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을 맞이하며

-2026년 4월에-

by 석운 김동찬

다시 4월을 맞이하며 -2026년 4월에-

지구 한 쪽 멀리 중동 지역에선 전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또 4월이 왔다. 4월과 더불어 봄도 왔고 봄과 함께 꽃도 같이 와 산과 들과 거리에 온통 봄꽃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4월에 꽃소식보다 더 요란한 것은 언제 그칠 줄 모르는 전쟁 소식이고 전쟁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나라들의 소식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우리나라에도 전쟁의 여파가 결코 작지 않다. 환율이 올라 물가가 오르고 주식시장이 널뛰고 석유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생필품의 품귀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춥고 음침한 겨울이 지나 찾아온 봄이 한창인 4월엔 모두가 피어나는 봄꽃처럼 즐겁고 행복해야 할 텐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작년 4월은 어땠을까 하고 뒤돌아보니 올해 못지않게 힘든 4월이었다. 4월은 누군가의 말대로 과연 잔인한 달인가 하고 생각하다 문득 작년 4월에 뉴질랜드 교민 신문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찾아 읽어보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졸문(拙文)이지만 여러분과 같이 읽었으면 해서 여기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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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


4월 (April)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NYMPHARUM MEMBRA DISJECTA-


세 명의 요정이 내게 와서

나를 떼어놓았다

껍질 벗겨진 올리브 나뭇가지가

땅 위에 뒹구는 곳으로:

밝은 안개 아래의 창백한 학살.


<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라는 뜻의 라틴어 제사(題詞)- NYMPHARUM MEMBRA DISJECTA>로 시작되는 이 시(詩) ‘4월’을 읽으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land)’의 첫 구절이 생각납니다. 요정이라면 우리는 동화나 전설에 나오는 깜찍한 모양의 아름다운 존재를 연상하는데 그 요정들의 사지가 흩어져 있다고 하니 무언가 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뒤의 현장을 그려낸 시인 것 같아 불현듯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황무지’의 그 유명한 구절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 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라고 시작하는 ‘황무지’도 <정말 쿠마에서 나는 한 무녀(巫女)가 항아리 속에 달려 있는 것을 똑똑히 내 눈으로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야 넌 무얼 원하니?’하고 물었을 때 무녀는 대답했다. ‘난 죽고 싶어’>라는 라틴어 제사로 시작했습니다. 이 제사는 소원을 말하라는 신(神)에게 오랜 생명만을 요구하고 젊음을 요구하지 않아 늙어 쪼그라드는 육신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기에 죽는 것이 소원인 쿠마에 무녀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백 세 시대 운운하며 무조건 오래 살기만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잔인한’ 경종이 될 수도 있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보다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를 위하여’라고 끝맺음 한 엘리엇은 선배 시인 파운드를 진정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파운드의 시 ‘4월’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기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황무지’를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여하튼 두 시인이 모두 4월을 잔인한 달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파운드와 엘리엇이 겪은 4월

유럽의 4월은 부활과 재생이 일어나는 봄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1차 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초의 여러 가지 상황은 당시의 유럽 사람들에게,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겨울의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야 할 봄이 진정한 의미의 봄이 되지 못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봄의 한가운데에 4월이 있기에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짖었고, 그에 앞서 파운드는 4월의 자연 속에서 ‘요정(妖精)들의 흩어진 사지(四肢)’와 같은 참혹한 유럽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런 시를 썼을 것입니다.


이미지즘(Imagism) 시(詩) 운동의 기수였던 파운드는 이 시에서 간결한 이미지로 4월을 묘사하여 당시 유럽의 상황을 그려냅니다. 평화와 승리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가 껍질이 벗겨져 뒹구니 수치와 패배를 뜻합니다. 4월의 안개인 ‘밝은 안개’는 봄 안개이기에 뒤이어 햇살이 다가올 생명의 안개여야 하는데 그 아래에 뒹구는 껍질 벗겨진 올리브 가지를 창백한 학살이라 했습니다. ‘밝은’이 ‘창백한’과 뒤섞이는 대전 전후의 유럽의 모습을 파운드는 시 ‘4월’에서 극적인 언어의 그림으로 묘사하였고 훗날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며 시 ‘황무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한국의 4월

파운드나 엘리엇이 겪어야 했던 4월을 생각하며 요즘 한국의 4월을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의 4월은 꽃피고 봄바람 따사로워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평화로운 달인지요? 작년 12월 계엄령이 내려졌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대통령이 탄핵당했습니다. 그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분열되었던 나라가 완전히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거리마다 세워진 플래카드에는 탄핵 반대와 탄핵 인용을 외치는 읽기에도 섬찟한 구호가 바람에 휘날립니다. 어느 편의 구호나 분열된 나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주중에도 도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시위를 벌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훗날 역사가 증명해 주겠지만 이들 갈라진 두 편은 어느덧 서로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고 진정 나라를 위한 시위라면 최소한 서로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마치 적인 양 원수인 양 미워하니 이러다 나라가 영영 갈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정치가들의 책임이 큽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명분은 나라를 위한다지만 나라보다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순진한 국민을 이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거리를 휩쓰는 시위 군중과 바람에 흩날리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그 옛날 4.19를 회고하게 됩니다. 그때의 군중들은 모두가 한 편이었습니다. 학원을 뛰쳐나와 시위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로부터 생업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온 일반 시민들까지, 그리고 나중엔 이들을 제지하던 경찰과 군인들까지 하나가 되어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4.19가 성공한 이유는 바로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모두 진정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뭉쳤기에 잘못된 정치와 모리배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바로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1960년대엔 우리가 모두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기에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 의(義)를 위하여 항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거는 성공했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소득 백 불이 안 되던 그때보다 무려 삼백 배가 넘는 삼만 불이 넘었으니 그걸 움켜잡고 지키려고 의(義)도 팽개치고 나라도 팽개치고 내 가진 것에 유리한 편에 서기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달 말엔 사상 최악의 산불이 남쪽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거의 서울 면적만 한 삼림이 불타버렸고 많은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인심은 극도로 흉흉해지고 이런 참담한 재해를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갔고 봄은 왔고 4월도 왔습니다. 꽃피고 새가 울지만 마음 놓고 봄을 맞을 수 있는 4월이 아니어서 안타깝습니다. 옛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탄식하였지만 오늘 우리는 ‘갈라진 나라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녕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대로’가 계속되면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사람들이 둘로 갈라지고 2차 대전 이래 가장 놀랍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4월은 진정 ‘잔인한 4월’이 될 것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어 가진 것 내려놓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다 같이 뭉쳐야 하겠습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2편 10-11절)


그렇습니다. 세상의 법도 세상의 지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므로 지혜를 얻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야(與野)의 정치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탄핵을 심판하는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으며 국민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함으로 섬길 때에 비로소 우리 대한민국은 ‘잔인한 4월’이 아니라 ‘아름다운 4월’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5년 4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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