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삶의 절반'과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삶의 절반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
노오란 배(梨)와 더불어
야생의 장미 가득 매달린 땅이
호수 속에 깃들어 있네,
그대들 사랑스런 백조들이여,
입맞춤에 취하여
머리를 담그는구나
신성하고 냉정한 물속으로.
슬프다, 겨울이 오면, 나는
어디서 꽃을 얻어야 할까, 그리고 어디서
햇빛과
대지의 그늘을?
성벽(城壁)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계만 덜거덕거린다.
Hälfte des Lebens
Friedrich Hölderlin
Mit gelben Birnen hänget
Und voll mit wilden Rosen
Das Land in den See,
Ihr holden Schwäne,
Und trunken von Küssen
Tunkt ihr das Haupt
Ins heilignüchterne Wasser.
Weh mir, wo nehm’ ich, wenn
Es Winter ist, die Blumen, und wo
Den Sonnenschein,
Und Schatten der Erde?
Die Mauern stehn
Sprachlos und kalt, im Winde
Klirren die Fahnen.
시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뇌로 평생 몸부림치며 ‘이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고 그의 시 ‘빵과 포도주’에서 물었던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1770년 독일 남부의 라우펜에서 태어났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시인 중의 시인’이라고 찬탄했을 정도로 그는 평생 시인의 직분과 사명에 대해 절박하게 고민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독일은 근대화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근대화가 되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신(神)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신성(神性)을 일깨워주고 그 옛날 신과 인간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그리스 시대와 같은 시대의 회복을 시를 통해 일깨우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1803년 그가 33살, 즉 그의 삶의 절반 정도에 이르렀을 때 쓴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깐 그의 삶과 사랑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횔덜린이 이 시를 쓰게 된 직접적 동기는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고결한 여인 주제테 부인의 죽음이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횔덜린이 디오티마(Diotima)라고 불렀던 이 여인은 그가 가정교사로 들어갔던 집의 안주인이었습니다. 착한 성품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췄던 그녀에게서 그는 그가 꿈꾸던 그리스적인 아름다움과 이상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가정교사 자리에서 쫓겨난 횔덜린은 경제적 고난과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이란 심적 고통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을 썼지만 정신착란증이 시작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그러다가 1802년에 주제테 부인이 질병으로 사망하자 횔덜린의 정신착란증은 차츰 더 심해졌고 그 후 몇 년 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다행히 그의 작품과 그를 아끼는 착한 후견인을 만나 횔덜린은 삶의 후반 36년을 그의 집에 머물며 글을 쓰다가 1843년에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연(聯)으로 된 이 시의 첫 연과 둘째 연은 지극히 대조적입니다. 자연의 풍요로운 조화 속에 있는 여름 풍경을 묘사한 첫 연은 시인이 디오티마(Diotima)와 사랑에 빠져 있었던 시간을 묘사합니다. 입맞춤에 취하여 머리를 담그는 백조들은 바로 두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그 위에 떠 있으며 머리를 담그는 사랑이란 물은 신성하고도 맑은 것이었습니다. 시어(詩語)로 쓰인 원문의 ‘Heilignüchterne’는 ‘신성한’을 뜻하는 "heilig"와 "냉정한, 분별 있는"을 뜻하는 "nüchtern"이란 두 개의 대립하는 개념을 하나로 묶어 만든 단어이기에 ‘신성하고 냉정한 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시인은 이 단어를 만들어 씀으로 그들의 사랑이 세상이 생각하는 가정교사와 안주인의 흔한 밀회가 아니라 ‘신성하며 이성적인’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름은 길지 않고 겨울이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저세상으로 가버린 두 번째 연에는 이미 겨울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싫어 시인은 현재 시제를 씁니다. 슬프다(Weh), 겨울이(Winter), 오면(wenn), 어디서(wo)의 ‘W’로 계속되는 질문은 이미 따뜻한 삶과 즐거움이 결핍된 시인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불과 얼마 전 행복했던 호수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지만 눈앞의 현실은 차갑게 서 있는 성벽과 덜걱거리는 풍향계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떠나 이 시를 바라보면 이 시에는 또한 삶의 양면성과 덧없음이 깊이 묘사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으로 이 시를 볼 수 있는 근거는 시인의 삶의 절반이 정신착란증으로 인해 인생의 겨울과 같은 절망과 고독 속에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문학과 철학을 탐구하며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까지의 풍경은 생명의 충만함과 아름다움을 그려낸 첫 연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착란이 오면서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고 꽃과 햇빛은 찾을 길이 없는 유폐된 삶 속에서 남은 삶을 외롭게 살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 절망과 고독의 정신적 상황을 묘사한 것이 두 번째 연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이 시는 비록 두 연의 짧은 시이지만 사랑의 슬픔과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깊이 성찰한 작품으로 하이데거가 왜 횔덜린을 ‘시인 중의 시인’이라고 칭찬하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계절의 여름은 몇 번이고 다시 오지만 우리 인생의 여름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엄정한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횔덜린은 삶과 사랑의 비애를 ‘삶의 절반’이란 시를 써서 호소했습니다. 그보다 약 100년 뒤에 태어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써서 한쪽 길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삶의 한계를 호소했습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지요.
몸이 하나라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한참 서서
낮은 덤불로 굽어지는 한쪽 길을
내가 멀리 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곤,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아마도 더 걸어달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겠지요.
그 길은 풀이 무성했고, 사람이 덜 다닌 듯했으니까요.
그 길로도 사람이 지나다녔다면
먼저 길과 거의 비슷하게 지나다닌 흔적이 남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벋어 있었어요
아무 발자국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잎사귀들 속으로
아, 먼저 길은 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지금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언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지요, 그리고 나는—
나는 택했지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요.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보통 사람의 말과 보통 사람의 느낌으로 이웃집 사람 좋은 아저씨의 소박하고 구수한 이야기와 같은 시를 써내지만, 그 속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따뜻한 사랑이 있기에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최고의 국민시인으로 네 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도 처음부터 빛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무 살 때 뉴욕의 한 문학지에 ‘나의 나비, 비가(悲歌)’라는 시를 발표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렇다 할 직업이 없이 지내다가 조부가 물려준 뉴햄프셔의 농장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농부로서의 그의 삶이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그는 자연과 벗하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시작(詩作)과 창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태어난 뒤 우리의 삶은 선택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태어남이야 우리의 의지 밖의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태어난 뒤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의 의지가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직업도, 종교도, 배우자도, 취미도 모두 우리의 선택입니다. 선택해야 할 때 선택 대상의 좋고 나쁨이 확연하다면 선택하기가 쉽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비극이 생기지 않겠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다보아도, 아무리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청해보아도, 어느 길이 좋은 길인지를 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앞에 주어진 선택을 다 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하기에 많은 비극이 생겨납니다. 프로스트와 같은 대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몸이 하나라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한참 서서
낮은 덤불로 굽어지는 한쪽 길을
내가 멀리 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흔히 두 갈래 혹은 세 갈래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은 그냥 무심코 한쪽 길을 택하지만 이 시를 썼을 때 프로스트는 하는 일이 모두 잘 안되기에 좌절감에 빠져있던 청년 시기였습니다. 어떻게 진로를 정해야 좌절감에서 벗어나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이기에 이런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모두 이런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를 한 번은 겪었을 것입니다.
두 길 중 어느 길을 택해도 삶의 양상이 다를 수는 있어도 질(質)이 달라지지는 않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일회성(一回性)이고 선택을 해야 했기에 프로스트는 망설이다가 한쪽 길을 택합니다. 두 길 다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한쪽이 풀이 더 무성했고 사람이 덜 다닌 듯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삶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택하지 않는 삶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 싶은 프로스트의 마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택한 길을 가면서도 마음속엔 계속 다른 길이 떠오릅니다. 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썼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한번 정한 길을 걷다 보면 길은 길로 이어집니다. 길을 가다 길이 갈라지면 다시 하나를 택해야 하고 그 길을 가다 다시 갈라지면 또다시 하나를 택해서 가야 하니 가다 보면 결국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평생의 할 일을 택하는 것도, 배우자를 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결정해서 평생을 후회 않고 할 일을 하고, 한눈에 반해서 평생을 같이 살며 행복할 수 있으면 너무도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삶의 굽이굽이에는 언제나 ‘선택 전의 망설임’과 ‘선택 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살다가 일이 잘 안 풀릴 때엔 누구나 그때 다른 길을 택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과 의구심이 들게 마련입니다. 프로스트도 이런 면에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기에 다음과 같이 시를 끝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언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지요, 그리고 나는—
나는 택했지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요.
프로스트와 같이 지혜로운 시인도 지난날의 선택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어 ‘한숨’까지 지으며 아쉬워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분 중에 혹시 지나간 날의 결정을 후회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는 그날의 결정이 옳았다고 인정하시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25. 5월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