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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Apr 11. 2024

노우 트런들러(No Trundler)

우린 모두 방문객

노우 트런들러(No Trundler)


그 전날까지 이틀 동안 비가 제법 내리더니 그날 오후엔 햇볕이 꽤나 밝았다. 오후 3시 좀 지났을 때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걸으러 나갑시다.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좋으니까 좀 멀리까지 갔다 옵시다." 이틀이나 아무런 운동을 못 하고 집안에만 있었더니 몸이 굳어진 느낌이었다. "혹시 골프장 안 열었을까요, 이렇게 날이 좋은데요?"하고 아내가 내게 물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오후에 아내와 같이 걷든지 아니면 나인 홀 골프(정규 골프는 18홀 경기지만 그 반인 9홀만 하는 약식 골프)를 해왔었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 걷기이지만 매일 걷기만 하면 좀 지루하기도 하기에 일주일에 이삼일은 집 근처 골프장에서 나인 홀 골프를 했다.

 

다행히 아내도 젊었을 때 골프를 배워놓았기에 노년에 부부가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한국 같으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골프장이 있고 연회비도 그리 비싸지 않기에 마음만 먹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운동이 골프이다. 더구나 부부끼리 골프를 하면 일부러 팀을 짜야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또 오후에 나인 홀만 하는 데엔 골프장 예약도 거의 필요 없기에 너무 편하다. 


"글쎄, 어제까지 비가 와서 문을 열었을까?"하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전화 한번 해보세요, 안 열었으면 걷고요,"라고 아내가 대답했다. 틀림없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아내 말대로 골프장에 전화해보았다. 그랬더니 골프장의 자동응답기 전화가 ‘골프장은 열었습니다. 하지만 트런들러(Trundler: 골프 백을 싣고 다니는 바퀴 달린 개인용 운반 기구) 사용은 안 됩니다,’라고 알려줬다. "여보, 열긴 열었는데 트런들러는 사용할 수 없다는 데,"하고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골프를 쳐요?"하고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어, 땅이 지니까 잔디 보호하려고 그럴 거요. 골프 백을 메고 치라는 말인데 우린 그럴 수는 없으니 만일 치려면 골프채 몇 개만 골라서 들고 다니며 칠 수는 있겠지. 그렇게 해볼 맘 있수?"하고 내가 물었더니 아내가 의외로 "그것도 색다른 경험이겠네요. 한 번 해봐요. 하다 안되면 그냥 걸으면 되지요, 뭐,"라고 해서 우린 곧장 골프장으로 갔다.


5개의 골프채로 치는 골프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골프장에 도착하니 문은 열려있었고 입구 양쪽에 노우 트런들러(No Trundler)라고 크게 팻말이 붙어있었다. 주차장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몇 대의 차가 서 있었다. ‘자, 기왕 왔으니 한번 쳐봅시다. 하지만 채를 많이 갖고 다닐 수는 없으니 최소한으로 갖고 다닙시다,’라고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린 서로 각기 퍼터(putter) 포함해서 5개 정도만 갖고 다니며 치기로 했다. 나는 드라이버와 4번 우드(wood) 그리고 7번 아이언(iron)과 샌드웨지(sand wedge)와 퍼터(putter)를 챙겼다. 아내는 4번 우드 대신 3번 우드를 그리고 샌드웨지 대신 피칭 웨지(pitching wedge)를 골라 들었다.


"땅은 좀 질겠지만 오늘 골프장 전세 낸 것 같은데요,"하고 아내가 1번 티 그라운드(teeing ground)에 올라서서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아내의 말대로 골프장이 텅 비어있었다. 아주 멀리에 골프 백을 메고 가는 몇 사람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렇네. 자, 쳐요. 땅이 질어서 공이 박히기 쉬우니까 서로 공을 잘 봐주도록 하고,"라고 내가 말했다. 아내가 먼저 공을 쳤고 이어서 내가 쳤다. 그리고 친 공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코스(course)는 꽤나 질었지만 그런대로 조심해서 칠만했고 공을 칠 때마다 바닥에다 조심스럽게 채를 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어야만 했다. 1번 홀의 그린에서 퍼팅을 끝내며 아내가 말했다. "와, 그래도 저 보기(bogey: 기준 타수보다 한 타 더친 것) 했어요." "어, 대단하네. 나도 보기 했는데,"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몇 개의 채만 가지고 보기라도 한 것이 꽤 대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우린 다시 2번 홀 티 그라운드로 갔다. 2번 홀은 1번보다 거리도 길고 페어웨이(fairway)도 좁아서 치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또 꼭 필요할 때 사용할 알맞은 채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결국 두 사람 다 2번 홀에서는 더블 보기(기준 타수보다 2차를 더 친 것)를 범했다. 그러나 3번 홀에서부터는 5개의 채를 그런대로 잘 활용하는 요령을 터득해서 조금씩 더 잘 칠 수 있었다. 거리가 짧을 때는 긴 채를 짧게 잡았고 거리가 길 때는 아이언 대신 우드를 적절히 사용해서 거리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고는 둘이 허리를 잡고 웃기도 했다. 높이 떴다가 떨어진 공이 러프(rough: 페어웨이 양옆의 풀이 긴 지역)에 박혀서 공을 찾느라고 한참을 애를 먹기도 하고 잔디가 미끄러워 넘어질 뻔하기도 하며 그럭저럭 8번 홀까지 마치고 9번 홀 티 그라운드에 올랐을 때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재미있네요. 채 5개 가지고 골프를 하기는 생전 처음인데도 또 그런대로 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너무 많이 갖고 사는 우리의 삶


나도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보통 때 골프를 칠 때는 우리는 골프 백에 13개 내지 14개의 채를 갖고 다닌다. 최대 14개까지가 규정이지만 어떤 사람은 슬며시 한두 개의 채를 더 갖고 다니기도 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더 잘 치기 위해서이다. 새로운 채가 나오거나 퍼팅이 잘 되는 퍼터가 있다면 가격이 어떻든 반드시 채를 교체해야 직성이 풀리는 골퍼들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 내가 5개의 채를 가지고 8번 홀을 마칠 때까지 친 결과가 어떤가 하고 돌아보다가 내심 놀랐다. 평소와 거의 비슷하게 쳤기 때문이었다. 피칭으로 쳐야 할 때 샌드를 가지고 지나치게 힘을 쓰다가 실수를 한 것하고 5번 아이언을 잡아야 할 곳에서 4번 우드를 짧게 잡고 치다가 그린을 넘겨 한 타를 손해 본 것을 제하면 평소의 점수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만약에 다음번에 또 ‘노우 트런들러’로 쳐야 할 경우에는 채 한두 개만 더 갖고 치면 전혀 불편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번 홀 페어웨이를 같이 걸으며 아내에게 방금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도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뭐 그렇게 무겁고 힘들게 많이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요. 그리고 골프채뿐만 아니라 우린 살아가면서 너무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갖고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무 모자라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처럼 5개의 채만을 갖고 골프를 하자면 확실히 불편하다. 5개에다 꼭 필요한 채 한두 개 정도만 더 있으면 몸도 가볍고 불편할 것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보통 때 갖고 다니는 14개의 채의 반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아마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추려서 반만 남겨도 생활하는데 거의 불편이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몸도 홀가분하고 보관이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훨씬 더 삶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추리고 남는 그 반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9번 홀을 마쳤을 때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어느 여행자와 랍비의 일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행자와 랍비의 일화


오래전, 한 미국의 여행자가 유명한 폴란드의 랍비(스승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페츠 카임(Hofetz Chaim)을 방문했다. 책들과 탁자 하나와 긴 의자 하나가 있는 간소한 방 하나가 랍비의 집이라는 것을 보고 놀라서 여행자가 물었다.


"랍비여,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 가구는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랍비가 되물었다.

"제 가구라니요?"하고 당혹한 미국인이 물었다. "전 여기 방문객입니다. 그냥 들렀다 갈 뿐인데요."

"저도 그런데요, "하고 호페츠 카임이 말했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 모두가 방문객이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 우리 각자가 들렀다 갈 뿐인데 우린 마치 영원히 이 삶 속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이 살아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욕심이 결국은 나를 사로잡고 스스로 자초한 무거운 짐이 나의 삶과 영혼을 짓눌러버린다. 어딘가로 떠나야만 여행자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라는 길 위의 여행자이며 살아가면서 이곳저곳을 방문한다. 방문하는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폴란드의 랍비처럼 ‘저도 그런데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비 온 뒤에 들린 골프장에서 노우 트런들러(No Trundler)로 골프를 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5개의 채로도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앞으로 골프 여행을 갈 때는 채를 다 갖고 가지 말고 반만 갖고 가도 충분할 것이라는 지혜도 터득했다. 그러나 이날 노우 트런들러의 골프로부터 배운 값진 교훈은 무엇보다도 폴란드의 랍비가 말한 ‘저도 그런데요,’였다.


차를 몰고 골프장을 나오면서 나는 옆에 있는 아내에게 머리를 숙이며 "저도 그런데요,"라고 했다. 느닷없는 나의 말에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내가 폴란드 랍비의 이야기를 해주자 아내가 활짝 웃으며 "저도 그런데요,"라고 말해서 우린 다시 한번 같이 크게 웃었다. 노우 트런들러(No Trundler) 덕분에 색다른 골프도 치고 유익한 교훈도 얻은 그날 오후였다.


2018. 7.7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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