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리더라도, 알 권리가 있다
크면 알려줄게
어른들은 언제나 내게 크면 알려준다 했다.
‘아직 너는 어리니까’라는 말로 언니와 아빠는 내게 많은 걸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것들을 모른 채 커야 했다.
‘나는 분명 알아야 했다. 어린 나도, 알아야만 했다.’
어떤 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난 알아야만 했고 나에게도 알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나이가 어리다 해도 가족으로써 알아야 할 사실들을 나는 알 권리가 있었다. 그걸 어른들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만의 방식과 해석대로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으로 방치해 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이 내게 침묵을 유지하는 동안 나는 오랜 시간 방황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건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 누군가 알려주기만 하면 알게 되었을 많은 것들을 알아낼 방법이 없는데도 끈질기게 혼자서 발버둥 치며 공허함과 싸워내며 애쓰던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그런데 언니는 어째서 나에게 그리도 쉽게 얘기하곤 했을까. ‘왜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나’, ‘왜 그렇게 과거 속에 사나’ 우울해하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꾸만 어두워지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쉽게 뱉어낸 그 말들을 견뎌내면서, 나한테 그 말이 얼마나 오랜 시간 상처가 되었는지 모를 언니에게 속으로 되물었다.
‘적어도, 언니에겐 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안 되잖아. 적어도, 적어도 언니는 그렇게 나에게 쉽게 얘기해선 안 돼.’
언니가 미웠다. 왜 당신은 모든 걸, 많은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어렸던 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고 ㅡ과거에 고립되어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ㅡ이라, 그리 단순히 치부해 버리나, 어떻게 언니가 내게 그럴 수 있나. 그럴 자격이 언니에겐 있나. 언니는 그럴 자격이 안 돼. 그런 질문을 내게 할 거라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의 죽음 뒤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내게도 다 알려줬어야 하며 나에게 일어난 못 견디는 그 많은 일들도 언니는 알아야만 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랜 시간 과거에 침잠 혹은 집착했다면 난 그런 질문을 견뎌낼 죄몫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걸 내가 알고 언니가 알았다면, 언니는 내게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했을 거다.
‘어려서’라는 이유는 비겁한 어른들의 회피라고 생각했다. 해답이 나올 리 없는, 전혀 해답을 찾을 희망이 없는 주제에 무모한 시간들에 나를 버려놓았다. 어른들이 알려만 줬으면 단순해질 질긴 시간들을 그렇게 보냈다.
엄마가 정확하게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사고가 난 이후 병원에선 어떻게 된 건지, 엄마의 죽음 이후에 가해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가 된 건지, 엄마에게서 뻗어져 있는 나의 친척들은 그 이후 어떤 이해관계가 또다시 만들어진 건지,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커오고 살아오는 환경 속에 어떻게 내재되어 왔고 내게 어떤 영향들을 주게 된 건지.
너무 많은 의문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물음에는 “커서 알려줄게.” 가 끝이었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죽음을 만들어낸 가해자들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엄마를 잊었을까.
그들은 그 일을, 잊어버렸을까, 아니면 가끔은 악몽이라도 꾸나. 가끔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뜬눈으로 밤을 새는 날도 오는가.
그들이 그렇지 않다면
왜 나는 이런 삶을, 길게도 살아야만 했나.
그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아빠의 문제가 되는 건가.
그러고 나면 생각했다.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해답들을 일찍이 알았다면 나는 빠르게 털고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좀 덜 우울하고 좀 더 밝은 내가 되었을까.
“커서 알려줄게.”라는 말이 단순한 깊이가 아닌 문장처럼, 어린 나는 느껴졌다. 그냥 직감적으로, 더 이상 물으면 안 되는 일, 나는 알려고 하면 안 되는 일, 그저 함께 침묵으로 지나가는 일로 나도 모르는 체 살아가야 하는 일로 여겨졌나.
왜, 나는 “그래도 알고 싶어. 나도 알아야 해.”라고 명확하게 내 마음을 얘기하지 못했을까ㅡ “들어야만 해”, “나도, 들을 자격이 있어”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삼키고 삼킨 말들과 질문들이 언제나 넘쳤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뱉어내지 못했다. 내 생각을, 나의 감정을, 내 욕구를,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한 내 질문을.
‘나는 어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순진한 아이처럼 가만히. 있어야 해.’
그럼 결국 답을 들을 때까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 나의 문제가 되는 건가.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