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가 '나의 명작'이라고 한 이유는?
바로크 미술의 시조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카라바조. 아쉽게도 에르미타주에는 그의 작품이 3점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한점은 전시되지 않고 있고, 다른 한점은 카라바조의 작품인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소개하려는 그림은 사실상 에르미타주에서 볼 수 있는 카라바조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서도 대단한 명작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려면, 보통 라파엘로 회랑에서 이 방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는 높고 넓은 홀이 장엄하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천창에서 햇빛을 받아 내부 조명으로 쓰기 때문에 천창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방은 신에르미타주에 속해 있고 2층에 위치합니다. 여기에는 천창을 가진 3개의 웅장하고 멋진 홀이 연속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에르미타주는 가장 멋진 전시 공간을 이탈리아와 스페인 화가들에게 바쳤습니다.
장식 또한 매우 화려한데요. 벽의 윗부분과 천장의 프리즈는 금도금된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정교한 쪽모이 세공 마루, 준보석으로 만든 화병, 촛대 그리고 탁자들이 이 방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방에 들어서면 가끔 궁금해 지죠. 이런 멋진 가구들을 실제로 사용하며 살았을까? 그러나 왕들 조차도 실용적 목적이 아닌, 장식용 또는 의전용으로 이런 가구들을 특별 주문하여 설치하곤 했답니다. 이 장식품들이 다 골동품이라서 만지거나 앉으면 방 지키는 할머니한테 엄청 혼납니다. 러시아 할머니들은 마음씨 좋으시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직업상 매우 무서우니 조심하세요.
자, 이제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제목은 류트 연주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같은 방에 전시되어 있는 '베드로의 순교'는 카라바조 작품인지 찬반 논란이 있어요. 하지만,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확실히 인정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삶은 파란만장했죠. 22살에 큰 유산을 물려 받았지만 로마에서 탕진합니다. 인맥 덕분에 교회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사도들을 성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처럼 그렸기 때문에 대금을 지불받지 못하곤 했다 합니다. 또한 살인까지 저지르고, 평생 쫓겨다니는 신세로 살죠. 카라바조는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부적응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기의 사실적인 그림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바로크 회화를 연 화가로서 큰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르네상스나 매너리즘 시대까지도 신화와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죠. 교훈적 내용을 담은 장엄한 역사화가 여전히 인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카라바조는 신화나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사람을 그려요. 카라바조는 꽃미남을 좋아했는데요. 이 사람도 여자처럼 보이죠? 비슷한 그림을 영국 배드민턴 하우스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 그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카라바조의 작품인데요,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나의 명작' 이라고 불렀다 하는군요.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초기작입니다. 그는 주위 환경의 핍진성(逼眞性) 전달을 추구하였습니다. 핍진성이란 진실에 가깝다는 뜻으로서, 쉽게 이해하려면 사실적으로 그렸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핍진성이란 단어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해 봤는데요, 비교를 통해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돈나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도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아주 훌륭합니다. 아기 예수의 몸과 성모님의 입가와 눈가의 적절한 음영 배분, 성모께서 입은 옷의 디테일 묘사 등은 매우 세밀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핍진성이 없습니다. 그럼 류트 연주자와 이 그림은 사실성의 표현에서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요? 류트 연주자와 주변의 정물들은 그야 말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마돈나에서 성모께서 자애로운 모습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아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은 일상에서는 거의 찾아 보기 어려운 포즈이지요. 게다가 성모와 아기 예수가 있는 방은 현실 속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상적 배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세밀한 묘사를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라 이상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류트 연주자가 있는 방이나, 과일, 악보, 화병, 류트, 연주자가 입은 옷 등은 현실에 있을 법한 것들입니다. 즉 핍진성이라는 것은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렇게 우리는 이 그림에서 향후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카라바조 풍의 회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흰옷을 입은 청년을 보세요. 어두운 배경과 선명하게 대비되지 않습니까? 얇게 떨어지는 음영 덕분에 사물들은 촉각적인 부피감을 느끼게 합니다. 카라바조는 주변 세계의 특징을 묘사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청년의 감성적인 얼굴과 정물 묘사에 매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들어가는 꽃, 흠집 난 서양배, 금 간 류트, 해진 악보의 세밀한 표현을 보세요. 음표 하나 하나가 다 표시되어 있어서 음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멜로디를 읊조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악보의 곡은 자크 아르카델트(Jacques Arcadelt)가 쓴 'You know that I love you' 라고 합니다. 그 사랑의 현재 모습 또는 결말을 사물 속에 담아 냈는데요. 어떤 결말일까요? 안타깝게도 정물들의 손상된 상태를 볼 때, 사랑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네요.
이 그림에서 당시 정물화에 유행하던 알레고리 표현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정물화 속에 인간의 오감을 숨겨 놓은 것입니다. 함께 찾아 보실까요? 과일은 미각을 의미합니다. 꽃은 후각을 의미합니다. 악기는 청각을 의미합니다. 매우 세밀하게 보이는 악보는 시각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네요? 어떤 감각이죠? 네, 맞습니다. 촉각입니다. 촉각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핍진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명암의 대비와 세밀화에 의해 나타나는 대상의 촉각적 질감을 우리의 눈으로 전달 받습니다. 즉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지만, 마치 손으로 표면의 질감을 만지며, 보드라움, 거침, 차가움, 따뜻함 등의 촉각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흰옷을 입은 연주자의 팔에 걸친 검은 숄은 서늘함을 덮어주는 따뜻함을 전해 주죠. 해진 악보의 거친 느낌과 연주자의 손의 부드러움이 대조되고요.
이상과 같이 명암의 대비, 핍진성의 전달. 이 두 요소는 바로크 미술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카라바조는 이렇게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