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한국을..? “왜..?!!?”라고 생각했으나
honeymoon. 말 그대로 신.혼.여.행.
우리에게 자고로 신혼여행이라 하면! 에메랄드빛 한가득 뿜내며 햇빛 왕창 쏟아지는 곳의 드넓은 바다, ''하와이', '괌', '발리', '몰디브'나 '칸쿤' 같은 곳을 떠올리거나, 그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낭만적인 유럽의 중세거리부터 떠올린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반지를 건네받으며 여자라면 그 누구라도 꿈꿀 만한 낭만의 프러포즈를 받기도 한 것이 나의 친한 동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흔히들 막 결혼 한 이들의 카톡 배경사진이 바뀐 걸 보면 기다랗게 솟아오른 ‘낭만’의 아이콘, 에펠탑을 뒷 배경 삼아 하얀 드레스와 검정색 턱시도를 멋지게 걸쳐 입고서 찍은 여러 사진들이 있지 않나. 파리의 에펠탑, 센느강, 루브르박물관의 배경은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카톡사진으로 수없이 보았더니 이제는 꼭 가본 것만 같은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유럽에 가는 것이 바램이었으나, 코로나 직격타를 제대로 맞던 21년 식을 올리는 바람에 유럽은커녕 해외엔 발도 들이지 못했다. 그리하여 간 곳이 제주도였는데 신혼여행만큼은 멀리 떠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국내에 머무르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끼지 말고 제주도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다 누려보자!’ 하며 호사롭게 보내기도 했던 곳이 제주 신혼여행이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았으며 그만큼 지갑도 얇아졌다. 언제 또 제주여행을 이렇게 호사롭게 내가 할 수 있을까? 푸하하.) 무튼 저튼 결국은 결혼 일 년 반 정도가 지나서 남편과 유럽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제주도야, 워낙 우리나라 사람 누구라도 멀지 않은 국내에서 ‘휴양지’ 혹은 ‘쉼’을 생각하면 곧장 제일 먼저 떠오를 곳이기도 하며 이만큼 여유롭고 풍족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다 싶은 곳이 또 제주도 아닌가. 그리하여 나 역시도 남편과 연애 전 솔로일 때에도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할 때면 꼭 짧게나마 제주도로 향했고, 스트레스가 극심할 땐 친구와 전날 급! 비행기를 끊고서 떠났던 곳이 제주도였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해서 연애 초기, 처음으로 함께 멀리 떠난 곳이 크리스마스날의 제주도이기도 했으며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나게 된 곳 역시, 제주도이기도 했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에피소드. 나와 남편은 18년도 크리스마스 이브날,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몰랐겠지만 사실 이때에 난 전 x-boyfriend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에 대한 공허함이 꽤나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던 때였다. 학창 시절 모든 열정과 시간을 다 쏟아부었던 ‘연기’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온 지도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앞날이 막막하기도 했던 그 시기. 그 시점에 연말 분위기 온 거리거리마다 풍기던 11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언니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해운대바닷가 앞, 분위기 좋은 스페인식당에서 감바스와 와인 한잔을 하며 그간 살아온 얘기를 하느라 바빴는데 마침 언니도 아주 오랜 기간 연애를 해왔던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상처가 미처 아물지 못하던 때였다. 나는 이때에 한참 추락한 자존감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고자 했는데 그 하나의 방편으로 한라산 등산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왕이면 크리스마스날. 막 솔로가 되고 직업도 사라진 시점에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따뜻해야 할 연말,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1년의 가장 큰 행사, 크리스마스날, 그 우울감을 더없이 뼈저리게 느끼고 싶지가 않았다. 상상만 해도 처량하고 불행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만 같아서 그날 꼭 등산을 떠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가장 힘든 곳으로. 등산을 다 끝냈을 때 가장 성취감을 크게 가져질 만한 곳으로. 그리고 그 계획을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웬걸. 언니가 그 계획에 함께 동참하길 원하는 것이다! “귀은아! 그거 너무 좋다! 언니도 같이 가도 되?” 그리하여 언니와 나는 크리스마스 전날, 이브. 단단히 착용한 등산화에, 등산가방에 귀여운 크리스마스 인형과 소소한 머리핀까지 꼽꼬서 제주도로 향했다. 가슴 탁- 트이는 한라산 등산을 완벽하게 해내고 상쾌하고 기분 좋은 공기 마음껏 들이마시며 몸을 뉘러 곧장 향했던 게스트하우스. 그곳에는 예상치 못하게 크리스마스에 방황하던 수많은 젊은이들로 붐벼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크리스마스에 처량한 사람이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지. 나 빼고 모두가 사랑하는 연인과 프라이빗한 공간 속에서 오붓한 시간을 정답게 나누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다르지 않은 처지의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놀란 뒤, 곧장 언니와 씻고서 나오니 바로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파티시간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파티’라는 것은 나와 영 맞지 않는 형식 중 하나라서 식사만 하고 금방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같이 간 언니가 내 팔을 붙잡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귀은아,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만큼은 그냥 즐겨보자. 사람들이랑 대화도 많이 나눠보구. 너무 오래 있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 늘 그렇게 조용하게 보내고 일찍 잠들 사람들인데 이런 날 여기까지 맘먹고 와서 그러긴 너무 아쉽잖아.” 그 말에 2차까지 향해버렸다. 그곳에선 아주 크게 둥글게 앉아 각자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고 소소한 이야기꽃이 피우는 시간이 연속되었는데, 우습게도 나는 이때 남편과 단 한마디도 섞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어쨌든 이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긴 했지만. 그러고 부산에 돌아와 운동을 하는데 서울에서 매번 함께 하던 운동메이트들이 부산에선 찾을 수가 없어 홀로하니 그것도 어쩐지 점점 흥미가 떨어져갔다. 러닝은 러닝크루에 들어가 함께 뛸 사람들이 있어서 즐거웠지만 라이딩은 늘 홀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언니에게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언니가 문득, ‘나 갑자기 생각난 사람있어! 원제씨라고. 제주도에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있을 때 얘기 나눴던 사람인데 그분 인스타 보니까 라이딩이랑 러닝을 엄청 좋아하는 거 같던데? 온통 그 사진밖에 없어. 울산에 사는 거 같던데! 한번 연락해 봐! 해운대랑 멀지 않으니까 종종 같이 취미생활 나누면 좋잖아.’
모르는 사람에게 불현듯 연락해서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하고는 그건 곧장 접어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머리가 어지러우면 홀로 자전거를 끌고 긴긴 라이딩을 떠나곤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인 게 아쉽다. 그래서 용기 내 연락을 했고, 흔쾌히 자전거를 차에 실어 해운대로 와주었던 것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그날은 정말로 남편도 나도 이성적인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훗날 그 만남이 이어져 연애를 하고 이렇게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생긴 걸 생각하면 제주도에서의 인연이 그냥 지나칠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만큼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익숙한 국내 휴양지라면, 제주도만 한 곳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낭만'이라는 분위기에 제일 걸맞는 곳이기도 하달까...! (내가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도 제주도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하지 않은가!) 요즘에야 국내에서도 해외 부럽지 않을 만큼 멋지고 광활한 자연, 유적건물 등이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신혼여행지'로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거 같다. 그래서 모두들 우리가 생각하는 '로맨틱'하고, '낭만'이 풍겨지는 먼 나라로 떠나 말 그대로 'honeymoon.' 달달한 신혼을 즐기는 게 아닐까.
근데 우리의 생각을 깨고, 멀고 먼 그 나라들에서 우리나라로 신혼여행, 그니까 'honeymoon' 말이다!! 신혼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나 많이.
22년 9월 9일. 추석연휴의 첫날.
추석연휴의 첫날에 만난 사랑스런 외국 커플이었다. 카프레제바게트를 하나씩, 커피를 하나씩 주문하고 깔끔하게 다 드신 뒤 바게트를 하나 더 추가해 나눠드시기도 하셨다. 꽤나 적지 않은 양인데 한번 더 주문하시는 걸 보고 속으로 흐뭇해하기도 했던 이날. 두 분은 꽤 긴 시간을 이곳에서 여유롭게 보내셨다.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켜서 작업도 하고, 닫은 노트북 뒤로 서로 마주 보며 한번 더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긴긴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는 길, "여행오셨나봐요." "두 분은 커플이신 거죠?"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이내 서로를 바라보고 웃질 않는가. 아, 혹시 아닌 거냐며, 그렇다면 미안하다고 놀랜 나를 두고 두 분에게서 황급히 돌아온 대답.
"우리 저번주에 결혼했어!!"
"그러니까..., 커플은 아니지만 부부라는 거네요!!!" "다행이에요. 남매가 아니라서." 하며 껄껄껄 다 같이 웃는데, 순간 스치는 생각. '잠깐만. 저번주??! 저번주에 결혼했다고...? 그럼 지금 이건..'
"혹시 지금 이게 신혼여행인거야??????"
"맞아!!!!"
"어디에서 왔어?"
"벨기에!!!
난 아크로바틱과 필라테스를 하는 강사이고 내 아내는 벨리댄스 강사야!! 인스타그램 주소 알려줄까?"
갑자기 묻지도 않은 신상을 얘기하더니 신난 체 내게 sns 주소까지 알려준다. 그렇게 얼떨떨하게 받아낸 sns를 들여다보고 나니 그제야 남자가 흐뭇하게 긴긴 신상을 알려준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이렇게 멋지다니!!! 사진 속 두 분은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온통 춤과 운동, 묘기에 가까운 동작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을 알려주는 두 분의 표정에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꽤 멋지지~??!'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눈빛. 그 눈길이 귀여우면서도 정말로 멋져, 신나게 환호해 주었다.
"너무 멋진데~!!!!"
먼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온 것만도 신기한데 두 분은 차를 렌트해서 서울, 속초, 경주, 부산, 안동까지 속속들이 국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내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 대화를 이어갔다.
댄스강사 두 분이 만난 만큼 에너지가 크고 강렬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눈빛은 또 얼마나 강렬하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대화를 하는데 꼭 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오게 된 건지 물으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전혀 모르는 나라에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고 싶었던 게 이유였고 그렇게 찾다 보니 한국이 가장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흥미가 채워졌을까?' 하고 내심 속으로 걱정했던 내 마음과 달리 둘은 정말로 한국인인 나보다도 한국을 100% 즐기고 있었다.
연락을 주고받고 난 이후, 잊을만할 때쯤이면 이들은 내게 안부를 종종 물어오는데, 시간이 한참 흘러도 가끔 한국 여행을 추억하며 올라오는 사진이 너무도 멋져 홀리듯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을 보니 한국의 전통풍경이 너무도 새롭게 보였다. 이국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의 전경이 이런 걸까...? 자주 가던 경주도 새롭게 보이고, 전통 찻집마저도 더 근사하게 보인다. 멋진 전통공간에서 그들이 펼치는 춤사위는 또 얼마나 아름답게 어우러지는지.
'왜 내가 한국은 신혼여행으로 적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생각을 달리 해보면, 우리나라만큼 먹을거리를 다양하고 풍족하게, 또 재밌게 즐길 수 있을 나라가 없을 것이며 밤낮 할 것 없이 꽉 채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나라도 없을 것이며 지역마다 특색이 이리 강한 것도, 예쁜 자연들과 전통공간이 고즈넉하게 펼쳐져있는 곳도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내가 누려오는 해운대바다의 운치와 야경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가.
그 생각에 미치니, 어쩐지 이들을 만난 것이 뿌듯하다. 그리고 나도 국내를 좀 더 즐기고 봐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훗날 나는 이들을 만난 뒤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를 두 팀이나 더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엔 놀라움보다도 즐길 거리를 더 많이 알려주게 되었으며 그 여정을 부럽게 바라봐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는 것이 내게 흐뭇함으로 남기도 했다.
'그러게. 한국도 충분히 로맨틱하고 낭만적이고 멋진 신혼여행지가 될 수 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