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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Dec 19. 2023

매출 0? 상심하지 마! 대신 우리에겐 낭만이 있잖아!

빨간 드레스의 손님과 아영이


오늘은 카페를 오픈하기 3일 전. 항상 꿈꿔오던 순간을 두고 이 일은 꼭 해야겠다, 생각했던 일. 이 공간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나만의 카페일지.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을 테고, 단 한 명의 손님이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인연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을 테고, 예상치 못하게 손님이 많아 허둥거리는 날도 있을 테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흐린 날, 재즈와 커피 한잔으로 오픈부터 설레이는 날도 있을 테고 쨍쨍한 햇빛이 가끔은 가게 밖으로 나가고 싶게 만드는 날도 있을 테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 일 테고 너무 뻔한 일과들의 연속이라 탈출을 감행하고 싶은 날도 있을 테다. 그 모든 순간들을 단 한 줄이라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힘든 순간도 많을 테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올 테고, 너무 행복해서 말로 설명하기 벅찰 만큼 가슴이 꽉 차는 날도 있을 테고, 이 공간의 모든 사물들과 음식들이 나에게 말을 걸며 수다를 떠는 날도 있을 것이며, 소중한 인연들과 이 공간에서 추억이라는 시간을 함께 쌓아가며 보내는 나날들도 생길 것이다. 그 모든 순간들에 내가 ‘글’없이 버티거나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NO!”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나중에 이 순간들이 아쉽지 않게, 하루하루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게. 소소한 것들이라도 적어내리기로 했다.


22.06.05.

정확히 카페를 오픈하기 3일 전에 쓴 일기다.

1년 반을 넘는 기간 동안 카페를 운영하고 돌아서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좀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는데, 일단 첫 감상은 이런 거였다.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을 테고… 라니? 정말로 그런 날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서 쓴 거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생각해 보면 그랬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 꽤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 브런치식당에서 요리사, 바리스타, 점장으로 지내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아무리 유명하고 명망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말도 안 되게 조용한 날이 있으며 말도 안 되게 매출이 0에 가깝게 찍히는 날도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모두 크고 넓은 지점에서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런 날들을 많이 거쳐보고 내 가게를 열었을 때, 처음 먹은 마음가짐 중 하나가 이것이었으리라.

'혹시나 정말 너무도 조용한 날이 있더라도 크게 상심하지 말자. 그 하루에 휘둘리지 말자.’

그래도 정말로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가? 여전히 의문스럽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믿었다기 보단 대비에 가까운 그저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정말로 매출이 0에 가까운 날이 왔을 때, 그 상심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이걸 내가 미리 예상하고 대비를 했다고? 내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참 많은 순간,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을 찾으며 힘든 시간도 많이 웃으며 보냈던 거 같다. 혹은 그 순간마저 즐겼는지도. 어쩜 지나간 시간들은 회상하기 나름이니까ㅡ




커피와 빵, 요식업으로 전환을 한 뒤 내가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했으니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만들어낸 인연들도 꽤나 적지 않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어느새 각자의 터전을 일꾸어 자영업자가 되었고, 일터에서 만났던 대표님이나 사장님이 여전히 두터운 우정으로 이어지는 인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모두에게 드물지만 말이다! 나에겐 그런 멋진 옛 사장님이 있다! 심지어 지금은 언니 동생 사이이니, 이 인연도 얼마나 멋지고 귀중한 우정인가 싶다. 늘 감사하다.) 내 주위엔 그렇게 많은 자영업 동료들, 스승들,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같은 업을 지닌 사람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 접점이 또 다른 같은 업의 인연들을 만들어주는 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 같은 자영업자 동료들을 만나 커피 한잔을 두고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정은 정말이지 다 똑같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밖에선 정말 잘 되고 있는 거 같은 가게 사장도 화려한 겉모습 뒤로 남모를 고충과 한숨을 토로하곤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그럴 땐 속으로 ‘그래도 거긴 유명하잖아요!! 항상 잘 되잖아요! 기준이 다른 거 아니냐고요!!’ 하고 외쳤다. 하지만 이내 그 사정이 남들과,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가끔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인사를 하며 얼굴을 비추러 들렀을 때, 화려한 인스타그램 뒤로 전혀 예상치 못한 서늘한 공기만이  가게를 휘젓고 있는 걸 마주하는 것이다. 그럼 속으로 ‘흠칫’하면서도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신 더 즐겁게 떠들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거봐, 나도 똑같다니까! 귀은아. 몇 년 간 오래 가게를 영업을 해오면서 느끼는 건데 참 그래. 잘 되는 날 있고, 잘 안 되는 날 있고. 그러니 하루하루 다 연연하며 마음을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운영을 해오면서도 그게 참 안된다? 이건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거나 편해지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래도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중요해!”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곳도 이런 상심이 있다니. 그리고 나는 밖에서 보면 상상도 못 할 뒷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큰 위로가 되진 못했지만.



몇 날 며칠 말도 안 되게 손님분들이 몰려서 홀은 종일 만석인 데다가 심지어 줄을 서는 날이 연속되기도 하고,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지?’싶게 그 흔한 길고양이 한번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조용해서 종일 멍-만 때리다가 오픈 때 펼쳐두었던 재료들을 다시 도로 넣고 남은 음식들을 속상한 마음 부여잡고 버려가며, 마냥 허탈감과 불안감만 안고는 터덜터덜 상처 입은 채로 퇴근하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늘 하는 생각이 있지. ‘난 욕심이 없으니까,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늘 한결같은 정도로 손님분들이 유지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건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푸하하ㅡ 그래도 그럼 얼마나 좋아?






 빨간 드레스의 낭만적인 손님.

그리고...
그런 날이었다.

'한 명의 손님이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인연으로 바뀌는 순간'

22.06.17


첫 오픈을 하기 전, 속으로 내내 다짐했던 것이 있다. ‘아직 홍보도 안되었고, 골목골목을 들어와 겨우 잘 봐야만 보이는 이 작은 2층 가게를 알고 올 손님은 아직 얼마 없을 거야.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정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날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아직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개운한 마음으로 오픈했지만, 정말로 단 한 명의 손님도 만나지 못하고 영업을 종료하는 날이 올 거라곤 믿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침 여덟 시에 오픈해, 저녁 다섯 시가 되기까지. 그러니까, 총 아홉 시간 동안. 무려!!! 아홉 시간 동안 정말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아, 오늘이 정말 그런 날이 되겠구나….’ 서운한 마음 다독이며 조금은 이르게 마감을 시작해야겠다 싶어 펼쳐 둔 오픈거리들을 도로 넣고서 내 식사거리를 해결하고 놔둔 식기를 설거지하려고 고무장갑을 막 끼려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그 반가운 손님은 바로 내 친구 정! 아! 영! 히히.

필라테스강사를 하는 아영이가 당일날 수업이 없어 집에 있다가 내가 보고 싶어서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왔단다.

꼭 오늘 내가 힘이 없다는 걸 알고서 온 것만 같다.

“아영아~~~!!!!!!!”

반가운 마음에, 없는 힘 끌어다가 힘껏 소리쳐 불렀다. “웬일이야~~~~~~”

그렇게 커피 한잔 씩을 두고 아영이랑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 손님 많았어?”

"아니.. 너무 조용했어”

"혹시 매출 하나도 못 낸 거야?”

"...…” 어쩐지 초라하고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친한 친구 앞에선 거짓이 안된다.


"그럼 이 커피값 계산해야지!!! 내가 매출 하나 올려줄게!!!”

"야, 됐어 됐어~!! 여기까지 와줬는데 무슨 결제야, 됐어~~~” 한사코 말려도 커피값을 결제하고 마는 이 여자.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못살아.. 에휴 그래도 고맙다! 힘이 되는구만, 내 친구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은 정말이지 더 이상 손님이 올 일은 없을 거 같아, (거리도 너무너무 고요했으니) 빠르게 마감을 시작했다. 커피머신기를 분리해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영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아영이의 대답이 없다. ‘뭐지?’ 싶어 돌아보니 아영이가 열심히 눈짓을 하면서 입모양을 크게 크게 움직이며 ‘손~~님~!!!’을 소리 없이 외쳐준다. ‘아, 앗! 손님!!!’ 그제야 입구를 바라보니, 빠알간 원피스를 입은 손님 한 분이 들어선다.

“여기… 카페 몽상가 맞죠?”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너무 우아하고 분위기가 멋졌던 여손님. 빨간 원피스가 꼭 제 주인을 만난 양 고급스러웠던 모습이 아름다웠다. 메뉴추천을 원하셔서, 크로와상을 추천해 드렸고 손님은 크로와상2pcs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셨다.

어딘가 평범해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프렌치토스트 다음으로 단골손님분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그니처메뉴였다. 레몬향이 가득 들어간, 전혀 맛보지못했을 새로운 맛.


음식을 내어드리고 크로와상을 드시기 시작했는데 몇 입을 먹고는 입을 여신다.

“사장님. 이거 정말 너무 맛있네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대화는 결국 한 시간이 다 지나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직은 여길 잘 몰라요.”

“아. 제가 평소에 팔로우하던 분이 있는데, 그분이 스토리에 여기를 올렸더라구요. 너무 맛있다고. 평소에 그런 걸 올리는 분이 아닌데 그런 걸 올렸길래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생각하고 해운대에 여행 온 김에 들렸어요.”

알고 보니 그분은, 크로와상이 너무 맛있다며 두 번이나 방문해 주셨던 쇼핑몰 사장님이셨다.(그리고 훗날 이 사장님의 파급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쇼핑몰 사장님의 스토리를 보고 내 가게를 찾아온 손님분들로 그 주말에 인산인해가 된 것이었다! 홍보도 안된 막 생긴 이 조그만 가게에 말이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그리고 또다시 찾아왔던 그 쇼핑몰 사장님은 크로와상에 빠져 부산 출장 중 삼일을 들리셨고 내심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인플루언서의 힘이란 게 이런 거구나, 여실히 느꼈던 재미나고 신기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궁금증에 찾아본 그 쇼핑몰은 엄청나게 규모가 큰 쇼핑몰이었고, 내 친구들도 아주 많이 팔로우를 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꼭 연예인을 본 것만 같기도 하고ㅡ 큭큭.)

'신기하다. 그렇게도 알게 되고, 오게 되는구나!’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 요리가 손님 입맛을 만족시켜 드렸다니. 이처럼 뿌듯할 수가 없다.

'혼자 여행을 오신 건지'를 시작으로 나랑 아영이, 그리고 손님까지 셋이서 정말 끝없는 여행얘기로 수다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손님도 정말 우리 못지않게 낭만파. 그리고 여행을 정말로 많이 다니셨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도시 런던. 그리고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서점, 다운트북스. 가게 한켠에 걸려있던 다운트북스 에코백을 보고 반가워하시더니, 런던여행 동안 다운트북스를 들려 좋았던 기억을 읊어주셨다. 그리고 런던을 지나 호주. 호주얘기가 나오자 이번엔 아영이가 신이 났다. “호주 어디 계셨어요?” “전 멜번이요.” “전 시드니에 있었어요” 그때부터 호주얘기가 시작되었다. 호주에서 마약을 판매할 때에 신발을 전깃줄 같은 곳에 묶어두고 표시를 한다고. 처음엔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그것도 재밌고 낭만적으로 보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너 마약해?’라는 디엠이 날라오더라는 것이다. 마약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이번엔 아영이의 일화. 호주에서 가끔 약파티(?)와 같은 행사가 있는데, 뭣도 모르고 그날에 그 파티를 지나가며 눈이 반쯤 풀려있던 사람들을 지나쳐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 그 뒤로도 한참 호주의 화창한 날씨, 좋았던 추억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꽃이 펼쳐졌고, 둘은 그때로 마냥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손님분께서 들려준 여행기는 뉴질랜드, 일본, 미국 등 참으로 다양했다. 지금 남자친구분은 미국분이라니, 장거리연애 얘기에 귀가 쫑긋쫑긋하며 내가 다 애가 타고 간질간질하다.

​​

'​그래, 인생 뭐 있나. 일상에서도 이런 대화만으로도 이 순간이 여행이지.’ 가슴이 한가득 찬다.

어느새 오늘의 고단함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일곱 시.

마감을 이르게 시작하자해 놓고서 마감을 평소보다도 늦게 시작했고, 손님은 뒷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택시를 부르신다.

서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며, 언젠가 또 부산에 들리는 날이 오면 그때에 뵙기를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 날은 정말이지 하루가 너무 적적한 날이었다.

바쁜 날들이 연속되었다가도 이런 날을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나고 두렵기도 하고 내가 장사를 해도 될 깜냥인지 스스로를 다그치고 의문하기도 했던 날.

길고 긴 지루한 시간들을 버티고 버티던 그런 날.


그렇게 불안감만 안고 매출이 0으로 끝날 줄만 알았던 이 날은 사랑하는 친구가 놀러 와 내 기분을 끌어주었고, 마감이 다가오던 시간 예상치 못하게 들려주신 빨간 드레스의 낭만적인 손님으로 인해 매출을 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길고 길었던 하루가 말끔하게 잊어질 만큼 즐거운 수다를 떨기도 했다.

처음 만난 손님과, 친구와, 내가.

꼭 오래된 친구가 모여서 대화를 나누듯 설레는 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일화는 오픈하고 불과 일주일정도가 지났을 때의 일인데, 이렇게 조용한 날이 훅- 찾아오거든 영업을 이어간 지 일 년이 넘어서도 여전히 나는 이 날과 같이 어깨가 추욱, 쳐진 상태로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바쁘고 조용한 양날의 칼 같은 날엔 종잡을 수 없이 그날의 패턴에 따라 내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했지만 문득 이런 날들을 떠올리면 다시금 힘이 나는 것이다.


바쁜 날은 바쁜 만큼 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이 생기고, 조용한 날은 조용한 덕에 그 날 만난 손님과 더없이 소중하고 즐거운 대화 속으로 퐁당-빠져 여행을 즐기기도 하는 것.


내가 훗날 많은 날들을 홀로 버틴 힘이 아니었을까ㅡ?


그리고, 그 힘이 이제는 영업이 끝나도 내게 잔잔한 추억들이 되어 곳곳에 남겨져있다.




하루가 너무 적적한 날이었는데 마지막 한 팀의 소중한 손님과 나눈 끝없는 여행얘기에 하루가 가득 찬 느낌이다. 마냥 따뜻하게 채워진 느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대신 오늘은 정말 소중한 손님을 만났네. 나는 지금 여행 중인 게 맞구나!’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가득 찬 몽상가이기를 바라며! ​내일을 위해 나는 또 퇴근을 하고서 신선한 식자재를 사러 간다. 일 년 뒤, 또 언젠가 이 일지가 큰 추억이 되어서 미소를 머금으며 회상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거야! -22.06.17 diary



*p.s

낭만이 나를 버티게 한 건 맞지만, 결코 그것만으론 버틸 수 없다는 걸 안다. 현실이고, 생계이고, 직업이니까.

물론 그만큼 수많은 시간 힘들어했고 상처를 입기도 했고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좋았던 시간을 기억하고, 감사해하며 추억하는 일은 실로 내게 큰 위로와 힘을 안겨다 주었다. 손님이 없어 불안할 때는 되려 그 시간을 자기 계발의 시간으로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메뉴를 더 업그레이드시킬 방안을 연구하면 더 나아갈 힘이 생성된다. 그치만 그 힘도 한두 번이지 연속되면 지속시키기가 힘들다. 그럴 때에 이 좋았던 시간들을 되짚는 거다. 그럼 그 낭만들이 내게 원동력과 힘이 되어 내가 불안에 지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갈 용기를 주니까! 그것이 선순환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이겨낸 방법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어느새 미친 듯 바빠지는 시기가 찾아오고 그 조용하고 적적한 날이 심지어 그리워지기도 할 때도 온다. 가게를 운영하고, 자영업자가 되고, 혹은 사업을 하는 모든 것이 큰 인생을 바라볼 때와 다르지 않은 거 같다. 좋은 날이 있고 힘든 날이 있고 견디는 날이 있고 행복에 겨운 날이 있고. 그리고 그 모든 나날들이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는 참으로 내 마음에 많이 달려있다는 것. 그것을 카페를 운영하며 내가 배운 것 중 하나이다.




이 날이 있고 일년반이 지나 영업을 마감하기 되었을 때 이 날을 회상하며 글을 올렸다. 여전히 낭만적이고 멋지게 사는 손님에게,


그리고 기나긴 댓글로 보답을 준 지윤씨. 지윤씨가 그날, 내가 0의 매출을 낼 뻔한 그 날 찾아왔던 빨간드레스의 낭만적인 손님이었다.
지윤 씨는 액티비티를 즐기고 세상에 대한 모험심과 탐구심, 호기심이 많은 분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즐겼고 그 일상들을 바라보는 일은 내게도 즐거웠다. 참 신기하다! 어쩜 이리도 몽상가에서 만난 손님분들은 다 비슷한 취향과 결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정말로 에너지와 에너지가 비슷한 무언가가 서로를 끌어당기듯 몽상가라는 공간과 나라는 사람, 그리고 손님사이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걸까.




내 친구 아영이.
내가 카페를 만들어가고, 운영해 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줬던 친구 중 한 명이 아영이였다. 가볍게 놀러 왔다가 매장이 바빠 내가 뛰어다니며 진땀을 흘리고 있으면 곧장 가방을 벗고 부엌에 들어와 커피를 내려주고 서빙을 해준 날도 여러 번, 너무 적적해 우울해하던 날엔 어느새 이곳에 찾아와 내 앞에 앉아 무료함을 없애주는 수다친구가 되어주며 참 많은 순간 이 공간에 함께 했다.

아영이는 필라테스 강사가 되기 전, 바리스타로 오랜 시간 몸을 담궜다. 아주 잠깐이 될 줄 알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약 3-4년간 지속되었고 그동안 아영이는 헤드바리스타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아영이는 호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카페업계의 모습을 보고는 진저리를 치며 돌아섰다. 그래도 그 긴 기간의 커리어가 어디로 가지 않아 아영이가 커피를 내려줄 때면 기가 막히게 내려지는 것이다! 넌 몰랐겠지,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든든해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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