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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Feb 17. 2022

센나야 광장

노파 살해를 마음 먹게 된 공간이자 범죄를 자백하는 공간

센나야 광장이 죄와 벌의 무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자동차들로 붐비는 이 광장은 한 때 마차들로 넘쳐 나는 곳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동하는 행인이 많은 것은 변함없다.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 정치로 러시아는 나라 전반에 활기가 넘치고 상공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861년 농노제 폐지 후에 수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상경한 농민들이 거주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센나야 광장 주변이었다. 센나야는 위치적으로 중심가인 넵스키 대로에서 멀지 않았으며,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지는 길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센나야는 건초라는 뜻으로, 그 명칭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왕복하는 상인들의 말먹이로 건초 또는 말죽을  판매하던 장소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 말의 센나야 광장 풍경


죄와 벌 줄거리는 말죽 파는 광장 주변의 어떤 집에서 한 대학생이 노파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죄와 벌은 러시아판 '말죽거리 잔혹사'인 셈이다. 이 줄거리는 1865년에 러시아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유수포프 정원 맞은편, 사도바야 거리에 있는 '수정궁' 호텔에 자주 들르곤 했다. 이곳에서 무료로 신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놀라운 기사를 접하게 된다. 상인의 아들로 분리파 교도(라스콜닉 раскольник - 여기서 주인공의 성인 라스콜리니코프 раскольников 가 나온 것으로 추정)인 게라심 치스토프가 여주인 집을 털기 위해 그녀의 세탁부와 요리사 노파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파트에는 물건들이 죄다 흩어져 있었는데, 철제 상자에 들어 있던 황금 보석들이 도난당했다. 그리고 살해에 사용된 도구가 도끼였다. 이 사건의 정황이 소설의 살해 장면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상인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 이들을 위한 시설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넵스키 대로에 있는 가스티니 드보르 백화점을 모방한 서민용 아프락신 드보르가 생기고, 여기서부터 센나야 광장까지 일종의 부도심이 형성된다. 광장 주변으로는 많은 수공업자, 건초상, 행상, 술집, 유곽이 들어섰고,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짜 먹는 전당포도 성행했다. 거리에는 공장노동자 뿐 아니라, 행상인, 알코올중독자, 노숙자들이 넘쳐 났다. 급조된 부도심 구석구석은 치우지 않은 쓰레기와 오물로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실직자, 폐병 또는 결핵 걸린 병자들이 많아서 분위기는 우울하였고, 사람들의 평균수명도 길지 않았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집세가 중심가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4년부터 이곳에 머물며 센나야 광장에 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죄와 벌을 써 내려 갔다.

센나야 광장의 현재 풍경. 186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센나야 광장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며, 센나야 광장에서 트로이카 문학과 혁명 산책을 시작해 보자. 센나야 광장의 분위기를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 소설의 장소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가 센나야 광장을 지날 때는 9시쯤이었다. 가판, 좌판, 상점 및 간이 상점에서 일하는 상인들은 모두 문을 닫고, 물건을 정리하고는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센나야 광장 건물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안뜰 아래층에 자리잡은 싸구려 음식점과 무엇보다 선술집 주변에는 온갖 부류의 노동자들과 너저분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또한 이곳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죽여야 겠다는 결심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는데, 노파가 다음날 저녁 7시에 집에 혼자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주 별안간 그리고 완전히 뜻밖에도 내일 저녁 7시 정각에 노파의 여동생이자 유일한 동거자인 리자베타가 집에 없을 것이며, 따라서 노파가 저녁 7시 정각에 집에 혼자 남겨질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 결말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의 권유를 받아들여 광장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는 경찰서로 가서 죄를 자백하고 곧 재판을 받아,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는 갑자기 소냐의 말이 떠올랐다. '네거리로 가서 사람들에게 절하고 땅에 키스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 앞에서 죄를 지었으니까요.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세요. 내가 노파를 죽였습니다 라고!' 그는 이를 기억하면서 온 몸을 떨었다."

센나야 광장에서 여전히 성업중인 전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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