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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Dec 29. 2023

모에라키 보울더(Moeraki Boulders)

바위 앞의 내가 너무 초라스럽다

모에라키 보울더(Moeraki Boulders)


올해가 칠순이란다. 딸들로부터 ‘아빠 칠순에 뭐 해드려요,’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며칠 전 아내가 내게 말했을 때 나는 그냥 할 말이   없었다. “칠순은 무슨 칠순,” 하며 말을 끊었지만 나는 조금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십 년 전에 환갑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벌써 그렇게 됐나 하고 그런대로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이번에 칠순이란 말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맘도 없었고 아직은 아니다는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그날 저녁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칠순 여행을 어디로 갈까 하고 부인이랑 의논하다 뉴질랜드 남섬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그 친구는 나와 생년월일에서 생년월까지 같은 친구였다. 2년 전에 이곳에 부인과 같이 와서 오클랜드를 비롯한 북섬 몇몇 곳을  우리 부부와 같이 돌아다녔다. 그때 뉴질랜드가 너무 좋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와서 남섬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 일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칠순 운운해서 나도 조금은 싱숭생숭하던 참에 온 친구의 전화는 아주 때맞은 전화였다. 그날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의기투합이 되었고 같이 남섬으로 칠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에 친구 부부가 한국으로부터 날아왔고 오클랜드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 뒤 우리는 짐을 꾸려 남섬으로 떠났다.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뉴질랜드 남섬 제일의 도시)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갔고 공항에서 곧장 차를 빌려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박 3일을 하며 지진에 처참하게 무너진 한때 아름다웠던 정원의 도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펴보고 난 뒤 남쪽으로 차를 몰아 테카포(Tekapo) 호숫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은 마운트 쿡(Mt. Cook)에서 하룻밤을 자며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생각해보니 어언 십 년 만에 남섬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고 몸은 늙었지만 남섬은 여전히 너무도 아름답고 신선했다. 친구 부부는 가는 곳 보는 광경마다에서 감탄을 하다 하다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마운트 쿡을 떠나 더니든(Dunedin)으로 가는 길에 들린 곳이 모에라키(Moeraki)였다. 해변의 작은 마을인 이곳이 유명한 것은 바로 바닷가에 산재한 신비한 공 모양의 바위들의 무리 때문이다. 흔히 모에라키 보울더(Moeraki Boulders)라고 불리는 이 바위들은 커다란 공 모양의 암석들인데 지질학자들은 약 6,500만 년 전부터 칼슘과 탄산 화물이 자연적으로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방해석(方解石) 결정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단한 결정체가 또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 침식 작용에 의하여 둥근돌 모양도 되고 또 파도와 비바람에 의하여 겉모습이 거북이 등껍질 모양으로 갈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모에라키의 이 바위들에 대한 정보를 들었고 또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썰물 때여야  한다고 해서 시간에 맞추어 모에라키의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변 입구에 있는 카페를 지난 바닷가로 내려섰을 때의 그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아직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바닷가 모래사장 위로 수 백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원형 바위들이 무리 지어서 혹은 혼자 떨어져 흩어져 있는 모습은 그대로 자연의 신비였다. 원주민 마오리들이 공룡의 알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바위와 바다를 배경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아내와 친구의 부인도 적당한 장소를 골라 포즈를 취했고 친구가 사진을 찍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둘러보며 또 그 가지각색의 모습 앞에 압도되어 나는 한참씩이나 이 바위 저 바위 앞에 서서 바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 바위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너, 칠순이라고? 칠순 여행한다며. 난 여기서 몇 천만년을 살았어. 그래도 무슨 기념 여행한 적이 없어. 세월은 내게 의미가 없어. 그냥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야.’ 어느새 바위의 속삭임이 가슴속 깊은 곳을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까닭 모를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쌌다. 겨우 칠십 년의 삶을 살고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냥 부끄러웠다. 


“이 사람, 그만 가세. 갈 길이 멀지 않나!”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불렀다. “어, 그러세, 그만 가야지,” 하고 친구 있는 쪽으로 가면서도 나는 몇 번이고 이 바위 저 바위를 돌아보았다. 안개가 완전히 걷힌 남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바위 저편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저녁 숙소에 들어가 자기 전에 시(詩)를 한 편 만들어 보았다.  


바위


바위를 본다

한참을 보다 보면

석회질이 보인다

칼슘도 보인다

내 등뼈가 보인다 그리고 사람도 보인다


바위를 본다


한참을 보다 보면

바위의 숨결이 느껴진다

내쉬는 숨결에 

태초부터의 역사가 묻어 나온다

그 앞의 내가 너무 초라스럽다


바위야

너의 생김새가 어떻건

내게 보이는 건 너의 속살 

느껴지는 너의 숨결

너를 보다 너를 보다 

태초의 자궁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덧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평안하다

바위야 네 석회질이

내 등뼈를 받쳐주고

나는 몸을 동그려 태아가 된다

그리고 네가 말해주는 역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억겁을 살아온 네 생명이 안에 있건만

오늘도 네 겉모습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


바위야 

이제 겨우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네 앞을 지날 때 너는 무엇을 보니


네 앞에 선 내 등뼈가 오늘 유난히 시리다


2017년 4월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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