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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7. 2020
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
청소를 하면서
웬만하면 매일 청소를 하려 한다. 매일이 아니면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이라도.
구석구석 쓸고, 먼지가 없도록 걸레질을 한다. 바로 바로는 아니더라도 오늘의 설거지는 내일로 미루지 않기. 자주 입는 옷과 수건이 수납장에 떨어지지 않도록 세탁하는 것도 잊지 않기.
쓸기, 닦기, 설거지, 빨래.
하루를, 일상을 돌아가게 하는 집안일들. 또 하지 않으면 바로바로 불편해지고 티가 나는 집안일들. 그래서 타고난 게으름뱅이인 나도 사람답게 살려면 이 네 가지는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매번 구석구석 쓸고 걸레질을 열심히 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너저분한 느낌이 드는 건 뭘까. 묘하게 이 너저분함이 늘 베이스로 깔려 있는 느낌.
'바닥에 먼지는 없지만 티비장 위에 쓸 데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이 올려져 있는 것 같애, 설거지는 다 했는데.. 싱크대 주변엔 믹서기, 주걱, 냄비받침대, 컵들.. 하.. 왜 이리 복잡하냐. 베란다 바닥에 있는 빈 화분, 언젠가 청소할 때 쓰려고 놔뒀던 못 쓰는 수세미.. 뭔가 거슬린다.. 거슬린다..'
꼭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처럼 나의 집안 살림, 정리의 패턴도 하루하루 ‘돌아가게만’ 만드는 것 같다.
어느 살림 매체에 ‘오늘의 집’으로 소개될 정도로 누가 봐도 멋진 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하루 종일 머물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깔끔한 집을 꿈꾸는데 그게 참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아침에 눈 떴을 때 치울 게 많이 없는 집. 딱히 날 잡아 대청소를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 있는 집. 나한텐 왜 그게 그리도 어려운지.
그러다 한편으로 드는 또 다른 생각.
‘매일 쓸고 닦고 설거지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너무 완벽하게 깔끔해지려는 것도 정신건강에 안 좋아. 지금 인간적이고 얼마나 좋아’
매일 하루에도 이 마음, 저 마음을 왔다갔다 하는 나.
약간의 너저분함을 우리집의 컨셉 혹은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면 마음 편할텐데, 또 포기는 안 되는 이상한 마음이다. 아니면 며칠 길게 날 잡고 집 정리 시스템을 확 잡던지(사실 하루 이틀 해본 적 있는데.. 책장정리, 옷정리만 했는데도 바로 심한 몸살이 와 앓아누웠던 저질 체력의 나.. ㅠ) 하..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한 몸과 마음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시험 기간만 되면 토요일 학교 마칠 때 사물함에 있는 책을 모조리 가방에 다 싸 들고 가곤 했다. ‘나 주말에 이거 싹 다 공부할거니까’ 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가방 그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들고 오기 일쑤던 날들.
완벽추구주의자라고 들어봤을라나. 그게 나다. 늘 완벽을 꿈꾸지만 완벽에 이르지는 못하고 ‘완벽에의 추구’를 추구하는 완벽추구주의자.
내 맘에 들지 않는, 집에 늘 널부러져 있는 물건들을 자세히 한번 둘러봤다. 티비장 위에 책 몇 권과 마사기지 라디오 메모지, 식탁 위 영양제, 머리핀. 사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내가 자주 쓰는 것들이다. 또 베란다에 몇 달째 쌓아둔 옷들. 입기엔 안 내키고 버리긴 또 싫어 하나씩 쌓인 옷들. 집안 곳곳의 물건들이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는 건 사실 내 마음의 반영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을 내 몸과 가까운 곳에 두고 있었고, 내 마음이 생각한 감정의 흐름대로 물건들 또한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부분은 그대로 둔 채 매일 쓸고 닦고 씻는 것 밖에 하지 못 했던 것. 단순 청소 말고, 제대로 집을 정리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 그리 어려웠던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집이란 게 그저 단순히 집이 아니라 어쩌면 나라는 사람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어질러져 있고 널부러져 있는 것, 그게 나였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정도로 제대로 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을 안다.
내게 있는 부분들을 수용하고 만족하는 것.
우리집은 변할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변할까.
매일 내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