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을 방문하고
지난 가을 한국 방문 중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녀본 지방 도시 모두가 아름답고 특색이 있어서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통영인 것 같다. 십여 년 전에 갔다가 이번에 다시 들린 통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백 개가 넘는 섬들이 있다는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은 푸른 바닷물을 헤집고 나와 세상 구경을 하다 그대로 주저앉은 양 제각기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며 바다에 떠있었다.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은 통영이었기에 4박 5일의 여행기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로 제법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통영에 오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수긍이 갈 정도로 가는 곳마다 아름다웠고 또 만나는 사람들의 성정도 넉넉하게 여유가 있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나 이번 통영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박 경리 기념관이었다.
박 경리 기념관은 선생의 묘소가 있는 산양읍 양지농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이층 건물이었다. 건물 주변에는 선생께서 생전에 즐겼던 채소 가꾸기를 살리기 위한 채마밭이 있었고 정원에는 선생의 동상이 서있었다. 기념관 1층에는 사무실과 다목적실이 있었고 2층에는 유품전시실이 있었는데 모두가 선생의 평소 취향을 존중해 소박하고 단순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유품전시실에는 대표작 ‘토지’의 친필 원고를 비롯해서 유품이 있었고 선생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편지 등의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선생의 작품들과 삶에 대해서 웬만큼 알고 있었지만 선생의 연보를 들여다보다 선생의 최종학력이 1945년에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나는 가슴속으로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고등학교만을 졸업한 학력으로도 오직 종이와 펜의 힘으로 그 많은 작품들을 써내고 노년에는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명예문학박사 학위도 받으며 우리 문학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선생의 삶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이 사셨던 삶의 환경에 비하면 내가 살아온 환경은 여러 면에서 훨씬 좋았건만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자괴감에 가슴이 답답해왔다.
부끄러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관람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다시 한번 나를 탄식하게 만든 것은 출구의 작은 진열대 위에 놓여 있던 선생의 책들 중에서 내 눈에 뜨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제목의 선생의 유고 시집이었다. 제 목부터가 신선하였지만 선생이 소설만 쓰시는 줄 알았지 시를 쓰셨다는 것은 몰랐기에 책을 집어 앞뒤를 살펴보다가 뒤표지에 실려있는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의 마지막 두 줄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고서는 그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얼른 책을 산 뒤 반대편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시집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시인이 아닌 소설가가 쓴 시이기에 거개의 시가 이야기 체의 시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았다. 선생이 돌아가신 뒤 따님이 선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묶은 유고 시집이었다. <옛날의 그 집>은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였다. 나는 이 시의 전문을 읽고 또 읽었다. 시 전체에 흐르는 선생의 차분하고 넉넉한 마음이 가을비처럼 서서히 내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옛날의 그 집’을 다시 읽었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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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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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통영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였다. 그는 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꼭 만나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알았다고 했다. 나도 너무 반가워서 곧장 약속을 정하고 부부가같이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친구와의 만남은 지나간 세월과 상관없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친구 부부의 얼굴에서는 시종 여유로움이 묻어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친구 부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춘천에 가서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시골에서의 생활이 너무 좋아 더 일찍 내려갔으면 할 때가 많다고도 했다. 그날은 우리 부부를 만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일부러 올라온 것이라고 했다.‘저런, 그런 줄도 모르고, 정말 고맙네. 그런데 나이 들어서 그렇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결단을 내렸나?’라고 내가 묻자 친구는 ‘어, 나이 들었으니 정리했지. 정리하고 났더니 그렇게도 편해. 버릴 것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겼더니 그것들이 정말 내 것이 되더라고. 전에는 짐에 눌려 살았는데 요샌가진 걸 누리고 사는 기분이야,’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박경리의 시 구절을 떠올렸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렇구나 편안하고 홀가분한 것은 시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가능하구나 하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부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친구는 결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있는 것을 정리하여 몸집을 줄이고 대인관계에서도 거품을 빼고 사니까 오히려 여유가 생겨 하루하루의 삶이 기쁘다고 했다. 젊었을 때에는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도 항시 무언가에 눌려 사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나이 들어서는 하루하루의 삶을 누리고 사는 기분이라면서 왜 젊었을 때에는 그걸 몰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박경리 시집의 첫 시 ‘산다는 것’의 마지막 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렇다. 젊은 날에는 오히려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산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너무 많기에 오히려 볼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나이 들어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면 쫓아다니던 그 많은 것들이 부질없기만 하고 오히려 가버린 아름다웠던 청춘만이 아쉽다. 그리고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기에 박경리 선생은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는 ‘버릴 것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겼더니 그것들이 정말 내 것이 되고 전에는 짐에 눌려 살았는데 요샌 가진 걸 누리고 산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대개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리하기도 힘들어하고 버리기는 더더욱 힘들어한다. 그리고 엄청 바쁘게 산다. ‘왜 그렇게 바쁘세요?’하고 물으면 ‘아이고, 관리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녜요.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또 애들한테 물려주려면 좀 더 키워서 줘야 되잖아요,’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가진 것을 누리고 살기보다는 가진 것에 눌리고 사는 사람들 같다. 많은 것을 가지지는 않았었지만 그것마저도 훌훌 정리하고 산다는 내 친구 부부는 있는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박경리 선생 같은 분은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누리고 사신 분이었다. 그렇기에 옛날의 그 집에서 혼자 사시며 ‘버리고 갈 것’만과 더불어 사시며 그 많은 작품들을 남기실 수 있었을 것이다.
누리고 사는 것과 눌리고 사는 것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말장난 같지만 ‘누리고’에 ‘ㄹ’이 하나 더 붙으면 ‘눌리고’가 된다. 또 ‘눌리고’에서 큰 맘먹고 ‘ㄹ’ 하나만 버려버리면 ‘누리고’가 된다. 이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때이다. 과연 나의 삶은 누리고 사는 삶인가 아니면 눌리고 사는 삶인가 살펴보자. 혹시라도 나의 삶이 눌리고 사는 삶으로 느껴지면 ‘ㄹ’ 하나만 빼자. 그 ‘ㄹ’은 돈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도 버리지 못한 젊은 시절의 욕심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방법은 한 가지이다. 그것이 물질이든 아니면 욕심이든 내가 가진 것에서 ‘ㄹ’ 하나만 빼자.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누리고 살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몰래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독백할 수 있을 것이다.
누리고 살 것인가 아니면 눌리고 살 것인가, 선택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또 한 해를 보내며 2018년 12월에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