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뉴질랜드의 11월은 봄입니다. 한국의 5월과 비슷합니다. 이 글은 제가 속한 등산 모임 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無言歌) 중 ‘봄의 노래’
멘델스존의 피아노곡 중에 무언가(無言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일어로 Lieder ohne Worte라고 명명한 이 곡 모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작곡가의 마음이 음표(音標)로 묘사된 곡입니다.
대략 1830년부터 쓰기 시작해 평생에 걸쳐 완성된 무언가 모음은 낭만주의 피아노 소품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복잡하고 거창한 음악적 형식을 떠나 순간순간의 감흥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모두 49곡이며 8집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의 하나가 6집에 들어 있는 ‘봄의 노래’입니다.
올해 뉴질랜드에는 봄이 오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델타 코로나의 발발로 시작된 록다운이 석 달이나 계속되면서도 확진자의 수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런 데다 날씨까지 궂어서 하루가 멀다고 비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대서 사람들의 가슴을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 소식은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입 밖으로 내기를 주저했지만 누구나의 가슴 속엔 조금씩 체념이 쌓여가는 11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환란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공원에 산책길 모퉁이에 집집의 정원에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꽃들은 말없이 색깔과 몸짓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맑아지기 시작한 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바람도 따뜻한 미풍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귓가로 내려앉으며 봄을 속삭였습니다.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 살았다는 멘델스존이지만 그의 삶에도 남모르는 어려움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멘델스존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뇌와 감정을 ‘말이 없는 노래’로 묘사하고 싶어 무언가(無言歌)를 작곡했을 것입니다. 49곡의 무언가 하나하나가 모두 명곡이지만 어느 사이에 끝나가는 11월에 여러분께 듣기를 권하는 곡은 ‘봄의 노래’입니다.
이 곡은 햇살이 잘 드는 오후의 창가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유쾌하고 밝은 느낌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지난 시절 행복했던 꿈속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땐 구태여 꿈에서 깨어나려 하지 마시고 선율 따라 마음껏 말이 없는 ‘봄의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셀리(P B Shelley)의 유명한 시 ‘서풍(西風)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절은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입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많은 사람이 이 구절에 힘입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코로나의 늪이 아무리 깊어도 솟아날 구멍이 곧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달엔 멘델스존이 말없이 전하는 ‘봄의 노래’를 들으시며 힘내시기 바랍니다.
권하고 싶은 연주는 Walter Gieseking이 연주한 무언가(無言歌)입니다. CD나 L/P로 들으면 좋을 것입니다. 또한 유튜브에서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연주한 피아노나 바이올린으로 들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