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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뒤돌아 보고 앞을 바라보고

by 석운 김동찬

한 해를 보내며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이제 며칠 있으면 한 해가 지나간다. 나이 든 뒤로 항시 느끼는 것이지만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불과 며칠 전에 새해를 맞았던 것 같은데 새해를 맞으며 올해엔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한 해가 다 가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것이 너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또 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할 때에 참으로 인생의 보잘것없음을 다시 느끼며 가슴이 허허로워진다. 앞으로 과연 몇 해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해놓은 일도 없이 세월만 가버린다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살 이유가 어디 있는지 커다란 의문표로 떠오르며 가슴속이 먹먹해진다.


일상의 내 삶을 돌아본다. 책 보기, 음악 듣기, 가끔씩 저녁에 영화보기, 화요일에 음악회 하기, 목요일에 골프 치기, 토요일에 산에 가기, 주일날 교회 가기. 이렇게 단조롭고 지나치도록 평안한 매일을 보내다가 너무 심심하면 일 년에 몇 번씩 길고 짧은 여행 가기.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라고 생각할 때 자꾸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그냥 사는 것이지 결코 잘 사는 것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게 된다. 잘 사는 것은 결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더욱 세차게 흔들게 된다. 무언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가슴속에서 내게 속삭인다. 나도 알고 있노라고 그 속삭임에게 대꾸한다. 나도 안다고, 그런데 과연 그 어떤 일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인지 그걸 좀 알려달라고 다시 그 속삭임의 주인공에게 물어본다.


사실 이제까지의 나의 삶은 그 보람 있는 일을 찾기 위한 긴 긴 방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꽤나 젊어서부터 시작된 그 방황의 끝이 언제일지 나도 모른다. 언제나 그 보람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고 무지개를 잡으려는 소년처럼 무엇인가를 찾은 것 같아 달려가 보면 빈 주먹에 허허로운 가슴만 쓸어내리기 일쑤였다. 이제는 그 무엇이라도 잡아야 한다고 초초해질수록 그 무언가는 잡히지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젊어서 한때는 그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또 한때는 아름다움이 진리라고 생각해서 아름다움을 찾아 방황한 적도 있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결국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빠져든 것이 음악이었기에 꽤나 오랫동안 음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었지만 결국 소리는 소리일 따름 진리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나이 들어서는 믿음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했다. 보이는 신은 역시 신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 속으로 꽤나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고 지금도 그 속에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그 신의 존재에 내가 생각하는 신의 존재와 실제의 신의 존재 사이-아니면 교회에서 말하는 신과 실제의 신의 사이-에 너무도 큰 간극이 있지 않나 싶어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그리고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할 명제가 아닌가 한다.


오늘 오후 늦게 투명하도록 밝던 햇살이 서서히 마당을 빠져나가고 나무 그림자가 대신 뜨락을 덮쳐 오기 시작할 때 나는 햇살 따라 집을 나와 아직도 햇살이 눈부시도록 물결 위를 춤추고 있는 집 앞 바닷가로 나갔다. 바람이 살랑이고 있었고 그 바람 따라 스스로를 희롱하듯 물결이 모랫바닥 위를 살랑이고 있었다. 바다 건너 저 편 스카이 타워와 그곳 도심으로부터 이쪽 바다 위를 넉넉한 품새로 덮고 있는 뭉게구름들을 바라보다 나는 바닷가에 놓여있는 벤치 위에 앉았다.


아무것도 생각 않고 그냥 텅 빈 마음으로 앞만 쳐다보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간질이고 잔잔한 물결은 끝도 없이 들어왔다 나가고 하늘 위론 부드러운 구름들이 떠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츰 온몸을 휩싸는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졌고 언제 몰려왔는지 허공은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리고 아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 건너 도심 건물들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잔잔한 바다 위엔 져가는 햇살의 마지막 잔재가 물결 따라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바닷가엔 여전히 잔물결이 살며시 드나들며 찰랑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찰랑이는 물결 속에서 그리고 그 물결 위에 일렁이는 마지막 햇살들의 움직임 속에서 무언가 지나간 내 삶의 일부를 보았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살아야 할 내 삶의 일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사위는 차츰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은 계속 살랑거리고 있었고 바닷가의 물결은 계속 드나들고 있었다. 그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고 무언가를 애써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느낌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도 깨달음도 없었다. 으흠, 하고 한숨까지 쉬면서 애꿎은 물결만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예이츠(Yeats)의 시가 생각나서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W.B. Yeats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들 잉잉대는 숲 속에 홀로 살으리.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또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리 우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한밤중에는 등불 깜박이고, 대낮은 자줏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에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의 잔물결 소리 듣고 있으니
한길이나 잿빛 포도에 서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소리 듣네.


학창 시절 즐겨 흥얼거렸던 예이츠의 이 시를 이제는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히 두 번째 연의 ‘얼마쯤의 평화’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왔다. 모든 것을 다 놓고 이니스프리 작은 섬으로 가서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시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온전한 평화’가 아니고 ‘얼마쯤의 평화’였다. 그렇구나 온전한 평화는 없구나. 다만 얼마쯤의 아니면 언제까지나 미완성의 평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시인이 가고 싶었던 이니스프리는 결국 환상의 섬일 뿐이었고 우리 범인들은 우리 삶 속에 군데군데 둥둥 떠 있는 이니스프리를 때때로 쳐다보며 또는 밟으며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며 살다 보면 누가 알리 어느 때가 되면 온전한 평화에 도달해 있을지…….


이 글을 쓰는 이 저녁 내 가슴속에서도 그 옛날 예이츠의 가슴 깊은 곳에 들렸던 잔물결 소리가 들리고 있다.


2016.12.26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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