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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순 Nov 21. 2023

추우니까 추어탕, 춥지 말라고 추어탕

추어탕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탄 봉사라는 것에 참여해 보았다. 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우연한 기회로 인연이 닿았다. 서울 끝과 끝을 달려 처음 가 보는 낯선 동네를 찾아 가, 모르는 사람들 틈 속에 섞여 연탄을 날랐다. 지게를 매 보는 것도, 연탄을 만져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연탄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한 장에 3.65kg이라고 숫자로 들었을 때와, 막상 내 등짝에 차곡차곡 실렸을 때의 그 무게감은 또 달랐다. 한 번에 4개씩 나르는 것으로 시작해 조금 적응이 되자 6개씩 나를 수 있게 되었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가구에서는 하루 평균 8장의 연탄을 써야 한다고 한다. 이 날 우리 팀은 총 2,000장의 연탄을 배달했고, 250개의 밤에 온기를 전했다.



연탄을 모두 나른 후, 다 같이 식사 겸 근처의 추어탕 집을 찾았다. 미꾸라지를 곱게 갈고 시래기와 들깨가루를 넣어 먹는 전라도식 추어탕을 파는 곳이었다. 접시마다 잘 익은 섞박지와 몇 가지 나물이 곱게 무쳐져 수북이 올려졌고, 노오란 빛깔이 시선을 잡아끄는 강황솥밥이 함께 나왔다.



모락모락 나는 김을 호호 불어 한 수저 크게 떠올려보면, 입에 걸리는 것 없이 걸죽하게 갈아진 미꾸라지와 오래 끓여 흐들흐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시래기가 한 입에 들어온다. 들깻가루 한 숟갈 듬뿍 올려 잘 풀어주니 국물의 점도는 높아지고 고소함은 배가 된다. 원체 간을 장으로 칼칼하게 잘 맞추어 몇 술을 들이켜도 물리지 않고, 중간중간 섞박지로 개운하게 입맛을 잡아주어 가며 들이키면, '어허-' 소리가 연달아난다.


흔히 추어탕은 중년 남성들이 즐겨 먹는 거친 음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해 온유하게 만들어진 한 그릇이 또 있을까. 기름지게 제 몸을 불린 미꾸라지를 곱게 갈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시래기와 함께 푸욱 익혀낸 국물은, 한없이 보드랍다. 영하에 근접한 날씨 급격한 외부 활동으로 뼈마디 속에 숨어든 추위를 쏙쏙 잡아 녹여는 듯 하다.



추어탕과 함께 나와 솥 속에서 예쁘게 뜸 들어있던 노란 밥에서는 아주 은은하게 강황향이 났다. 분명 풍미가 상당히 강한 식재료지만, 묵직한 추어탕 국물 속에서 밥알들을 오롯이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되, 그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절제된 상태였다. 미리 밥을 어느 정도 덜고 뜨거운 물을 부어둔 솥에서는 구수한 숭늉이 우러났다. 여전히 은은한 강황향을 품은 채 허겁지겁 배를 채우느라 입 안 가득 들어찼던 다양한 맛을 정갈히 정돈해 주었다.



워낙 집에서 먼 동네라, 귀가하는 데에도 한세월이 걸렸다. 그렇지만 추위에 한껏 어깨가 움츠러들던 아침과는 분명 달랐다. 서툰 발걸음으로 겨우 전한 몇 안 되는 온기보다도 더 큰 따뜻함을 몸속 그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추어탕을 언제 먹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한 의견은 나름 분분하다. 여름철 원기회복을 위해 필수라는 사람도 있고, 미꾸라지 제철이 가을이니 무조건 가을에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칼바람 부는 한겨울 한 뚝배기 걸죽히 끓여 먹는 그 맛을 그 무엇도 능가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겨울 추어탕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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