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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Feb 14. 2022

바쿠스

알고 보면 소름돋는 무서운 그림

우리는 요르단스, 보스, 반 다이크 그리고 스니데르스의 스승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의 면면이 아주 쟁쟁하죠? 각자 일가를 이룬 이 엄청난 화가들을 제자로 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플랑드르 미술의 아버지 루벤스(Rubens, Peter Paul, 1577~1640)입니다.

루벤스 Rubens, Peter Paul, 1577~1640


루벤스는 1600년에 이탈리아에 가서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카라바조의 작품을 접하며, 바로크 미술에 눈을 뜨게 됩니다. 8년 정도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외교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진짜 성공한 천재 화가입니다. 플랑드르로 돌아와서 바로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플랑드르 바로크는 이탈리아 바로크하고 차이가 있습니다. 루벤스가 그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루벤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학이여인루시에서 제작한 '로마의 효행'에서 들으실 수 있으니 꼭 챙겨 보세요!

로마의 효행-키몬과 페로 1612 루벤스 에르미타주


이 그림을 보면 루벤스의 성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밝으면서 웅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루벤스를  좋아했어요. 루벤스는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젊을 때부터 하루에 3시간만 잤다고 합니다. 63세까지 살면서 무려 2천 점 이상의 그림을 남겼다고 하니 엄청나지 않습니까? 어떻게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2천 점이나 그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공장같은 공방을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루벤스는 스케치를 하고 많은 제자들이 나누어서 채색을 하면, 루벤스는 주문한 사람 앞에서 직접 마무리를 하여 작품을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화룡점정이 중요한 것이겠죠. 누구는 남이 그린 화투 그림에 자기 사인 넣고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했는데, 그걸 또 법원이 인정까지 해 주지 않았습니까?

루벤스 공방


에르미타주는 루벤스와 그의 공방에서 그린 39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 바쿠스를 소개합니다. 루벤스의 이 그림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고대 그리스신들 중에서 바쿠스는 원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여 나온 결과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볼 땐, 그저 재밌게 노는구나 정도로 느끼다가 내용을 알고 나면 기분이 좀 나빠집니다. 저는 지금도 이 그림을 볼 땐, 바로크적으로 잘 그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찝찝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곤 합니다. 어쨌든 그것은 저만의 생각이니 참고만 하시고, 구독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만의 감상법으로 그림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바쿠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 태어난 자식입니다. 세멜레가 임신하였는데, 헤라의 계략으로 제우스의 빛을 본 세멜레가 불타 죽습니다. 그래서 제우스가 뱃속의 아기를 꺼내어 자기 허벅지에 넣고는 열달을 채워서 태어나게 했으니 그 애가 바로 바쿠스입니다. 제우스는 헤라의 마수를 피해, 실레노스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지요. 그 실레노스도 술의 신인데, 바쿠스의 양아버지가 됩니다. 술의 신 밑에서 자라서 바쿠스가 포도주 양조의 신이 된 것일까요? 실레노스는 술고래이면서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그 때문에 마이다스 왕하고도 엮이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작품에서 설명할 때가 올 겁니다.

사튀로스의 부축을 받는 술취한 실레노스 1620 안토니 반 다이크 내셔널 갤러리

이렇게 바쿠스의 탄생 스토리는 매우 스펙타클하지요. 그런데 바쿠스를 숭배하는 밀교 의식은 광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 에우리피데스가 쓴 바카이라는 작품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바쿠스는 숭배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법도 지키지 않도록 하는 신이다.'


라고 비난하면서 테베의 주신 바쿠스 종교의 전파를 막으려고 합니다. 바쿠스는


'당신의 모독이 나에게는 찬사라오. 하하하하.'


라며 보복을 계획합니다. 바쿠스의 계략으로 축제에서 광란에 빠진 바쿠스 여신도 바카이들에 의해 왕은 사지가 찢겨 죽습니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광무를 추다가 펜테우스를 죽인 여인들은 바로 그의 어머니와 아내였습니다. 그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들이 한 일을 깨닫고 울부짖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펜테우스의 죽음  BC 450~25 루브르 박물관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도리스 국가와 도리스 예술을 아폴론적인 것의 진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 야만적인 본질에 끊임없이 저항함으로써 성벽을 둘러싸고 ... 그토록 잔인하고 가차없는 국가조직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니체, 비극의 탄생 제 4장


니체는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에서 나타난 질서를 아폴론적인 것이라 하였습니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상만 보더라도 가장 완벽한 인체 비례를 그 미의 척도로 삼고 있죠. 이에 반하여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야만적인 본질에 충실한 것으로서, 술에 취하고 신들린 밀교를 대표합니다. 이 작품에서 디오니소스를 비례를 고려하지 않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몸매로 그리고 있는데 아마 술살이 찌면 이렇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상적인 아폴론의 외모와 너무 비교되죠?


가끔 안내하다보면, 손님들이 말하곤 합니다.


"저 바쿠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맞다. 개그맨 김형곤!"

"그러고 보니 그러네. ㅎㅎ"


제가 봐도 닮긴 닮았습니다. 고 김형곤 개그맨이 다시 보니 서구형으로 생기긴 했더군요. 김형곤 선생의 시그니처 희극 '탱자 가라사대'는 기득권, 정치권을 풍자한 뛰어난 개그였죠. 어떤 면에서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바쿠스 종교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형곤 선생은 국민을 권위주의로 찍어 누른 기성 권력에 통쾌한 풍자를 작렬시켰죠. 하지만, 김형곤 선생은 의식있는 분이었지 질서를 문란케 하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원초적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드러내었으니 좀 더 철학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겠습니다. 오른쪽에는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 실레노스가 술독 채 술을 들이키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바쿠스를 섬기는 여사제인 바카이가 술을 따르고 있습니다. 잘 보시면 황홀경에 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술이 넘치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떨어지는 술한방울이 아까워 받아먹는 아기가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기분 좋게 노상방뇨하는 볼이 발그레한 아기가 있습니다.

술마시는 마쿠스 1623 귀도 레니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헉, 어린 애들에게 술을 먹이고 술취하게 해?'

'이런 그림 박물관에 걸어 놔도 되는 거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술 먹고, 신들려서 황홀경에 빠진 이 모습은 도덕이 무너진 소름끼치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무섭기까지 합니다. 신화에서는 혼음과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것으로 나오죠. 그에 비하면 루벤스의 그림은 점잖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아, 그럼에도 쉽게 감당이 되지 않네요. 이러한 무질서는 사회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것으로서 처벌하고 막아야 할 대상이겠죠? 그래서 지배층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바쿠스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성과 질서에 반하여 광란과 황홀경에 빠져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하는 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할 때, 이 그림에서 루벤스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도덕 기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디오니소스는 승리하여 올림푸스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올림푸스 산정의 신들을 그릴 때 디오니소스가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신이 어떻게 12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궁금해 지는 대목입니다.

올림푸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의 천장화


https://youtu.be/jL3Inzhgn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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