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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순 Nov 25. 2023

홈메이드 크렘브륄레 도전기

크렘브륄레


파리 출장은 근 한 달은 다녀온 남편이 크렘브륄레에 푹 빠져왔다. 파리에서 온갖 맛집 다 갔다 왔는데, 역시 음식은 한국 음식이 최고지만 프랑스 크렘브륄레 하나는 먹어줄 만했다나 뭐라나.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뿌리고 토치로 그을려 사탕 처럼 깨 먹는 이 디저트 하나는 확실히 남달랐단다.


집에서는 못 만드냐 중얼중얼 대길래, 재료랑 도구 사 오면 해주겠다고 대충 큰 소리를 쳐놓고는 잊고 있었는데, 이런. 그로부터 며칠간 바닐라 빈에 생크림, 토치까지 온갖 택배가 하나씩 집에 도착하길 시착했다. 그 와중에 뭘 얼마나 먹으려고 라메킨 그릇은 이렇게 큰 걸 샀는지. 사약 그릇 마냥 넓적한 대접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리하여 크렘브륄레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신선한 계란을 노른자만 두 개 풀고, 설탕을 넣어 잘 섞어준다. 생크림에는 바닐라빈 파우더를 넣고 약불에 데워 바닐라 향을 입혀주어야 한다. 뭉근히 데운 생크림을 계란 노른자와 합쳐 섞어주면 되는데, 만일 생크림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섞을 때 노른자가 익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온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번에 나누어 생크림을 넣어 잘 섞어주면 사실상 거의 80%의 공정을 완료한 셈이다. 체에 잘 걸러 라메킨 용기에 담아주고, 미리 예열한 오븐으로 투입. 그냥 굽는 것이 아니라 중탕 형식으로 쪄지도록 밑에 뜨거운 물을 밭쳐주면 된다. 그렇게 10분 남짓 굽고 나서 잘 식혀진 커스터드 위에 황설탕 솔솔 뿌리고 토치로 그을려주면 완성.



남편에게 부탄가스를 통째로 끼우는 토치는 왠지 좀 겁이 난다고 했더니 거의 라이터처럼 작은 미니 토치를 사 온 덕에 , 우리의 한 대접 크렘브륄레 위 설탕을 모두 녹이는 데는 한 세월이 걸렸다. 다 큰 성인 두 명이 그릇에 빠져들어갈 기세로 코를 박고 한참을 설탕을 녹이는 섬세한 작업에 한참을 집중했다. 팔 아플세라 서로 교대를 해가며 그렇게 십여분을 꼬박 매달려있다 보니, 어느새 그럴듯한 크렘 브륄레가 완성이 됐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스푼으로 톡톡 두드려보니, 제법 파는 크렘브륄레 같은 소리가 났다. 그대로 한 입 먹어보니 적당히 달고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에, 불에 그을려 캐러멜라이즈 된 설탕이 파사삭 부서지며 쌉싸름한 단 맛까지 어우러져 맛이 있다. 설탕을 꽤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디저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너무 안 달고 맛있다'라는 평을 감히 해줄 만하다. 이게 정말 집에서 되는 거였다니, 생각보다 성공스러운 첫 번째 시도작 앞에서 괜히 웃음이 난다. 아까 토치로 설탕을 녹일 때만 해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나름 그럴 듯한 무언가가 완성되니 꽤 뿌듯한 마음에 그릇 구석까지 달그락달그락 긁어가며 한 입씩 나누어 먹었다.




어쩌면 결혼 생활이란 이런 순간들의 연속인 듯하다. 나 혼자였으면 굳이 안 했을 일, 굳이 경험해 볼 생각조차 안 해 봤을 일을 정신 차리면 얼떨결에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별 대수로운 것은 아닌데 함께 이마를 맞대고 한창을 열중해 있다 보면, 대개 그 끝에는 소소한 행복이 맺혀있다. 디저트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은 내가 집에서 크렘 브륄레 위 설탕을 이렇게 열심히나 녹이고 있을 줄이야. 낯설지만 그 생경함이 싫지 않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크렘브륄레 위 설탕처럼이나 달콤한다.


내일 우리는 두 번째 크렘브륄레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초코우유를 살짝 넣는 방향으로 어레인지를 해볼까 한다. 부디 이번 크렘브륄레도 아주 달콤하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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