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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Dec 18. 2023

엄마의 유품, 에스프레소잔 이야기.

우리 가게엔 유독 모녀분들이 많이 오신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정말이지 연령대도, 성별도, 나이대도 구분이 없이 다양한 손님분들이 찾아오신다. 가족 구성원인 아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함께 오시기도 하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젊은 커플들과 친구들이 오기도 하고 어머님들의 수다의 장이 되기도 하며 군인들이 찾아오기도, 친구들끼리 두 명 혹은 삼삼오오 모여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다.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 홀로 찾아온 배낭여행자들도, 책을 들고 자유로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러 오시는 분들도 많다. 나이는 10대에서 70대까지도 참 다양하게 찾아오는 곳이 몽상가다. 그래서 좋다. 어떠한 차별도, 간극도, 벽도 없는 곳이라 느껴지는 이곳이라 좋다. 그 모두가 함께 포용되는 공간이고 그 모두가 함께 한 공간에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좋다. 그런 공간 속에 내가 들어서 있는 것이 따사롭게만 느껴져, 그것 또한 좋다.


참 신기하게도,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우리 집은 엄마와 딸, 모녀가 함께 오는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호기로웠다. 그것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신기했다 할까, 감격스러웠다 할까, 아니다.


'따뜻했다’가 가장 맞는 표현인 거 같다.


기억에 남는 모녀분들이 많다.


소중한 모녀 단골손님분들도, 여러 인연들과 함께 나눈 추억과, 정이 여전히 따스하게 남아있다. 예쁜 만남들-



22년 6월 13일.

이 날 유독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던 손님분들이 있었다. 나란히 다정하게 함께 들어선 세 모녀분이셨는데 딱 보아도 따님 두 분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오신 듯하였다.

‘예쁘다… 너무 보기 좋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눈길이 빼앗겼다. 나는 늘 이렇게 모녀손님분들이 오시면 자꾸만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르곤 하는데, 눈길이 계속해서 거둬지지가 않고 그 모습이 빛나게 내 마음으로 다가와 포옥- 담긴다.  예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계속 우러나는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일찍이 세상을 떠난 우리 엄마를 자주 생각하기도, 언젠가 함께 할 미래의 내 아이와의 삶을 자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꾸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꿈과 같은 미래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수없이 상상하기도 한 모습이니까.

엄마와 팔짱을 끼고 쇼핑을 나서고, 나들이를 하고, 바깥풍경을 함께 바라다보고, 맛있는 외식도 하고 커피 한잔을 하기도 하는 그런 상상을. 그래서 그들을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해지는 게 나에겐 큰 선물이기도 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예쁘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감상이 절로 생기는 순간. 그런 순간이란, 나에겐 이런 순간인 것이다.



곧 세 분이 주문하신 메뉴는 크림베리프렌치토스트와 미니튜나크로와상 2 pcs, 와사비토푸샐러드와 비건라떼, 그리고 아이스아메리카노.


주문을 받고 부엌으로 돌아서는데, 손님 한분이 불현듯 외치신다. “사장님!! 저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숙박하고 왔어요!!”

‘어랏..?’ 신기하게도 이 날 아침엔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숙박하고 오셨다는 손님이 이미 두 팀이나 있었다! ‘꼭 파라다이스호텔이랑 제휴를 맺은 것마냥! 오늘은 신기하게도 그러네…!’

“진짜요? 아까 오신 손님분들도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오셨다고 하셨는데!!” 진짜로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누군가 확성기 들고 홍보라도 한 건가?!?! 크큭.


재밌는 상상도 잠시, 곧장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한다. 하나씩 음식과 커피를 내어드리고 나니 세분께서 한참을 대화 나누며 시간을 즐기시는데 그 모습이 또 왜 그리 좋은지.

‘나도 엄마가 계셨으면 이렇게 같이 여행도 다니고 식사도 하러 다녔을 텐데. 얼마나 좋았을까!’ ‘나중에 혹여나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아이와 함께 여행 많이 많이 다녀야지. 함께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전시회도 같이 다니고, 쇼핑도 다니고 그렇게 친구처럼 지내면 참 좋겠다.’



식사를 모두 끝낸 세 분이 갑자기 내게 고개를 돌리신다. “사장님!!! 음식 다 너무너무 맛있어요!!!!” 알고 보니 따님 두 분이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1박 2일간 여행을 온 것이었고, 어머님께서도 서울에서 1인 샌드위치가게를 운영하신다고.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지라 차마 문을 닫을 수가 없어 몇 년을 쉴 틈 없이 일했는데 이번엔 환갑생신이셔, 두 따님이 꼬옥 설득을 시켜 세 분이서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오셨단다.

그 말이 너무 멋지게 느껴져 더 신이 난 나는 왜 이리 짧게 있다가 가시냐고, 1박 2일은 너무 아쉽다고 했더니, 어머님께서 하루 그 이상은 가게 문을 결단코 닫을 수가 없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겨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1박 2일 시간을 내어 가게를 운영하신 뒤로 난생 처음 여행을 오셨다고. (가게를 연지 정말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았다. 손님이 있어도 없어도 가게문은 내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다거나 큰일이 생겨도 닫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 그냥,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내 마음이 그런 것이다. 혹시나 누군가 이곳에 귀한 걸음을 해주셨는데 문이 닫혀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서운한가. 그 생각이, 아무리 아프고 큰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가게로 어김없이 향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 모든 자영업자들의 마음이 같지 않을까.)


그렇게 1박 2일간의 여행 중 오늘이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부산여행날. 그 귀한 여행시간 속에 이곳을 찾아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근데 이 시기엔 늘 신기했던 것이 있었다.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을까..?’ 문을 연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었을뿐더러, 밖에 간판도 없고 한적한 골목길 안에 굽이 굽이 들어와야 보이는 조그만 입간판 하나 놓여있는 2층 작은 카페를.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친구가 해리단길이라는 곳이 있다고 알려줘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상하게 여기가 계속 끌리더라구요. 그래서 원래 가려던 곳을 안 가고 이곳으로 향했는데 여기로 오길 너무 잘한 거 같아요! 우리 내년에도 또 올 거 같아요, 정말로.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장님.”

‘닿일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닿이는가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만난 인연은 모두 언젠간 꼭 닿일 인연이었겠지, 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지금 이 만남과 순간도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엄마의 유품, 에스프레소잔 이야기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다, 찻잔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가게 한켠엔 나에게 꽤 소중한 찻잔들을 진열해 두었는데, 그중 오래된 엄마의 유품_ 에스프레소잔 두 세트도 놓여있었다. 23년 전, 작은 분식집 가게를 운영하던 엄마가 자전거로 배달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이모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소중한 엄마의 유품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한 날 이모에게 연락이 와 집으로 찾아갔더니 내게 안겨준 예쁜 에스프레소잔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속에서도 꼭 내가 기억하는 엄마를 닮아있는 커피잔이었다. ‘어쩜 이리도 엄마를 닮아있을까…’ 생각했던 커피잔.

엄마의 유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날릴까 봐 걱정된 이모가 잘 가지고 있다가, 이제는 내가 가져도 되겠다며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 소중한 커피잔을 가게 한 켠에 가지런히 진열해 두었는데, 가끔 이 찻잔이 너무 예쁘다며 말을 걸어오시는 손님분들이 계시는 거다. 더러는 이 에스프레소잔에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손님도 있었고, 영국에서 직접 데려온 아이냐고 물어오시는 손님분들도 있었고 내 취향이 고급지다며 좋아하시는 어머님들도 계셨다.


“이 에스프레소잔 정말 너무 예쁘네요.”


세 분이 엄마의 커피잔 앞으로 다가서더니 커피잔을 유심히 보며 감탄하신다.

이럴 때면 왜 이리도 흐뭇하게 마음이 일렁이는지….


“아, 흐흐. 예쁘죠? 실은 그게 저희 엄마의 유품이에요. 살아생전 엄마가 지니고 있던 커피잔인데 이제는 제가 이 커피잔을 들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네요. 어머님도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저처럼 작은 가게에서 혼자 운영하셨어요. 카페는 아니고 분식집이었지만요.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하네요. 이제 제가 이 찻잔을 들고 자그만 가게를 엄마처럼 똑같이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러게, 정말이지 나도 엄마처럼 가게를 운영하고 있구나. 엄마처럼 작은 공간에서, 엄마처럼 나 홀로. 아마도 엄마도 그랬을 것처럼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사는 이야기들을 쌓으면서…. 감회가 남달랐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으니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상상이나 했을까. 연기를 그만두고 음식을 하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의 커다란 접점이 생긴 것만 같아 기뻤고, 뭉클했다.


“그렇군요. 찻잔이 너무 예뻐서 유럽에서 사장님이 직접 사 오신 줄 알았어요.”

세 분 역시 이 커피잔이 유럽에서 건너온, 자세히는 내가 직접 데려온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흐흐. 그만큼 예쁘죠~??!”


그렇게 여러 대화들이 오가고 세 분이 가게를 나서는 길,

갑자기 어머님께서 뒤돌아서, 한 팔을 열심히 올렸다가 힘! 차게 내리시며 외친다. “화이팅!!!! 대박 나세요!! 대박 나서, 나중에 직원들도 쓰고 더 크게 크게 번창해요!!!!”

순간 눈물이 핑-

순간적으로 훅-하고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열심히 꾸욱 참고서 소리쳤다.


“어머님도, 항상 건강히!!! 화이팅!!!!!”




이모가 건네준 오래된 엄마의 유품, 에스프레소잔이다. 엄마의 취향과 숨결이 느껴지는 찻 잔_


그리고.. 나는 가게를 운영한 일 년 반 동안 참으로 많은 순간 엄마를 생각했다.

아주 많은 순간에, 그리고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이 들 때가 많았고 그것이 나에게 큰 위로와 힘과 동력이 되는 때도 많았다.

어쩌면.. 정말로 바로 옆에서 혹은 이 가게 안 어딘가에서 엄마가 함께 했었던 게 아닐까?





7월의 어느 날, 일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엄마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어쩌면 거의 매일을 하게 된 거 같다.


엄마의 젊은 날 어떤 생을 내가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게에서의 내 삶이 그런 느낌이다. 늘 엄마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느낌, 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이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가게 안에서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내고,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혼자 작업을 할 때에도, 그 모든 순간 나를 통해 엄마를 본다.


엄마의 어느 젊은 날.

엄마가 살아생전 홀로 가게를 운영해 가던 그 나날들을.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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