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1.
여덟 살의 기억이면 지금껏 살아있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 나는 정말이지 엄마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던 엄마의 얼굴도, 모습도, 추억도 이제는 그것이 나의 환상인지 실제 기억인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기억이 바래고 바래서, 또 오랜 시간 기억하면서 스스로가 왜곡시키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붙들어 매려고 또 다른 스토리의 살을 붙여 지금의 기억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엄마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 속, 실제 했던 엄마의 얘기를 듣는 이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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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몰랐던 나에게 엄마를 미처 애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남겨진 건 불분명한 정체성, 혼란과 혼돈의 카오스, 오랫동안 뜻 모를 부재로 생겨난 만성적인 두려움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았고 두려움에 갇혀 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실제 했던 꽃 같은 엄마를 떠올리며 하나 둘 지워나가는 것.
참 좋은 사람이었다며 엄마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표정들을 보는 것.
좋은 사람의 딸로 태어났다는 증명 의식.
그들의 묘사와 함께 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엄마의 포근함과 온기,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것.
그렇게라도 나의 엄마를 기억하고 상상하며 애도할 수 있게 된 이 시간들.
어릴 땐, 엄마의 죽음에 대해 혹은 엄마의 살아생전 모습에 대해 누군가가 얘기해 주거나 건네 들을 기회가 없었다. 엄마가 죽고 오랜 시간 동안 물리적으로 내 주위엔 가족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 한 아빠밖에 없었으니 당연할 터이고, 엄마의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앞에서 엄마를 회상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어른들이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언젠가부터 ‘이제는 컸으니,’라는 말로 사람들의 기억과 입을 통해 나는 엄마를 마주 대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