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죽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손을 먼저 씻는다. 아이의 눈을 맞추고 얼굴을 보드랍게 매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애기, 잘 잤니?” 하는 내 물음에 연신 환한 미소로 보답을 하는 윤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아이의 미소는 눈을 뜬 이른 아침부터 내게 벅참에 가까운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 행복을 여지없이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아이에게 같은 미소로 화답을 하던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훅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내 나는 금방 마음에 불안감으로 가득 차는 기분을 느꼈다. 우울감, 두려움, 불안감, 죄책감, 허무함,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했고 나는 다시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 애기, 잘 잤니?
어쩜 이리도 예쁘니? 어쩜 이리도 천사같니?
이렇게 웃는 게 예쁜 우리 아이.
엄마가 널 끝까지 지켜줘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데. 엄마가 혹시나 너무 빨리 세상을 떠버리면 어떡하지? 엄마가 말이야, 갑자기 너무 빨리 네 곁을 떠나면 어떡하지. 그럼 안되는데. 그럼 안되는데. 그럼 넌? 넌 어떻게 되는 거지?
넌 외로우면 안 되는데. 절대 그렇게 두고 싶지 않은데. 넌 행복해야 돼. 엄마가 끝까지 네 곁에 남아서 사랑을 주고 싶은데....
그런 슬픔이 너에겐 있어선 안 돼.'
차분하게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 불청객이 다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나를 떠난 뒤, 나는 아이를 눕혀놓고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곧 나는 아주 많은 순간에 죽음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 그렇게 하나하나 돌이켜보니 그것이 내 의식과 무관하게 자꾸만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는 불안감과 상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늘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언가가 어떤 순간이 되면 튀어나와 나를 검정에 가까운 연기에 휩싸이게 했구나, 날 외롭고 두렵게 했구나,라는 걸. 그 무언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언제고 나 역시도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언제 갑자기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늘 안고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며 그 사실은 내가 아주 노력하고 없애려 한다 해서 앞으로도 역시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람, 가장 소중하고 사랑했던 사람, 엄마의 죽음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거 같다.
엄마의 죽음은 내가 너무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기에 ‘죽음’이라는 형상, 이미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슬픔같은 것은 나와 별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엄마’라는, 말 그대로 관계에서의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는 늘 내게 영향을 미처 왔음을 알았지만 진짜로 나의 엄마, 성명 윤성희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내게 남긴 상실감이 이리도 클 거라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너무도 어렸을 때 부재해 버린 존재라, 엄마와 나 사이의 기억나는 유대, 어떤 이미지, 엄마의 모습 등이 내겐 남겨진 게 잘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한 가정의 역할 속 엄마의 부재만이 내게 남겨졌을 거라 생각했다. ‘윤성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내게 남긴 개인적인 상실감과 슬픔이 내게 이리도 크고 짙게 남겨진 줄은 몰랐다. 여태 내가 그리워했던 건 말 그대로 ‘엄마’라는 역할의 존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엄마가 세상을 떠났던 여덟 살.
여덟 살 때부터 몇 년 동안 끈질기게 꿨던 꿈이 두 가지가 있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 자주 꿨으면 그 색채와 이미지가 여전히 내게 뚜렷하게 기억되어 있다.
엄청난 화산폭발과 끓어오르며 거대하게 퍼져내려오는 검붉은 용암들. 아무것도 없는 단색 바탕에 실타래들이 끊임없이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하는 꿈.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꿈들을 거의 매일을 반복하며 꿨고 몇 년을 꾸었다. 그리고 이게 나에게 있어 악몽이라고 인식해 왔던 건, 이 꿈들을 꾸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고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타래, 실뭉치들이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는 그 형상들은 아주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절대 풀릴 수 없는 모양으로 미친 듯이 얽히고설키고를 내가 꿈에서 깰 때까지 반복하는 것. 생각해 보면 내가 뭔가 풀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게 풀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게 맞다면 그렇게 풀고 싶었던 게 결국은 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을까?
화산폭발과 용암에 대한 꿈은 그런 거였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저 언덕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산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엄청난 용암들이 순식간에 마을을 뒤덮는 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붉은 용암들이 적어도 30cm는 돼 보이는 듯한 두께를 가지고 마을로 쏟아져 내려올 때 꼭 내가 용암에 묻히기 직전 꿈에서 깨곤 했다.
화산폭발에 대한 어떤 영상이나 그림을 본 적도 없었던 때인데 나는 그것을 꿈에서 먼저 알게 되었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텔레비전에서 용암을 보게 되었을 때 끈적끈적한 농도, 동그란 기포를 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 검붉은 색 그 모든 게 꿈에서 본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 꿈들을 여덟살때부터 초등학창시절을 함께 해왔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그 꿈에 대해 잊혀져 갈 때쯤, 형체 없는 불청객을 맞이할 때면 나는 많은 순간 검붉은 색을 떠올렸다. 검은색, 붉은색, 검정색과 붉은색이 뭉쳐져 만들어진 검붉은색.
그 색들을 떠올렸고, 그런 색들을 마주하면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곤 했다.
한참이 지나 어렸을 때 꾸었던 그 꿈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게 긴 시간동안 나의 머릿속 한쪽에 남겨진 색채와 형상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남은 인생에 이토록 강렬하게 남겨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일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