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캠프에게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낙엽
발령이 급하게 나서 일주일 뒤 곧장 출근을 해야 했던 나는 학교로부터 15분 정도 떨어진 아주 오래된 주공아파트를 전세로 급하게 구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이란 너무 명확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았나 싶지만 그때는 좋고 싫고를 따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좁은 주차 공간으로 인해 아침과 저녁으로 차들이 마트 매대에 물건을 쌓아둔 것처럼 엉켜있어 아침에 출근을 하려면 적어도 세 대의 차량이 나가야 내가 나갈 수 있는, 한마디로 난리도 아니었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가장 큰 장점이란 나무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엔 푸르름이, 가을엔 울긋불긋 단풍이, 겨울엔 나무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이 지독히도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나는 15층에 살았다. 복도식 아파트라 현관을 나와 곧장 보이는 바깥 풍경은 날씨를 가늠하게 하고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기분으로 보내야 하는지 기준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가을엔 차 위로 잔뜩 내려앉은 낙엽들. 단풍나무, 벚나무, 플라타너스 나무의 이파리들이 곱게 물든 채 내 차 위로 잔뜩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가을을 새삼 실감하곤 했다. 아니, 겨울을 좀 더 가깝게 느꼈던 것 같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난 다음엔 여지없이 칼날 같은 추위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아파트에서 전정작업을 한답시고 나무들을 뎅강뎅강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낙엽이었다. 쓸어도 쓸어도 매일 쌓이는 낙엽과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들이 썩으면서 나는 냄새로 아파트 주민들이 수시로 민원을 넣었고 이에 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으로 아파트를 해결을 보려 했다. 두꺼운 나뭇가지들이 땅에 박힌 것 같은 기이한 행색을 한 나무에게서 꽃은 한동안 피지 않았다. 당연히 푸른 잎도, 단풍도, 낙엽도 보기 힘들어졌다. 계절을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난 그곳을 떠났다. 가끔은 그립다. 차 앞 유리에 척하고 붙어있던 플라타너스 잎이.
선물
예전에는 생일 선물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적어도 일곱 명 이상이었다. 내가 주고 또 받고. 마치 농촌 품앗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사람들은 직장 동료이거나 졸업 후에도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 동기 또는 같이 덕질하다 만난 친구들 정도였다. 그리고 올해 난 두 명의 사람에게 생일 축하 멘트와 선물을 받았다. 대학 동기 한 명과 덕질 메이트 한 명이었다. 놀랍게도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앞서 말한 일곱 명 이상의 사람들 중 몇몇은 자연스레 연락을 안 하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 말은 나 역시 타인의 생일을 챙기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 역시 똑같은 태도였으니 서운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점점 좁아지는 인간관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일 선물이 친분의 척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인정할 건 해야 했다. 내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가장 어려운 건 건강과 체력,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적을 두지 않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 고독한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에 관한 책이라도 읽어야 할 판이다. 평소 혼자 여행하고, 혼자 공연 보고, 혼자 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나로서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 확연하게 적어진 것을 체감하자 실제로 기분이 평소보다 다운된 것을 느꼈다. 내가 안 그런 척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내심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치가 없는 듯 있는 나는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의 마음은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 내가 먼저 멀어지는 편인데 혹시 이런 행동들이 그나마 있던 친분들의 싹을 잘라내는 짓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하 쉽지 않다. 억지로 선물을 받아내고 싶지 않으니 그냥 떠날 사람은 떠나보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다 카카오 생일 알림 때문이다.
동경
'동경'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난 거의 평생 덕질해 왔다. 8세 이후, 그러니까 한글을 떼고 미디어를 접하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 나가기 직후부터 덕질을 시작했다. 최근까지 이어졌던 덕질은 지금 소강기에 접어들어 반머글 상태이다. 덕질의 발단은 R.e.f와 H.O.T.이고 덕질의 전개는 신화이다. 중간에 전개에도 여러 가지 변화기가 있는데 중학교 시절에는 POP에 빠져서 영어 공부 열심히 했고, 고등학교 때는 sg워너비와 힙합에 빠져있었다. 대학 들어가서 박재범, 스윗소로우, 메이트 등 여기저기 오가다가 직장 생활하면서 덕질의 절정기가 오게 되는데 B1A4, 아스트로, 세븐틴을 비롯한 아이돌과 배우 태인호에게 빠져 돈, 시간, 에너지를 말 그대로 쏟아부었다. 최근까지 배우 신하균을 팠고, 축구 선수, 야구 선수, 씨름 선수 안 가리고 파다가 지금은 덕질 결말을 맞이했으며 시즌 2 제작 여부는 미지수이다.
나에게 덕질은 중간이 없다. 내일 없이 인생을 걸어 마치 나 자신인 듯 사랑하고 마음이 식으면 미련 없이 타인이 된다. '좋아했던 걸 쪽팔리게 만드는 인간은 죽어야 한다.'라는 일명 덕질 주의보 알람은 시시때때로 울려서 나의 과거를 먹칠하곤 한다. 난 오빠를 위해 열심히 살았건만 오빠는 왜 내 인생에 똥칠을 하세요. 내가 그러라고 앨범 사고, 사인회 가고, 콘서트 간 게 아닌데. 백날 얘기해 봐야, 그렇다. 나만 놓으면 영영 사라질 인연. 한 마리 새우젓에 지나지 않는 나라는 팬이 반짝이는 그들의 인생 곁을 스쳐 지나간들 무슨 의미가 있나. 철든 건 아니고 하도 상처를 많이 받아서 무뎌졌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난 여전히 덕질을 한다. 현재 야구 선수 한 명을 열렬히 응원하며 유니폼에 돈깨나 썼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머리 풀고 달리던 나의 모습은 아니다. 이제는 덕질을 조금 즐기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말해놓고 내 선수 까는 인간 나오면 못 참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거, 꽤 멋진 일이지만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