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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로토루아의 저녁 풍경

by 석운 김동찬

지난달에 로토루아(Rotorua: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유명한 관광지)에 갔습니다. 교회 일로 다녀온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아내와 더불어 하는 나들이라 오가는 길 순간순간이 즐거웠습니다.

로토루아에 도착한 저녁나절 숙소에 들기 전 박물관 뒤편 로토루아 호숫가를 거닐다 너무도 아름다운 곳을 만나 발길이 절로 머물렀습니다. 로토루아에 몇 번이나 왔었지만 과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일몰, 호수, 겨울나무, 작은 물새들....... 시재(詩才)가 뛰어났더라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시 한 편을 읊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운 대로 사진만 찍고 돌아섰습니다.

로토루아 나무.jpg 로토루아 호숫가 뒤편 저녁 풍경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안 오고 자꾸 저녁때 본 호숫가 풍경이 생각나서 할 수 없이 일어나 끼적거려 시 한 편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새들을 소담스럽게 받아 준 나무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로토루아 호숫가에서-


나무야 나무야

너를 닮고 싶다

꽃 지고 잎 져도

빈 가지 부끄러워 않고

벌린 팔 거두지 않는 너의 자세


나무야 나무야

네게 배우고 싶다

마지막 열매마저 떨어졌어도

헐벗음 부끄러워 않고

마른 몸 닫지 않는 너의 자세


이 호수에 낮이 가고

저문 저녁이 다가올 때에

나무야 나무야

네 빈 가지 마른 몸에

내려앉는 것은 어둠만이 아니구나


이 저녁 추운 호수에

날아드는 수많은 새들도

어둠과 함께 네 위에 내려앉는구나

이 새들을 기다리느라

바람도 견디고 추위도 견디며

빈 가지 마른 몸

거두지도 닫지도 않았구나

나무야 나무야


이 호수에 빛은 가라앉고

바람은 자고 어둠은 더욱 짙어가는데

나무야 나무야

네 빈 가지에 새의 잎이 솟았구나

네 마른 몸에 새의 꽃이 피었구나

네 밑동에 새의 열매가 쌓였구나

네 한창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네 모습

어둠 속에 더욱 빛나는구나


2014. 9월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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