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게 - 가면, 웃음

미션캠프에게 사기 당하고 남기는 기록

by 고내

가면


나는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고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 바뀌었다. 원래 소위 나대는 성격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발표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아마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을 꽤 잘난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꼴 보기 싫은 친구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3학년 때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지만 지금의 말로 따돌림을 당했다. 내가 당한 따돌림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말한 것들이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때의 일은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매우 신경 쓰는 사람이자 동시에 남에게 무관심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를 이루는 것은 수많은 모순이었다. 무던하고 시크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매우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 예의가 바르고 깍듯하지만 입만 열면 욕이 나오는 사람.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어느 순간 내가 남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자세와 태도가 있다. 내성적이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선배들에게 애살스럽게 굴며 술 한 잔 따를 줄도 알아야 하고, 나서는 게 정말 싫지만 부장이기에 강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관리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눈웃음을 짓고, 학부모에겐 내가 가진 최고의 좋은 말만 골라 아이를 칭찬해야 하는 순간들이 무궁무진하게 찾아온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럴 때 문득 누구세요? 방금 전 나는 누구세요? 어색하고 낯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마주하며 마치 남처럼 외면하게 된다. 예의 좋은 사람인 척, 시원시원하고 쿨한 사람인 척하는 나의 모습은 오래전 모두에게 외면받았을 때 내가 하지 못했던 나의 추구미이다. 그때 난 돌아선 친구들의 마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다 버려졌다. 불쌍한 고내. 이제 난 먼저 손을 놓는다. 쿨하게.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가면이 아닌 원래 내 얼굴인 것처럼.


웃음


나이가 들수록 삶의 궤적이 얼굴이 나타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잘 웃는 사람은 웃상이 되고 반대인 경우엔 울상이 되거나 더 안 좋은 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실제로 웃는 일이 적어져서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난 웃상은 아니라서 사진 찍을 때 누가 웃으라고 하면 정말 어색하다. 특히 치아가 보이게 웃으라고 하면 그야말로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린다. 웃고 있나? 지금 내 얼굴이 웃고 있나? 로봇처럼 뚝딱거리다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요상스러운 표정의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이다.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데, 자연스럽게 웃기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난 웃음이 헤픈 사람이다. 혼자 책 읽다가도 웃고, TV를 보다가도 웃고, 휴대전화를 보다가도 웃는다. 소리 내어 크게 웃기도 하고 큭큭대며 웃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평균적으로 웃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아서인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불편한 것들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을 농담들이 이제는 웃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이 나빠서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웃어야 할 상황도 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웃으려니 오히려 과장된 행동과 표정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가 끝이 나면 피곤하고 가끔은 몸이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웃으면 행복하다는데, 행복해야 웃음이 나오는 거 아닐까? 예를 들면 통장에 세후 100억 같은 거? 이런 실없는 농담을 하며 혼자 피식 웃는 걸 보면 진짜 내가 낡고 지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낡고 지친 나는 곧 복직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웃을 일이 많아질지 울일이 많아질지 두고 볼 일이지만, 당장 오늘 하루는 웃을 일이 좀 더 많았던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11월의 마지막 날, 난 참 많이 웃었다. 12월도 그렇게 되길 바라며. 안녕 11월.


작가 소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은 잘하지 않는다. 저절로 잘 써지길 바란다. 알아서 기깔한 문장들이 손끝에서 술술 나왔으면 좋겠다. 안 되는 거 알아서 성실함과 양으로 승부 보려고 매일 글을 썼다. 내년에 복직이라 성실하게 글 쓰는 인간은 올해까지만 영업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하고 나서도 내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교사인 거 티 안 내고 싶은데 글 곳곳에 교사라는 거 잔뜩 티를 내놔서 아닌 척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13년 차 교사로서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매일매일 치열하게 싸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쉽지 않아서 나쁜 사람만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책 좋아하지만 소설만 읽는 편식쟁이라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데 혼자 뭐든 잘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사랑이 식는다. 싫증 잘 내고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지만 잘 웃고 잘 울고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O형, 사자자리, INFJ. 이렇게 쓰니까 옛날 사람인지 요즘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냥 지금 사람이다.


+)

이렇게 책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작가 소개와 필명까지 마무리하고 맞춤법 검사를 다시 한번 하고 추가 부수 10매를 구매하고 예쁘게 포장되어 나에게 도착할 책들을 기다렸다. 12월 7일까지 최종 수정을 끝내면 그대로 책에 반영된다는 공지까지 확인하였다. 한 달 동안 29개의 에세이를 써 내려가면서 성실함을 뽐내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자극을 받는 것도 좋았다. 올해 두 번이나 책을 내는구나. 뿌듯했다. 책이 뚝딱 나올 리 없으니 1월에 나오려나 2월에 나오려나 하다가 문득 진행 상황이 궁금해 '미션캠프' 사이트를 검색했다. 네이버 AI가 나에게 '미션캠프'는 파산했으니 환급 방법을 알아보라고 조언했다. 얜 또 뭔 소리야. 무시하고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영상 두 개가 떠 있었다. 스스로를 대표라고 지칭하는 사람의 사과 영상이었다.

결론은 '미션캠프'는 파산했다. 사이트는 이런저런 환급 프로그램을 잔뜩 벌려놓았다. 나에게도 수많은 문자가 왔지만 모조리 무시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대부분 보증금 30만 원 정도를 걸어놓고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미션을 완료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형식. 그러나 보증금은커녕 회사는 파산했다.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내 책은? 추가로 신청한 10부는? 다이렉트 문의를 남겼지만 AI가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인스타는 없어졌고 그 어디에도 대표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일단 신청했던 프로그램을 취소했더니 취소 요청이 접수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렇다고 내 돈이 돌아오진 않았다.

만약 1월이나 2월에 내 책이 온다면 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 상 내 책은 오지 않을 것 같다. 피해자 단톡방에 가입을 했다. 시키는 대로 내 피해 상황을 입력했다. 사이버 수사대에도 신고를 했으나 나는 보증금 30만 원 사기가 아니라서 단체 고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개별적으로 고소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난 22만 7,200원의 사기이다. 프로그램 97,200원을 결제했고 130,000원 추가 결제를 한 상황이다. 책이 오면 피해자가 아니지만 책이 안 오면 뒤늦은 피해자가 된다. 난 회사가 파산했다는 문자를 받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파산 신청 및 기사가 난 지 14일 만에 알게 된 뒷북 인간이다.

그래서 내 책은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나는 피해자인가 아닌가.


한 달 동안 죽어라 쓴 글들이 아까워서 우선 브런치에 남겨둔다. 이 글들은 내 손에 쥐어질 뻔했으나 그렇지 못할 것 같은 글들이다. 1000자 이내로 안 쓰면 잘린다고 해서 억지로 줄여가며 썼는데, 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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