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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순 Nov 23. 2023

MZ이긴 한데요...

마라촨 (마라꼬치탕)

MZ세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단어다. 무려 10대 초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를 뭉뚱그려버렸다. 근데 또 실제 사용 맥락에서 이 단어가 쓰일 때에는 대개 '새파랗게 어린 요즘 것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냥 Z세대라고 해도 될 텐데. 아직 구매력 없는 어린 연령층만을 타깃으로 삼기 불안한 마케터들의 교묘한 말장난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

MZ 세대 중 M에 해당하긴 하는데. '새파랗게 어린 요즘 것들'은 아닌 어정쩡한 나이로써, 이 용어가  종종 머쓱할 때가 있다.  딱히 내가 요즘 어린 친구들하고 같이 묶이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으레 관행적으로 MZ세대를 논한다.



마라탕과 탕후루는 MZ세대의 소울푸드라고 한다. 친구들과 모이면 다 같이 마라탕집으로 달려가 한 그릇씩을 비우고 후식으로 탕후루를 먹으며 인생 네 컷을 찍으러 달려가기 바쁘단다. 자극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라는 분석들이 쏟아지지만, 머쓱한 M세대는 이 트렌드도 영 낯설다. 이렇게까지 마라탕이 10대들의 음식으로 주목받기 전에는 잘만 먹었는데 말이다.


분명 마라탕이 싫은 건 아닌데, 맛이 없다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그렇게 열광할 정도인가. 자극적이고 건강에도 안 좋다던데. 괜히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붙여보게 되고 괜히 심드렁해진다.


그러한 M세대 여럿이서 마라를 필두로 하는 중식집을 찾았다. 대학가 후문에 위치해 있는 이곳에서는 각종 재료가 꼬치에 꽂혀 나와 샤부샤부 스타일로 먹을 수 있는 '마라촨'을 팔고 있었다. 버너 위에 올라간 사각진 플레이트에서는 빠알간 육수가 끓고 있고, 한편에는 양고기, 또 한 켠에는 새우, 어묵, 소시지 등이 꽂힌 꼬치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꽃이 핀 듯 풍성한 차림새가 시작부터 마음에 든다.


마라촨. 일명 마라꼬치탕


잠시 팔팔 끓여 고기와 채소들이 익고 국물이 우러나면, 한 국자씩 듬뿍 덜어 개인 앞접시에 나누어 담고, 꼬치도 하나씩 나눠가져 본다. 꿰어진 재료를 하나씩 떼어내 국물까지 한 술 크게 떠먹어보면 적당히 기분 좋은 자극이 입안에 퍼지고, 매콤 찌릿한 맛에 온몸에 온기가 퍼진다. 매운맛에 초반은 아찔하지만 이내 부드러운 구수함이 몰려온다. 추가로 부탁드린 고수까지 올리니 그 찌릿함은 배가 되고, 어느샌가 싹 비워진 앞접시에 두 번째 국자가 바쁘게 오간다.




마라는 저릴 마(痲) 자와 매울 랄(辣) 자가 조합된 이름으로, 말 그대로 혀가 저리게 맵다는 뜻이다. 고추장, 고춧가루와는 또 다르게 입 안을 아릿하게 저리게 만드는 특유의 매운맛에, 한국식으로 구수하게 우려낸 사골의 마일드함이 어우러지며 특유의 밸런스가 잡힌다. 이 탄탄한 국물은 각종 채소부터 가공제품까지 다양한 재료를 든든히 쳐주어, 나는 그중 원하는 것을 골라 먹으면 된다. 포용의 음식이고, 선별의 음식이다. 매운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그리 꺼릴 이유가 없다.

이 날 먹은 마라촨은 낯 가릴 것도 머쓱해할 것도 없이 직관적으로 맛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선 그을 필요가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 MZ고 밀레니얼이고 다 무의미한 그저 마케팅용어인 뿐인 것처럼. 그냥 마라탕은 모두에게 열려있을 뿐이었는데. 일부 미디어의 호들갑에 말려들어 마치 어린 친구들의 전유물처럼 낯 선 척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MZ세대의 당당한 'M' 담당으로써, 마라탕을 좀 더 자주 먹어야겠다. 트렌드에 대한 분석도 해석도, 그리고 이해도  필요 없다.

그냥.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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