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상실의 세계

신세계에서

by modern ordinary

나와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요즘의 세상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아주 가까이서.

내가 타이핑을 치고 있는 컴퓨터로,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고, 알람 해체 슬라이드로 아침을 함께 맞는 휴대폰으로.





유튜브와 숏츠, 인스타그램과 릴스, 틱톡, …

AI, 빅데이터, …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발전을 기다리는 전 세대와 지금을 나누는 유망주들이다.


이것들은 방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4차원으로 펼쳐진,

가치나 레벨의 높낮이조차 없는 데이터 꾸러미를 다룬다.

속도도, 의미도 필요 없다.


그저 이것이 던져주는 데이터(그것을 정보라 착각한다)에 몸을 내던진다.


아직까지 구글, 네이버와 같은 검색 플랫폼에서는 (보통의 경우) 사용자가 스스로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야 한다.

비록 이미 이 플랫폼이 방대한 데이터를 잘 정리해 두었지만, 결국 인터넷 서핑의 목적을 가지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가 바로 데이터가 정보가 되고, 우리의 순간에 방향이 생기는 지점이다.

뉴스, 기사, 신문은 AI나 빅데이터 같은 4D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세상의 방향을 보여주는 창이다.


하지만 이제 이 4D 기술이 세계를, 국가를 지배한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 방향성을 없애고 있다.

이것으로 인류는 신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 세계는 시간과 공간 모두 인간이 구축한 세계이다.


그곳에서 의미나, 열정이나, 가치나,

이런 것들은 이제 따분한 이야기가 된다.


이 세상에 방향이 있다는 것은 곧 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삶에 4D 클릭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접속할 수 있는 이제,

자연이 부여한 세상과 삶의 속도는 너어……………어무 느려졌다.


이 인위적인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는, 특히 아이들은

자연의 힘에 취약해진다.


공부를 해서 어떤 목표를 이루거나 가정을 꾸리는 미래 이야기는 고지식한 절차가 되어 간다.


과거부터 이어진 전통과 당장의 내 재미와, 미래의 계획은 같은 선상에 놓인 데이터 같은 것이 되어, 가장 큰 에너지를 가진 ‘당장의 내 재미’가 1순위가 된다.


엄마의 잔소리와 선생님의 훈계와 유튜브, 인스타, 틱톡의 댓글의 무게도 비슷해진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 책에서 본 선험자의 지혜와 지금 당장 TV에서 나와 귀속을 파고드는 정치인의 연설, 숏폼에서 소리치는 가면 쓴 인플루언서들의 욕설도 결국 같은 선상에 놓인다.

다만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진 쪽에 끌릴 뿐이다.


작금의 신기술은 실로 대단한 인류 지성의 산물이고,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지구에 녹아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미래를 인정하는 것과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시간과, 속도와, 방향이 있는 우주에 살고 있다, 이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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