야구 선수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팬을 반가워하던 그는 나에게 함께 걷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바닷가를 거닐며 내년 시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는 내가 이번 여행을 하며 했던 수천 개의 상상 중 하나이다. 책방 문이 잠겨있다. 사장님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분명 방금까지는 문이 열려있었는데 주차를 하고 온 사이 문이 잠겨 있다니. 허탈해진 나는 책방 앞에 앉아 사장님을 기다린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해가 진다. 나는 '책방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동상이 된다. 는 가고 싶었던 책방 문이 닫혀 있어서 잠깐 했던 상상이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나는 숨 쉬는 동안 상상을 한다. 하루 종일 한다는 이야기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상상부터 아예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장르와 분위기, 스케일까지 다양하다. 주말에 침대에 누워있다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몰래 세상을 구한다는 상상도 하고, 주차가 너무 힘들어서 같은 장소를 빙빙 돌 때는 차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는 상상도 한다. 난 그렇게 살아왔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런 상상을 왜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더라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다들 나와 같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에 살고 사실에 입각한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도 많았다. 상상을 왜 하냐고? 왜 하냐니. 그냥 하는 거지. 마치 지하수 뿜어져 나오듯이 그냥 머릿속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상상 아닌가? 내가 지금부터 상상을 해볼게. 하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있으니까 숨 쉬듯이 하는 게 상상이잖아.라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상상을 이 글을 쓰면서 했다. 요즘 내가 많이 하는 상상은 내년 복직하고 난 후 나의 모습이다. 낮에는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 쫙 빠진, 그래서 정말 건강해진 나의 모습. 이루어져라 얍!
균형
몇 년 전에 요가를 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달고 다닌 어깨 말림과 뭉침, 그로 인한 목디스크와 허리 디스크 더하기 편두통과 불면증이 극에 달아 살기 위해서는 운동만이 답이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여러 고민 끝에 요가를 선택했다. 요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난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고 그냥 퇴근하고 할 수 있는 시간대에 가서 시키는 대로 앉았다 누웠다 몸을 비틀었다를 반복했다. 한 2년 정도 하자 미친 듯이 아팠던 어깨 결림이 조금 덜해졌고 뜬금없이 살도 조금 빠졌었다. 나름 효과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수영을 비롯해 다른 운동을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다시 해보고 싶은 운동이 바로 요가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안 되는 동작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보트 자세, 즉 '나바아사나'라고 불리는 동작이다. 두 다리를 사선으로 쭉 뻗고 두 팔은 바닥과 평행이 되도록 유지하되 허리를 곧게 세워 몸이 마치 V자가 되게 만드는 자세인데, 정말 죽어도 안 되는 균형 동작이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내가 아직 코어 힘이 부족해서라고 하는데 코어가 생기라고 하는 동작인데 코어가 없어서 못하는 동작이면 난 도대체 언제 코어를 만들 수 있는 건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죽어도 안 잡히는 균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워라벨을 챙기려면 워라벨이 필요한데 워라벨이 없는데 워라벨을 어찌 챙기느냐 이 말이다. Work를 하고 나면 Life 챙길 여력이 이미 바닥 나 간신히 숨만 쉬는 정도인데 그게 가능한가요?라고 물으면 운동을 하란다. 아니 운동을 할 힘이 없. 그럼 Work를 적당히 하라는데 아니 그게 안된다고요. 일을 적당히 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애들이 적당히 떠들어 주고, 적당히 수업 들어주고, 그럼 나도 적당히 수업하고, 적당히 훈육하고 애초에 그게 되나? 균형이 조금 안 맞으면 그냥 언발란스하게 살아야지 어쩔 수 없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두 다리고 서는 게 힘들면 어디 기대기도 하고. 완벽한 밸런스는 없기에, 일단 뚜벅뚜벅.
점수
평생 점수받는 인생을 살아왔다. 공부, 시험, 점수. 이 세 가지는 언제나 내 목을 옥죄어왔고 나를 작은 상자에 가둬놓았다. 오늘은 80점 상자에 들어가. 그럼 나는 80점짜리 상자에 들어가서 몸을 웅크렸다. 성인이 되면, 직장에 다니게 되면 벗어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항상 나를 평가하는 도구가 있었고 나 또한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며 살아가야 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직장을 벗어나면 괜찮지 않을까? 방금 전 나는 어제 다녀온 전시회와 관련해 방문 리뷰를 남겼다. 리뷰창에 접속했더니 별 다섯 개 중에 몇 개를 선택할 거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떴다. 그러니까 5점 만점에 몇 점을 줄 거냐는 말이다. 난 아주 짧은 고민 끝에 4.5점을 선택했다.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별점을 남기라니, 예약 시스템에 대한 점수인지, 전시회 자체에 대한 점수인지, 작품들에 대한 점수인지 난 알 수 없다. 0.5점을 깎은 이유는 월요일 오전임에도 사람이 많았고 다소 밀려서 전시를 관람했던 당시의 내가 아주 조금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인데 사실 이게 정당한 점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는 것뿐.
난 나에게 주어진 점수가 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아마 그렇다. 70점짜리 그림이구나. 90점짜리 수업이었구나. 100점을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상한 건 100점을 받았다고 해서 뛸 듯이 기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낮은 점수에는 슬퍼하고 높은 점수에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삶이라니. 그래서 최근에는 점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고 조금씩 노력 중이다. 내가 수학 50점 받았다고 50점 인간이 아닌데 50점 상자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나를 왜 가두고 살았을까. 그러나 쉽지 않다. 벗어나기가. 벌써 올해 휴직 1년을 평가하려고 드릉드릉하는 중이니까. 여행 파트는 90점 언저리, 마음 부분은 50점 언저리니까 대충 평균내면 나쁘지 않다. 퉁치면 꽤나 괜찮은 1년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