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준 Aug 28. 2020

엄마의 복숭아

늘 한 발 늦는 마음.



지난달 말 우리 아기가 태어났다. 나의 임신과 출산은 말하자면 코로나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터진 2월부터는 남편과 산부인과도 함께 출입하지 못했고, 초음파 속 귀여운 아가의 성장해가는 모습도 같이 보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난 7월 말에도 코로나의 영향은 여전했다. 산모와 남편 외에는 병원 신생아실 면회는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산후조리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엄마, 시부모님 모두 손주를 너무 보고싶어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야 했다.     



 

출산 후 5일간의 입원 기간이 끝나고 아기를 데리고 조리원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엄마가 전화오셔서 병원 퇴원할 때 당신도 가면 안되겠냐고 말씀하셨다. 짐도 같이 들어줄 겸 오시겠다는 거였다. 퇴원 수속 밟고, 아가도 챙기려면 바쁘고 정신없을 것 같고, 캐리어도 두 개나 있어 차도 비좁을 것 같아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동하는 동안만 얼른 같이 보내다 바로 갈게, 하는 엄마. 마지못해 나는 알겠다고, 그럼 내일 오전 11시까지 오라고 엄마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퇴원 당일, 생각보다 퇴원 수속이 빨리 끝날 것 같아 엄마에게 전화드렸다. 엄마, 퇴원 수속 빨리 끝나서 그냥 우리끼리 지금 조리원으로 갈게, 안 오셔도 돼요. 그러자 엄마는 이미 집에서 나왔다고, 택시타고 금방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하셨다.      


 짐도 많고, 갓 태어난 아기와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날, 모든 게 조심스럽고 챙길 것도 많아 적잖이 긴장이 되던 날이었다. 사실 그때부터 마음에 짜증이 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굳이 이런 상황에 꼭 오셔야하는 걸까. 짐 들어주시겠다는 건 핑계 같고, 손주를 빨리 보고파서 그런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정신없고 바빠죽겠는데 엄마는 참... 마음이 뾰족해져버리고 말았다.     


 얼마 이따 엄마가 병원에 도착하셨다. 헤어스타일도 평소와 다르게 바뀌었고 목까지 채우는 레이스 리본 장식이 있는 흰 브라우스에 정장바지까지 입고 나타난 엄마. 그 차림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캐리어까지 끌고 나타난 엄마.      


결국 엄마를 보자마자 맘 안에 있던 짜증이 확 쏟아져나왔다.

“엄마, 안그래도 짐도 많은데 이 캐리어는 뭐야~ 차도 비좁은데! 그리고 이 날씨에 편한 옷 입고 오지 옷은 또 왜 이렇게 불편하게 입고 왔어 ”     


짜증이 덕지 덕지 묻은 나의 말에 엄마는 마치 그런 말은 못들은 사람처럼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기 시작했다.

“니 조리원 들어가면 입 심심할까봐 시장에서 복숭아랑 통닭 좀 사왔다~ 호호호. 내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일찍이 미용실도 갔다 왔대이. 우리 아가 처음 보는데 이쁘게 하고 싶어서. 옷도 예쁜 거 꺼내 입고 왔다. 괜찮나? 이뿌나?”      

그러고는 아가를 보자마자 눈을 감고 얼마간 우리 아가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엄마.

 

 우리 엄마.

 왜 무리해서 택시까지 타고 여기까지 왔으며, 조리원에 밥도 간식도 잘 나올 텐데 뭐하러 저렇게 바리바리 싸 온 걸까, 더워죽겠는데 옷은 또 왜 저렇게 불편하게 입었으며, 내가 화를 내고 있는데도 왜 나랑 아가한테 저런 얘기를 해맑게 웃으며 하고 있는 걸까.

엄마는 왜 이럴까.


 엄마, 나, 남편, 아가. 우리 넷은 병원에서 나와 차를 타고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조리원 안까지 내가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방에 들어와 나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내가 싸온 짐 정리를 다 하고 마지막으로 엄마의 캐리어 속에 있던 복숭아와 통닭이 담긴 까만 봉지를 열었다. 장날에 파는, 내가 좋아하는 옛날 통닭과 핑크 빛깔 도는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가 스티로폼 그물망에 담겨 가득 들어 있었다.

 복숭아를 하나하나 꺼내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넣으면서, 혼자 방에서 많이, 많이 울었다.   


  

 나는 안다. 어릴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절약하는 엄마라 과일도 장날에 커다란 소쿠리에 20개 정도 담아 5000원에 파는 떨이 복숭아, 한 통에 3000원 하는 수박, 이런 것들 아니면 잘 사 먹지도 않는 엄마라는 걸. 돈 아끼려 반찬도 그냥 된장 하나, 양배추랑 자주 드시는 엄마란 걸.      


 태어나 처음으로 내 자식을 낳았다. 너무 예쁘고 뭘 해도 사랑스럽고 그저 지켜주고 싶은 마음, 내 아이가 태어나면 이런 마음이겠지 했던, 그 마음. 낳아보니 정말 그랬다.

아가가 태어나고 내가 온통 우리 아가 생각으로 신경이 가 있는 동안 엄마는 다름 아닌 내 걱정을 했다.

내가 엄마는 뒷전이고 내 자식, 우리 아가를 챙길 동안, 내가 제대로 몸조리 못할까봐, 제대로 못 챙겨먹을까봐 걱정했다.

엄마에겐 손주도 물론 너무 사랑스럽지만 엄마의 자식인, 내가 제일 우선이었나보다.


단순히 손주 빨리 보시고 싶어 오지말라는 병원까지 무리해서 오신다고 생각했던 내 짧은 생각이 부끄럽고, 남한테는 좋은 사람 되려 애쓰면서 정작 엄마한테는 온갖 짜증 내기 일수인 내가 미웠던 그 날.


결국엔 엄마보다 늘 한 발짝 늦고마는 나.


아무리 부모를 위한다 해도 자식은 부모님 마음을 못 따라가는걸까.

엄마가 사준 복숭아.

참 붉고, 달았다. 쓰고 쓴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작가의 이전글 뒤틀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