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 한 마리 몰고 가세요♪의 전말

그냥 만들어 파는 거죠, 뭐

by 이윤원




그래서, 그냥 만들어 팔았습니다



인터뷰나 일상 속에서 ‘왜 개새를 만들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는 중국 남부를 돌아다니며 고생했던 양산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 만들었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만든 건 아니고, 걔네가 거기 있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어째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올랐다는 대답과 비슷하지요?


개새 베이비 시즌1.jpg 짤방에서 캐릭터로 재탄생한 개새 피규어 시즌1 © THIRDSTAGE



한국에서 욕설 풍자 형식의 짤방으로서 개새가 가지는 존재감은 초기 서비스를 제작하던 단계에서 팀 멤버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개+새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을 접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매우 유명한 짤(밈, MEME)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만든 개새 3D프린팅 버전도 이미 초기 마켓에서 판매를 시도한(그리고 마찬가지로 실패한) 아이템 중 하나에 불과했지요.


만약 시즌1의 모델링 원작자인 안경환 작가가 실패했던 저희 플랫폼에 속해있지 않았다면, 또 저희가 서드 스테이지라는 제품 기획사로 아이템을 바꾸지 않았다면 - 아마 개새들이 실제 제품화 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개새 뿐만 아니라, 2010년대 당시부터 세계 각국의 3D프린팅 플랫폼에는 당장의 상업적 가치보다는 제 개인적인 덕후 취향과 잘 맞는 것들이 잔뜩 있었죠. 다만, 그 때는 한국 3D 프린팅 메이커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서양 인터넷 문화를 팔로우하는 것들이었을 뿐입니다.


710x528_7480816_1496035_1459325206_1_0.jpg
Doge의 오리지널 밈(우측)과 이를 구현한 3D프린팅 스테츄(좌측) © RYAN KITTLESON


위의 두 이미지는 최근 가상화폐 업계에서도 대단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MEME인 Doge와 그 3D프린팅 버전인데요. 3D프린팅이 막 붐을 일으키던 2010년대에 업로드되어 지금까지도 Ryan Klttleson이라는 모델러의 계정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상품화가 된 건 아니지만, 이미 9~10년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지게 된 시바견 ‘짤’을 (다소 조악하긴 해도) 실제 피규어로도 간단히 소유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짤조차도 피규어로 만드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것이 저를 이 바닥으로 끌어들인 시작점이자 스스로 생각하는 새 사업 아이템의 여전한 경쟁력이었죠. 일반 공산품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3D 프린팅 마켓의 모델링들은 대량생산으로 팔릴 수 없었던 B급 정서의 서브컬쳐들을 현실로 구현했고, 1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그 재미와 소장 가치를 실제 시장으로 충실히 옮겨온다면 저희 같이 작은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고 봤습니다.




물론 에이드를 운영하던 초기부터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볼 만한 아이디어가 없을까 늘 고민하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다만 3D 프린터의 퀄리티도 부족했고, 저희에게도 자체 제품 제조자로서의 역할은 어색했하고 미약했습니다. 개새도 그러한 후보군 중 하나였지만, 다른 멤버들은 시계나 방향제, 핸드폰 악세서리 등 실용적이면서도 재미도 있는 생활용품들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피규어나 인형처럼 일상생활에서 쓰이진 않는 소품들에 관심이 많았고, 이 점은 서드 스테이지로 전환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20151123_ade_fb_홍보이미지-005-개새갈매기색_02.jpg 2015년 저희 내부에서 직접 작업한 에이드의 초기 버전 개새 피규어 ©THIRDSTAGE



에이드가 거의 생명을 다해가던 무렵, 저희는 ‘개새’ 짤방 피규어라는 이름으로 사내에서 직접 3D 모델링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 캐릭터의 상품화 찬스를 틈틈히 노렸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모델링의 퀄리티와 마케팅, 근본적으로 낮은 상품성때문에 매출이 없기는 마찬가지, 결국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전환하고, 폐쇄하기 전 3D프린팅 포털에서 확보하고 있던 모델링들을 검토하던 중, 안경환 작가의 개새 시즌1 디자인을 발견함으로서 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게 됩니다.



11st_co_kr_20171213_173255.jpg 안경환 작가가 모델링과 원안을, 서드스테이지가 캐릭터 기획과 제품화를 담당한 시즌1 개새 피규어 ©THIRDSTAGE



세련된 모델링 실력을 갖춘 안경환 작가가 작업한 개새 피규어들은 저희가 만들었던 허접한 개새와는 차원이 달랐는데요. 귀여우면서 디테일한 대표 짤방 4종을 선발한 이 모델링들은 충분히 캐릭터화할 수 있을 만한 완성도와 3D프린팅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만들어지게 되었죠.


안 작가님은 이미 저희의 기존 플랫폼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었고, 해외에서도 3D프린팅 모델러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캐릭터의 기획과 제조 과정에 대하여 수월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당시 상품 - 생산 -수익화 라는 확고한 목표에 몸이 달았던 저희는 연락처를 수소문해 미팅을 잡고, 짤방을 사업화하는 것에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작가님을 설득해 빠르게 상품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실력도 돈도 없던 무명의 청년들 처지에,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사기에 가까웠지만... 서드 스테이지로서는 마지막 동앗줄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붙잡았습니다.




제목 없음-1.png 서드스테이지의 캐릭터 기획과 안경환 작가의 원안으로 작업된 시즌2의 시바새 ©THIRDSTAGE



그렇게 캐릭터로서 이름도 가지고, 설정도 얻으면서 상품으로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개새 시리즈. 1년 뒤 크라우드 펀딩 공개와 커뮤니티의 입소문을 통해 그 존재감을 알리며, 정식 출시 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 어쩌고 하는 3D프린팅 사이트보다는 훨씬 더한 주목을 받았어요. 하지만 제게는 그 때부터 매일이 살얼음판이었죠.


펀딩의 파급력으로 캐릭터는 자체는 소위 '바이럴식' 입소문을 탔지만,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서드스테이지 멤버들은 달랑 3D 시제품 사진만 올려놓고 돈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3D 프린팅만 조금 알았지, 실제 피규어 같은 건 전혀 만들 줄도, 프로세스조차도 몰랐거든요.



무식하면, 생각보다 더욱 용감해집니다.


그때부터 닥치는대로 국내의 조형업체와 관련 전문가를 만나 조언과 도움을 구하고, 못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친구의 사촌까지 찾아가 외주를 맡기기 시작합니다. 그때의 저희들은 피규어를 꼭 중국에서 만들지 않고 국내에서 만들 방법은 손 쉽게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멍청했습니다. 지난 실패를 상기하며 망상을 멈추었기 망정이지, 그 때 했던 고민들을 예전처럼 바로 바로 질렀다면 지금의 모습도 없었겠지요.


약간의 펀딩 금액만 손에 쥔 초보자들은 공장과 브로커 입장에서는 사기치기 딱 좋은 목표물입니다. 실제로도 곳곳에서 덤탱이를 쓰고 실패를 맛 보면서, 생산은 커녕, 프로젝트 시작 후 제가 원하는 수준의 마스터 샘플의 퀄리티를 얻는 데에만 장장 1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후의 양산 과정에서도 더 크고 거대한 문제점들을 만나, 출고 막바지까지 중국 공장에서 공원들과 몸을 부대끼며 세월을 만끽하게 되죠. 그렇게 4종의 동물 피규어를 3천 개 가량 양산하는데 장장 1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요. 그 시간들을 자양분삼아, 일본 타카라토미아츠 사상 최초의 '역수출 캐릭터 캡슐토이'가 될 개새의 첫 시리즈가 발매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한 사람들이 부족한 과정 속에서 목표만 뚜렷이 잡았을 뿐. 그 후에는 초심자들이 구체화부터 생산까지 그냥 쭉 달려나가기 시작했죠.


그래도 지금까지 개새는 저희가 만든 캐릭터가 되었고, 이제는 구글에 검색해도 기존의 짤방보다 먼저 나오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그 '그냥'의 기저에는 기존 실패로부터 벌어진 현실적인 절박함과, 이 캐릭터의 창작자이자 팬으로서 스스로 발굴한 재미와 희망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미니 컬렉션 2번째 시즌의 초기 영업 자료. ©THIRDSTAGE


제품을 구매할 팬들을 이해하고 타겟팅했다면 방향성을 충분히 잡았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검토는 그만하고 달려나가는 것. 그냥 시작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3D프린팅 초짜들이 개새를 만들게 된 시발점. 그 간략한 전말입니다.


개새 한 마리 몰고 가세요♪의 전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 번째 단계에 도착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