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그런 것들이 있다. 극복하기를 포기할 때 극복이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면,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 나는 이 검정색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검정색이 찾아오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때론 그런 것들이 있는 거 같다. 내가 이겨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힘에 겨운 것, 기어코 이겨낼 수 없는 것들은 이겨내거나 극복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받아들일 때, 되려 편안해지고 그것이 나의 극복이 되는 것들 말이다.
이제는 어떤 순간이든 이 불쾌한 감정이 순식간에 내 안에 찾아올 때면, '이 아이가 나를 찾아왔구나.' 하곤 잠시 눈을 감고 몇 초간 가만히 멈춰 조용히 받아들인다. 반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빨리 보내버리려 애쓰지 않고서 그저 이 불청객을 잠잠히 받아내면, 신기하게도 이 불청객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듯 맴돌다,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져 없어진다.
아이가 생긴 뒤부터 생긴 깨달음과 지혜 중 하나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길게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을 나는 이제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거나 내가 노력해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아침에 일어나 사랑스러운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같이 행복한 모닝인사를 나누던 와중, 여태껏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괴롭히고 두렵게 만들고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든 이 형체없는 검정의 감정이 무엇인지, 비로소 대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