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러시아 사람들은 조지아 음식을 좋아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지아는 신화에도 수없이 언급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역경을 견뎌 온 나라이다.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양털을 얻기 위해서 갔던 목적지가 콜키스, 즉 지금의 조지아이고, 프로메테우스가 결박당하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던 산이 조지아의 카즈베기이며, 성게오르기가 북아프리카의 용을 처치하기 위해 출정했던 곳이 조지아 바투미이다. 역사적으로 고대 콜키스 왕국을 건설하여 번영하던 조지아는 그리스, 로마, 아랍, 비잔티움,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투르크, 러시아, 소련의 지배를 거쳐 1991년에 이르러서야 독립국가를 이룬다.
조지아는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다 할 정도로 농축산물이 잘 자라는 곳이다. 산에는 희귀 작물과 허브가, 들에는 포도를 포함한 다양한 과수가 자라고 있어 친환경 음식을 준비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 여러 문명들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조지아 음식점은 현재 러시아 대도시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태리 음식점에 버금가는 인기이다. 이태리식 다음으로 최근까지 스시바가 유행했고, 중국 관광객의 유입으로 중국식도 선호하고 있지만, 소련 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것은 역시 조지아식이다.
조지아는 러시아에서는 그루지아라고 부르는데, 1801년부터 제정 러시아에 편입되었고, 1924년에는 소련에 가입하였다. 소련 시절에 러시아와 조지아는 한 나라였기에 조지아 음식이 자연스럽게 소련 전역에 퍼질 수 있었다. 그 당시 조지아 음식에 맛들린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이루어 여전히 조지아 음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 해체 후 높은 임금을 찾아 러시아로 온 조지아 디아스포라가 조지아 식당들을 열었다. 현재는 본고장 조지아보다도 러시아에 조지아 식당이 더 많을 정도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발트 3국도 소련을 구성하였는데, 왜 유독 조지아 음식이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그것은 조지아 음식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 때문이다. 러시아 미식가들은 조지아 음식을 이렇게 평가한다.
'중독성 있는 매콤함이 있다', '요리가 매우 다양하다', '많은 향신료와 신선한 허브가 사용되어 음식의 매력과 진정한 맛을 선사해 준다', '절인 치즈, 페이스트리, 불에 구운 고기 없는 요리를 상상할 수 없다'라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조지아 음식은 매우 다양하며 풍부한 유제품과 산에서 자란 허브와 그 향신료를 더하여 풍미가 뛰어나다.
조지아 음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향신료는 수넬리 Suneli이다. 조지아의 독특한 산, 계곡, 초원이 어우러진 자연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허브들을 조지아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조지아어로 '향기로운 조미료'로 번역되는 이 향신료는 다양한 허브를 말린 후 갈아서 만든다. 가장 고전적인 수넬리 조합에 들어가는 허브에는 딜, 월계수 잎, 마조람, 고수, 세이보리, 호로파, 바질, 샐러리, 샤프란 등이 포함된다. 이 향신료는 음식의 맛과 향을 낼 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보는 즐거움도 더해 준다. 산이 없고 드넓은 벌판으로 이루어진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허브를 만나기 쉽지 않다. 고기와 감자에 소금과 후추만 쳐서 먹을 정도로 단조로운 러시아 음식에 비하여,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하여, 향뿐 아니라 비주얼로도 식탐을 자극하는 조지아 음식은 러시아인들에게는 신세계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지아 음식은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이 저렴하였다. 이렇게 소련시대부터 조지아 음식은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지아는 산과 계곡에서 허브를 재배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원지대에서는 소와 양을 키우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식재료가 어우러진 음식이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샤슬릭, 힌칼리, 하차푸리, 하르초, 사찌비가 있으며, 신선한 뜨거운 빵과 치즈 그리고 와인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샤슬릭은 터키에서 시작하여 카프카스 3국을 거쳐, 러시아 대륙을 넘어,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즐겨 먹는 숯불고기 꼬치구이이다. 터키에서는 케밥이라 하지만, 러시아어권에서는 샤슬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권에서는 주로 양고기로 샤슬릭을 만드나, 기독교권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러시아에서는 돼지고기로 샤슬릭을 굽기 시작했다.
힌칼리는 조지아식 만두이다. 한국의 왕만두처럼 크기 때문에 2~3개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힌칼리는 먹는 순서가 있다. 힌칼리를 찜통에서 찌는 동안 만두피 안에 고기 육즙이 생성되는데 조금 뜨겁다. 따라서 힌칼리가 서빙되면 약 2~3분 정도 기다렸다가, 꼭지를 잡고 거꾸로 세운 후, 만두피에 작게 구멍을 내어 감미로운 육즙을 먼저 맛본다면 힌칼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차푸리는 치즈 피자와 비슷한 맛이다. 화덕에서 구워서 바로 나오는 하차푸리는 전식으로서 꼭 추천하는 음식이다. 특히 아자라식 하차푸리를 추천한다. 뜨겁게 구운 피자 빵 가운데에 생계란과 버터를 얹어 즉석에서 비벼 먹는 빵이다.
하르초는 소고기 또는 송아지고기 육수에 마늘, 수넬리, 후추, 고추, 계피, 아지카(카프카스식 매운 양념장)로 맛을 내고, 양갈비와 밥을 넣어 끓여 내는 걸쭉한 수프이다. 약간 매운맛으로서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하므로, 러시아의 기름진 음식에 질린 분들에게 추천한다.
사찌비는 소스이자 요리이다. 요리로 할 경우 칠면조, 닭, 오리 같은 가금류를 삶은 후에 오븐에서 구워낸다. 호두를 갈아 수넬리, 다진 마늘, 잘게 썰은 고추, 볶은 양파를 육수에 함께 넣어 끓여 소스를 만든다.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어 소스를 부어 내놓는 음식이다. 호두가 들어가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조지아 음식은 맛있지만, 약간 더부룩한 느낌이 있다. 이 느낌을 단번에 없애 줄 수 있는 차가 바로 차브레쯔 thyme이다. 이 차는 약간 씁쓸한 약초 맛의 홍차인데, 고기 음식을 먹을 때 느끼함을 저감해 주는 효과가 탁월하다. 러시아말로 '쵸르늬 차이 스 차브레쫌' 이렇게 주문하면 된다.
이제 조지아 와인을 언급해야 한다. 조지아는 집집마다 와이너리가 있다 할 정도로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이 일상적인 곳이다. 현재, 세계 최초의 포도주가 생산된 곳으로서 아르메니아 또는 조지아를 언급하곤 한다. 고기요리와 와인. 이 환상적 조합을 최초로 누리기 시작한 곳이 조지아인 셈이다. 조지아의 카헤티 지방에서 조지아 와인 70%가 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레드와인 품종으로 사페라비 Saperavi가 있고, 화이트 와인으로는 르카치텔리 Rkatsiteli가 있다. 조지아 와인은 독특한 크베브리 Qvevri 라는 항아리 숙성 방식을 사용하는데, 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와인을 좋아했던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은 미하일롭스코예 영지에 가택연금당하던 1827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헤티를 꼭 방문해 보고 싶었다 라고 적고 있다. 그 바람은 2년 후인 1829년에 이루어진다. 물론 사페라비 와인을 시음했을 것이다. 또한 조지아 와인은 소련 서기장 스탈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스탈린이 바로 조지아 출신이므로 그가 조지아 와인을 소련 전역에 알린 1등 공신인 셈이다. 스탈린이 즐겨 먹던 와인은 흐반치카라 Khvanchkara이다. 라차 Racha지방에서 생산되는 레드와인이다. 그러나 소련이 결성된 후인 1942년에, 조지아 전통 방식을 채용한 사페라비 품종의 새 와인 제품이 등장하는데 바로 킨즈마라울리 Kinzmarauli 세미 스위트 레드와인이다. 고가의 와인으로서, 스탈린 시대의 신제품이기에 스탈린이 애음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조지아 최고 와인은 우사헬라우리 Usakhelauri이다. 이는 조지아어로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명칭 자체가 최고 와인에 대한 예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사헬라우리는 조지아 서북지방인 짜게리 Tsageri에서 소량만 생산되고 있다. 같은 이름의 포도 품종으로 만든 세미 스위트 레드와인이다. 첫 서리가 내리는 11 월 중순에 수확한 당도 24% 이상의 최상급 포도로 만든다. 1934년 스탈린이 크레믈린에서 우사헬라우리 와인을 처음으로 시음하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최고의 조지아 와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