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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Aug 19. 2020

쇼팽의 왈츠와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석운의 화요음악회 이야기 제 21화, 건반으로 노래한 빈사의 백조

쇼팽의 왈츠 


오늘 화요음악회에서는 쇼팽의 왈츠를 들었습니다.

왈츠는 18세기 중엽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지방에서 유래한 민속춤곡입니다. 19세기에 왈츠가 빈의 사교계로 진출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그러다가 ‘왈츠의 왕’이라고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많은 왈츠를 기악곡으로 작곡하면서 반주용 춤곡에서 독자적인 기악곡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곡입니다.


쇼팽의 왈츠는 요한 슈트라우스로 대표되는 빈의 왈츠와는 다릅니다. 슬라브인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는 그의 왈츠는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많아 상당수의 곡이 춤을 추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곡의 형식이 왈츠이기에 억지로라도 춤을 추려면 출 수 있겠지만 오히려 한 편의 서정시같이 작곡자의 감정이 묻어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은 듣는 이로 하여금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이렇게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쇼팽의 왈츠는 춤을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슈만이 쇼팽의 왈츠를 가리켜, ‘쇼팽의 육체와 마음이 춤추는 왈츠,’ 또는 ‘만일 춤을 춘다면 상대 여인의 대부분은 백작 부인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쇼팽은 39년의 짧은 삶 속에서 모두 21곡의 왈츠를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 불과 8곡(작품 18, 작품 34의 3곡, 작품 42, 작품 64의 3곡)만이 그의 생전에 출판되었습니다. 나머지 곡은 그의 사후에 유작(遺作)으로 작품 번호를 갖거나 혹은 작품 번호 없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모두 음악적 가치가 높은 수작들입니다.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1917-1950)


쇼팽의 왈츠를 이야기할 때에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피아니스트는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1917-1950)입니다. 네 살 때 세례식에서 이미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연주한 그는 어린 시절에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뒤 부쿠레슈티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졸업 후 1934년 17세의 나이로 빈 국제 콩쿠르에서 나가서 2등을 차지했습니다. 사실은 콩쿠르에 참석한 누구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보였기에 누구나 그가 1등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의 그에게 1등을 주기보다는 나이가 많은 다른 참가자에게 1등을 주고자 하는 주최 측의 관습에 의해 그가 1등을 놓쳤던 것입니다.


이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 (Alfred Cortot)이었습니다. 그는 주최 측의 결정에 반발하며 리파티에게 1등을 주어야 한다고 거세게 주장했지만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심사 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음악사에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코르토는 리파티를 프랑스 파리로 초청하여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의 재능에 걸맞은 최고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드디어 1936년 그의 나이 19살 때 그는 파리에서 데뷔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완벽하면서도 열정에 넘친 그의 연주는 청중을 열광시켰습니다.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구의 작은 나라 루마니아에서 온 작은 청년(그의 키는 150cm에 불과했습니다)은 예술의 중심 파리를 정복했고 뒤이어 전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백혈병 진단에도 연주 열정 불태워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항시 그의 편에만 서 있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완성된 피아니스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성기의 활동을 펼치려 할 때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백혈병이라는 병마였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27살 때였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946년에서 1948년 사이에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순회공연을 계속했습니다. 여행을 다닐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에는 집 근처의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조촐한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프랑스 동부에는 브장송(Besançon)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작지만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는 매년 9월마다 국제적인 음악 축제가 열립니다. 1950년 9월에도 이 도시에서는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9월 16일 이날은 축제 기간 중에도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파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리사이틀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이번이 그의 마지막 연주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혈병이 악화될 대로 되어 의사도 주변 사람도 모두 말리는 이번 연주를 오직 청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가 강행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연주자에게는 ‘라스트 콘서트’가 있게 마련이지만 리파티의 경우와 같이 병으로 인해 예견된 ‘라스트 콘서트’는 너무도 비극적인 것이기에 연주장의 분위기는 비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견된 ‘라스트 콘서트’


그의 아내 마들렌에 의하면 연주 당일 리파티는 의자에 앉을 힘마저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마들렌도 의사도 극구 말렸지만 그는 모르핀 주사를 맞은 뒤 아내의 부축을 받고 겨우 차에 올라 연주장으로 갔습니다. 방사선 치료와 혈전증세의 악화로 부어오른 팔을 감추기 위해 특별히 맞춘 연주복을 입은 그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연주장은 관객의 박수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1950년 브장송에서 연주하는 디누 리파티 


그가 피아노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내려놓았을 때 관객은 숨을 죽였고 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혼신을 다한 그의 연주에 얼마 뒤 관객은 그가 얼마나 병약한 상태에서 연주를 하는지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바흐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곡이 차례로 끝나고 그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들이자 리파티가 가장 즐겨 연주하는 쇼팽의 왈츠가 남았습니다. 그는 21곡의 쇼팽의 왈츠 중 그가 좋아하는 14곡을 골라 그만의 순서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항상 5번 왈츠로 시작해서 2번 왈츠로 끝냈습니다.


이날도 역시 5번에서 시작해서 그 특유의 순서대로 연주해나갔습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은 물론 작곡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리파티의 연주를 최고의 쇼팽 권위자였던 알프레트 코로토는 단 한마디로 ‘완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 그의 마지막 연주를 듣던 그 날의 관중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리파티가 13번째 순서인 ‘화려한 왈츠’라는 1번 왈츠를 연주했습니다. 이제 남은 곡은 단 한 곡 2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리파티는 13번째 곡을 마친 뒤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기진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관객도 모두 자리에 굳어버린 듯 앉아 그를 주시할 따름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리파티는 다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흘러나온 곡은 쇼팽의 마지막 왈츠 2번이 아니고 바흐의 칸타타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이었습니다. 바흐의 이 칸타타는 리파티가 아주 사랑해서 리사이틀의 처음이나 마지막 부분에서 이 곡의 피아노 편곡을 연주하곤 했던 곡입니다. 이날 리파티는 마지막 쇼팽의 왈츠 대신 이 곡을 연주한 것입니다. 뜻밖의 사태에 의아했던 관객도 곧 이 칸타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늘의 소리인 듯 영롱한 음악이 연주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바흐의 칸타타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은 바흐의 칸타타 BWV 147중에서 6번째와 10번째 나오는 합창으로 노랫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기쁨의 원천이시며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근심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내 생명에는 힘의 근원이 되시며 

내 눈에는 태양이며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혼에는 기쁨이며 보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과 눈에서
 예수님을 멀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13곡의 왈츠 연주를 마친 리파티는 완전히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연주를 할 힘이 없어서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쓰러지려는 몸을 피아노에 의지해 겨우 앉아 있었던 그에게 도움이 왔습니다. 분명 하늘로부터 내려온 도움이었을 것입니다. 그 도움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그는 마지막 주어진 힘으로 쇼팽의 왈츠 2번 대신 바흐의 칸타타를 쳤을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하는 그의 두 눈은 분명 하늘을 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곡을 치면서 그는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피아노와 그를 그렇게 사랑했던 청중과 영원한 작별을 한 것입니다.

 

이 연주를 마치고 그는 쓰러졌습니다. 14번째 곡 쇼팽의 왈츠 2번은 결국 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2일에 리파티는 33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은 후 부인 마들렌은 브장송에서의 연주를 회상하면서 ‘그에게는 마지막 한 곡을 칠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쇼팽도 그걸 용서해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브장송 연주가 담긴 귀한 음반

리파티가 브장송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곡들은 다행히도 녹음되었고 비록 모노이지만 EMI가 음반으로 펴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바흐의 칸타타는 그때 녹음 기사가 녹음을 하지 못해 음반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리파티가 기진해서 앉아 있을 때 녹음 기사는 더 이상 연주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하고 녹음을 중단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귀한 음반으로 전곡을 들었습니다. 1950년 녹음이기에 음질은 그렇게 좋지 않지만 마지막 연주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귀한 음반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칸타타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으로 갈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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