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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May 11. 2024

죽음

그것은 죽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손을 먼저 씻는다. 아이의 눈을 맞추고 얼굴을 보드랍게 매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애기, 잘 잤니?” 하는 내 물음에 연신 환한 미소로 보답을 하는 윤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아이의 미소는 눈을 뜬 이른 아침부터 내게 벅참에 가까운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 행복을 여지없이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아이에게 같은 미소로 화답을 하던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훅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내 나는 금방 마음에 불안감으로 가득 차는 기분을 느꼈다. 우울감, 두려움, 불안감, 죄책감, 허무함,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했고 나는 다시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 애기, 잘 잤니?

어쩜 이리도 예쁘니? 어쩜 이리도 천사같니?

이렇게 웃는 게 예쁜 우리 아이.

엄마가 널 끝까지 지켜줘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데. 엄마가 혹시나 너무 빨리 세상을 떠버리면 어떡하지? 엄마가 말이야, 갑자기 너무 빨리 네 곁을 떠나면 어떡하지. 그럼 안되는데. 그럼 안되는데. 그럼 넌? 넌 어떻게 되는 거지?

넌 외로우면 안 되는데. 절대 그렇게 두고 싶지 않은데. 넌 행복해야 돼. 엄마가 끝까지 네 곁에 남아서 사랑을 주고 싶은데....

그런 슬픔이 너에겐 있어선 안 돼.'




차분하게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 불청객이 다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나를 떠난 뒤, 나는 아이를 눕혀놓고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곧 나는 아주 많은 순간에 죽음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 그렇게 하나하나 돌이켜보니 그것이 내 의식과 무관하게 자꾸만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는 불안감과 상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늘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언가가 어떤 순간이 되면 튀어나와 나를 검정에 가까운 연기에 휩싸이게 했구나, 날 외롭고 두렵게 했구나,라는 걸. 그 무언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언제고 나 역시도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언제 갑자기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늘 안고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며 그 사실은 내가 아주 노력하고 없애려 한다 해서 앞으로도 역시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람, 가장 소중하고 사랑했던 사람, 엄마의 죽음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거 같다.

엄마의 죽음은 내가 너무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기에 ‘죽음’이라는 형상, 이미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슬픔같은 것은 나와 별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엄마’라는, 말 그대로 관계에서의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는 늘 내게 영향을 미처 왔음을 알았지만 진짜로 나의 엄마, 성명 윤성희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내게 남긴 상실감이 이리도 클 거라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너무도 어렸을 때 부재해 버린 존재라, 엄마와 나 사이의 기억나는 유대, 어떤 이미지, 엄마의 모습 등이 내겐 남겨진 게 잘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한 가정의 역할 속 엄마의 부재만이 내게 남겨졌을 거라 생각했다. ‘윤성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내게 남긴 개인적인 상실감과 슬픔이 내게 이리도 크고 짙게 남겨진 줄은 몰랐다. 여태 내가 그리워했던 건 말 그대로 ‘엄마’라는 역할의 존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엄마가 세상을 떠났던 여덟 살.

여덟 살 때부터 몇 년 동안 끈질기게 꿨던 꿈이 두 가지가 있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 자주 꿨으면 그 색채와 이미지가 여전히 내게 뚜렷하게 기억되어 있다.

엄청난 화산폭발과 끓어오르며 거대하게 퍼져내려오는 검붉은 용암들. 아무것도 없는 단색 바탕에 실타래들이 끊임없이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하는 꿈.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꿈들을 거의 매일을 반복하며 꿨고 몇 년을 꾸었다. 그리고 이게 나에게 있어 악몽이라고 인식해 왔던 건, 이 꿈들을 꾸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고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타래, 실뭉치들이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는 그 형상들은 아주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절대 풀릴 수 없는 모양으로 미친 듯이 얽히고설키고를 내가 꿈에서 깰 때까지 반복하는 것. 생각해 보면 내가 뭔가 풀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게 풀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게 맞다면 그렇게 풀고 싶었던 게 결국은 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을까?

화산폭발과 용암에 대한 꿈은 그런 거였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저 언덕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산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엄청난 용암들이 순식간에 마을을 뒤덮는 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붉은 용암들이 적어도 30cm는 돼 보이는 듯한 두께를 가지고 마을로 쏟아져 내려올 때 꼭 내가 용암에 묻히기 직전 꿈에서 깨곤 했다.

화산폭발에 대한 어떤 영상이나 그림을  적도 없었던 때인데 나는 그것을 꿈에서 먼저 알게 되었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텔레비전에서 용암을 보게 되었을  끈적끈적한 농도, 동그란 기포를 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 검붉은   모든  꿈에서 본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 꿈들을 여덟살때부터 초등학창시절을 함께 해왔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꿈에 대해 잊혀져  때쯤, 형체 없는 불청객을 맞이할 때면 나는 많은 순간 검붉은 색을 떠올렸다. 검은색, 붉은색, 검정색과 붉은색이 뭉쳐져 만들어진 검붉은색.

 색들을 떠올렸고, 그런 색들을 마주하면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곤 했다.

한참이 지나 어렸을  꾸었던  꿈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게  시간동안 나의 머릿속 한쪽에 남겨진 색채와 형상이라는  부인할  없었다. 결국,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남은 인생에 이토록 강렬하게 남겨질  있다는  깨달은 일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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